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같은 소리②] 두 사람 몫을 해 놓고 받은 돈은 14만원

“영화 만든다고 하면 멋있어 보이죠? 영화 산업 태반이 비정규직

기사승인 2017-09-15 06:00:00
- + 인쇄

[열정페이 같은 소리②]  두 사람 몫을 해 놓고 받은 돈은 14만원

영화 산업은 대중문화 산업 중에서도 예산 규모가 유독 큰 사업에 속한다. 최근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를 만들며 5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들였다고 밝혔다. 물론 ‘옥자’는 예외적으로 큰 예산을 들인 영화다. 그러나 ‘옥자’ 외에도 단순히 몇 십 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제작하는 영화는 1년에 수십 개에 달한다. 그 예산을 들여다보면 지출 비용은 다양하다. 홍보 비용, 스튜디오와 장비 대여 비용, CG 비용 등 제작 관련 비용에서 임금에 이르기까지. 수익이 크니 지출 비용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영화 산업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은 안정적으로 지급되고 있을까?

‘열정 페이 같은 소리’ 2회는 거대한 예산의 영화 산업이 얼마나 착취적으로 돌아가는지를 영화 산업 종사자의 시점에서 들여다봤다. 현재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김라온(가명)씨와 영화과를 졸업하고 다수의 상업 영화에서 연출부로 일해 온 피터 파커(가명)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 2사람 몫을 해 놓고 받은 돈은 14만원… 무슨 일을 해도 고용 불안정은 똑같다

“시나리오 한 편 써서 채택되면 제가 얼마 받는지 아세요?” 김라온씨의 물음이다. 통상적으로 성공한 상업 영화들이 얻는 수익은 어지간한 중소기업의 1년 매출 수준이다. 그렇다면 그 영화의 기반이 되는 시나리오 작가는 얼마를 받을까.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김라온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마이너스예요.”

김라온씨는 열정 하나만 가지고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 4년제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김라온씨는 자신의 글로 등단도 한 재능 있는 작가다. 스스로의 글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상업 영화에 대한 강한 열망과 동경도 있었다. 유명한 영화 제작사가 개최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큰 상은 아니지만 입상도 했다. 3년 동안 김라온씨가 쓴 시나리오는 10여개. 빨리 쓰고, 잘 쓰는 사람이기에 시나리오를 그렇게나 많이 쓰는 것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제작사 측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긍정적으로 검토됐다. 채택도 됐다. 그리고 임금 지급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가 제작돼야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구실로 김라온씨의 시나리오 구입비 지급을 유야무야 미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영화들은 투자가 선행돼야 제작이 가능하다. 김라온씨의 시나리오를 구입한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이 곳 저 곳에 보여주며 투자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김라온씨에게 떨어지는 금액은 없었다.

물만 마시고 살 수는 없었다. 결국 김라온씨는 시나리오를 쓰는 작업 시간을 포기하고 취직길을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라온씨가 하게 된 일은 영화 프로듀서였다. 김라온씨의 시나리오를 가져갔던 한 제작사 측에서 일손이 없으니 좀 도와달라고 했던 것이 계기다. 남들이 보기에는 웃기지만 김라온씨 입장에서는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당장 한푼이 급해 시작한 일이지만, 그 제작사는 김라온씨가 프로듀서로 일했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2인의 몫을 한 김라온씨의 손에 최종적으로 떨어진 돈은 14만원이었다. 출근 교통비도 안 됐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프로듀서 일을 하고 있지만 김라온씨는 여전히 고용 불안정에 시달린다.

“영화 만든다고 하면 멋있어 보이죠? 영화 산업의 태반이 모두 비정규직으로 돌아가요. 계약직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시나리오 작가부터 해서 연출부 같은 제작팀, 의상팀이나 조명팀, 엑스트라 배우들에 어찌 보면 주연배우들도 비정규직이죠. 주연배우들도 출연료 지급이 늦어지는 일이 태반이지만 그들은 임금이 늦어져도 굶지는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긴 해요. 일을 하고 있어도, ‘이 일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저를 보고 있으면 당황스럽죠.”

“저도 솔직히 실명으로 속 시원히 A제작사는 임금이 얼마 밀렸고, B 제작사는 대표가 투자금을 들고 도망쳤고,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어요. 아직도 저는 이 일을 하고 있거든요. 제 이름이 알려지면 저는 영화업계에서 불이익을 당할 거예요. 제가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주변 사람들이 물어봐요. 열정이 대단하다고 감탄하기도 하죠. 사실은 제가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열정 때문이 아니에요. 이제는 이 일밖에 할 수 없게 돼 버렸기 때문이에요. 영화 일만 하면서 나이를 먹다 보니 어떤 회사에서도 저를 신입 사원으로 받아주지 않아요. 제가 다른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과 이 업계에 고용안정이 생길 가능성을 몇 년째 저울질 중이지만, 딱히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 “정당한 임금 지급? 그거 부자나 하는 거” 교육 현장에도 만연한 인식

“현업에 종사 중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꼭 비실명으로 내보내 달라”는 피터 파커 씨는 “그럼 어떤 가명을 원하냐”니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피터 파커’를 꼽았다. 언뜻 웃음이 나오지만 가명을 지은 이유를 들으면 웃을 수만은 없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마치 슈퍼히어로가 된 듯 모든 일에 매달려야 하지만, 막상 손에 떨어지는 돈은 과자 한 봉지 값에 가깝기 때문이다. 동네의 영웅이지만 전 재산은 50센트인 스파이더맨의 본명 ‘피터 파커’를 자신의 인터뷰명으로 불러달라는 그는 최근 크랭크업한 한 상업 영화의 연출부로 일했다.

"맨 처음에는 멋진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4년제 대학교 영화과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선배들이 OT에서 그러는 거예요, ‘빨리 딴 길 알아보라’라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건 그때부터였어요. 악순환은 이미 시작됐죠.“

막 1학년으로 입학한 피터 씨에게 행복한 캠퍼스 생활은 없었다. 피터 씨의 과는 일종의 ‘도제’ 제도로 돌아갔다. 4학년 선배들이 1년 동안 촬영하는 졸업 작품을 위해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후배들이 발로 뛰었다. 4학년 선배가 감독과 프로듀서·촬영 등을 맡으면 마이크를 들고, 촬영 장비를 나르는 이른바 ‘시다바리’ 노릇을 하는 것이다. 예외는 없었다. 교수들마저 후배들의 선배들 작품 ‘시다바리’를 당연한 학사 과정으로 여겼다. 밤이나 낮이나 일을 햇다. 가끔은 ‘야작’이라는 이름하에 새벽까지 조명을 들고 서 있었다. 당연히 임금 지급도 없었다. 학기마다 수업료를 내고 일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피터 씨도 본인이 4학년이 되면 대신 후배들이 도와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일을 도왔다. 그러나 피터 씨는 의문에 빠졌다. ‘내가 4학년이 되어 내 작품에 후배들을 부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피터 씨의 의문에 교수는 답했다. “임마. 그러면 너는 비싼 돈 주고 전문 스태프 쓸래? 돈 많냐?” 학교에서부터 ‘정당한 임금 지급’을 ‘돈 많은 사람이나 하는 일’로 규정한 것이다. 착취의 정당화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비슷한 의문은 계속됐지만 답도 계속 같았다. 4학년이 돼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피터 씨는 자신도 모르게 당연한 듯 후배들을 부리고 있었다. 그렇게 졸업작품을 다 만들고 나서는 후배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며 “돈은 못 주지만 내가 고마워서 그러는 거니 마음껏 먹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졸업하고 정확히 1년 후, 피터 씨는 똑같은 이야기를 자신이 참여한 영화의 감독에게 들었다. 감독은 ‘작은 영화’라서 여유 자금이 없다며 1개월간 피터 씨가 영화 작업에 참여하고 받아야 할 임금 대신 피터 씨를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고기를 샀다. 그날 나온 고기 값은 40만 원. 피터 씨 한 사람의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피터 씨는 그날 그 자리에서, 자신이 식사를 사 줬던 후배들의 애매한 미소를 떠올렸다.

비슷한 일은 계속됐다. 겨우 경력에 다양성 영화 및 상업 영화 몇 가지를 추가하고 나서야 그나마 ‘메이저’라고 불리는 제작사에 괜찮은 일자리를 얻었지만, 그것도 정규직이 아닌 시한부다. 연봉은 어디다 말도 못 하는 금액이고 그나마도 밀리기 일쑤다. 최근 피터 씨가 참여한 영화의 주연 배우 몸값은 억대다. 피터 씨가 10년 동안 꼬박 벌어도 모을 수 없는 금액이다. 참여한 영화가 잘 된다고 ‘러닝 개런티’를 받을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③에 계속)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사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촬영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전혀 무관합니다.)

기사모아보기
친절한 쿡기자 타이틀
모아타운 갈등을 바라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둔 도시 정비 사업 중 하나인 ‘모아타운’을 두고, 서울 곳곳이 찬반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모아타운 선정지는 물론 일부 예상지는 주민 간, 원주민·외지인 간 갈등으로 동네가 두 쪽이 난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찾은 모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