[기자수첩] 무너진 옛 성터에 미사일만 지나가네

기사승인 2017-09-05 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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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김양균 기자] “다분히 정략적.” <니시니폰신문>의 가네다 기자(가명)의 뼈있는 한마디였다. 북한의 ICBM이 일본 상공을 지난 간 직후, 공교롭게도 나는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 있었다. 현지에서 본 일본 언론은 그야말로 ‘특집’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후마오카현도 이러한 소동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번화가 한 귀퉁이에서 커피나 간단한 식사 따위를 파는 오래된 바에서 담배를 뻐끔대고 있노라니, 옆자리의 중년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후쿠오카 사람 특유의 유쾌함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느낀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니시니폰신문>의 기자였다. 

후쿠오카시의 번화가인 텐진역 인근에 위치한 <니시니폰신문>은 지난 1877년 창간된 <지쿠시신문>을 모태로 하는 유서 깊은 지역 언론사다. 일본 규슈의 최초 일간지인 <니시니폰신문>은 도쿄와 오사카에 지사를 두고 발행 부수도 80만부를 상회한다. 한국의 기자문화는 일본의 그것을 상당부분 차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신문 제작 과정의 은어도 여태 일본어가 사용되는 것이나 폐쇄적인 출입처 문화 역시 일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려준다. 아무튼 그와는 적잖이 말이 통하기도, 막히기도 했다. 

언어의 차이로 원활한 소통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북한 미사일 ‘사태’를 내게 물었다. 물론 이러한 물음에 내가 적당한 답을 했는지는 미지수다. 그는 북한의 ‘액션’이 한국과 일본에 미칠 영향을 궁금해 했다. “다분히 정략적”이란 중의적 표현은 김정은과 아베 신조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위기에 처한 김정은이 ‘미사일 외교’를 구사하는 것이나, 정치적 곤경에 처한 아베 신조가 북한 미사일 위협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을 꼬집은 그의 말은 일순 설득력이 있긴 했다. 사실 일본의 대응이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그의 지적은 비단 그 혼자만의 주장은 아니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도 이 같은 비판을 조심스레 제기하긴 했다. 

여기서 따져봐야하는 것은 ‘조심스러운’이란 표현이다. 북한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한국보다 일본이 더하다면 더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 등으로 누적된 부정적 감정은 우리의 이데올로기와 전쟁, 테러리즘에 기반을 둔 시각과는 다른, 깊고 오래된 ‘무엇’이 있다.  

나는 북한의 여러 위협이 있을 때마다 재일조선인들의 가뜩이나 불안한 ‘포지션’이 출렁이는 것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있었다. 재일조선인의 현실은 <박치기>나 <피와뼈> 등 일본 영화를 통해서도 알려진 바 있지만, 이들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욱 영화적이다. 무국적 신분의 재일조선인들의 일본 내 입지란 것은 ‘고달프고 소외되어 있다’는 것 정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재일조선인 학교의 어려움과 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혐한이니 헤이트스피치에 상시적으로 시달려온 이들은, 어쩌면 북한이 벌인 일본인 납치 사건이나 미사일 위협 등의 직접적인 피해자일 수 있다. 

일본의 북한에 대한 여론 자체가 매우 부정적이다 보니 일본 언론 역시 이번 ‘소동’의 전면에 선 아베 신조를 대놓고 비판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일의 일개 기자 둘 사이에 설왕설래가 벌어지긴 했지만, 일부분의 긍정 혹은 부정으로 대화는 얼추 마무리됐다. 자리를 파하고 먼저 일어서는 그가 내게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구마모토에 가볼 작정입니다.”

“구마모토라면 성(Castle)을 볼 생각인가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기대와는 다를 겁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부분이 아직 제대로 복구가 안됐거든요.”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아니겠습니까?”

“그럴지도.”

[기자수첩] 무너진 옛 성터에 미사일만 지나가네

고속버스를 타고 구마모토로 가는 와중에 나는 가네다의 “다분히 정략적”이란 말을 곱씹었다. 이 정략적이란 표현에 국내 언론의 위기 고조 여론 형성이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위기감이 거듭될수록 도리어 위기에 무신경해지는 군중심리다.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위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잠들고 말았다. 

꿈속에서 나는 무너진 옛 성벽 위로 꽁지에 불이 붙은 기다란 무엇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한다. ‘아, 저것은!’ 외마디를 외치기 전에 허무하게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은 미사일을 닮은 하나비(불꽃놀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극 같은 희극이, 한국과 북한, 일본의 하늘 위를 부유하고 있다고 말이다.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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