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⑫ [단독]오류투성이 ‘피해자 명부’…창씨개명 알아야 확인 가능?

[쿠키뉴스 특별기획]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기사승인 2017-09-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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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1938년 제국주의 실현을 꿈꾸던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 총동원령을 제정했다.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여파가 미쳤다. 일본은 모집·관 알선·징용 등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국내를 비롯해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로 800만명이 끌려갔다. 이들은 원치 않는 총을 들어야 했고,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중 최소 60만명이상은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국가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79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흐려졌다. 교과서는 단 한 문단으로 피해자의 삶을 축약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 건립은 정부의 불허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역시 지지부진하다. 백발이 성성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국회와 법원을 오간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지난 4월부터 강제 동원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취재를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피해자와 유가족을 찾았다. 일본을 방문, 비극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94세의 피해자를 대신해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던 그의 간절한 당부를 독자들께 전한다. 


#“옛날에 외할아버지가 사이판으로 끌려가 군인들 밥을 짓고 포탄도 날랐다더라” 

이모(25)씨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강제동원 피해자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일제강점기 피해자 명부에서 외할아버지의 이름과 고향을 검색하니 2건의 자료가 나왔다. 온라인상으로는 구체적인 정보를 열람할 수 없었다. 수수료를 내고 사본을 신청하니, 실제 명부가 우편으로 전달됐다. 이씨는 당황했다.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흘림체로 쓰인 생소한 한자만이 가득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얻은 후에야 단기(檀紀)로 적힌 동원시기와 귀환시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후, 이씨는 외할아버지의 고된 노역을 증명해줄 유일한 증거를 어렵게 손에 쥐었다.      

명부는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초석이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는 지난 2004년부터 2015년까지 강제동원 명부와 관련 자료를 모았다. 11년간의 활동을 통해 한국 정부에서 생산한 명부 96만6824건과 일본 정부로부터 수집한 명부 73만7819건, 민간과 단체로부터 수집한 명부 5만3204건을 보유해 분석했다.  

▲ 세 군데로 흩어진 자료들…명부 분석·관리 여의치 않아

그러나 현재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의 관리 주체는 부재한 상황이다. 지난 2015년 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이후 명부와 관련 자료는 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지원단), 국가기록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지원재단) 등 세 곳으로 나뉘어 이관됐다. 분석이 완료되지 않은 자료는 지원단이 맡았다. 분석이 끝난 자료는 국가기록원으로 전달됐다.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운영하는 지원재단은 전시용 자료를 넘겨받았다. 기록을 관리할 기관이 불분명해졌다는 지적이 일었다. 인력과 예산 역시 크게 축소됐다.    

과거사 업무지원단은 현재 위원회에서 검증이 끝나지 않은 명부를 분석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일본 도쿄 주일대사관에서 발견된 일정시피징용자 명부가 주 대상이다. 해당 명부에는 22만9781건의 인적사항이 기재돼 있다. 그러나 분석은 매우 더딘 수준이다. 위원회는 앞서 2만3110건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지원단은 해당 업무를 이관 받은 후, 약 7000건의 명부를 추가적으로 분석했다. 약 20만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다. 

국가는 정확한 강제동원 피해자 수를 산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18일 기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는 107만5553건의 강제동원 피해자 인적사항이 등록돼 있다. 국가기록원에서 DB화해 공개한 자료들이다. 다만 해당 자료는 107만명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전산화된 자료에는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사람의 기록이 2, 3건씩 올라와 있는 경우도 있다. 국내 노무 동원 피해자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학계에 따르면 국민총동원시기인 지난 38년부터 45년 사이 노무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등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 피해자는 약 800만명에 달한다. 이중 국내 노무 동원자는 650만명, 해외 노무 동원자는 85만명, 군인·군속은 61만명으로 추정된다.  

▲ ‘불친절한’ 피해자명부, DB상 오류도 많아…“기록 다르면 명부서 찾을 수 없어”

국가기록원에 공개된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가 ‘불친절’하다는 문제도 있다. 명부에 적힌 피해자의 이름, 본적, 동원지, 생년 중 최소 한 가지를 알아야 피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데이터베이스(DB)에 오기(誤記)가 있을 경우, 피해자나 유가족이 실질적으로 자료를 찾기 어렵다.

지난 71년부터 93년까지 일본으로부터 5차례에 걸쳐 이관받은 명부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단우수근’ ‘춘산상운’ ‘신본영복’ ‘대원호선’ 등으로 적혀 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임의로 변경, 기록한 경우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유가족 등이 창씨개명된 이름을 알지 못하면 기록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생년과 본적 등의 추가적인 단서가 함께 기재돼 있어야만 피해자 특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을 찾는 것은 온전히 피해자 또는 유가족의 몫이다. 

DB화 과정에서의 오기도 문제다. 앞서 김대중 정부 출범 후, 국가기록원에 잠들어 있던 명부의 전산화 작업이 시작됐다. 작업을 진행한 대다수는 전문 인력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취업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사업’이란 이름으로 모집한 일반인이었다.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해 이름, 생년 등을 잘못 표기한 경우가 다수 있었다. 전북 임실군 출신의 고(故) 김두영씨의 경우, 1927년생이지만 DB상으로는 1924년생으로 기재돼있다. 명부 나이 항목에 적힌 여섯 육(六)자가 아홉 구(九)자와 분간되지 않아 오기된 것으로 보인다. 생년을 강제동원 당시 나이로 오기한 경우도 있다.  

한자음 그대로 표기된 동원지도 이용자의 검색을 혼란스럽게 한다. 스미토모(住友) 고노마이(鴻之舞) 광산은 ‘주우홍지무 광산’, 돗토리(鳥取県) 이와미(岩美) 광산은 ‘조취현 암미 광산’, 시즈오카시(靜岡市) 광산은 ‘정강시 광산’으로 등록돼 있다. 

오류 등으로 정리되지 않은 명부는 일본을 상대로 한 소송 등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명부는 검증을 거치지 않는 이상 공적인 효력을 얻지 못한다. 실제로 일본 전범 기업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쓰이는 자료는 일본 후생성의 연금·공탁금 명부 등이다. 피해자 또는 유가족이 직접 일본 측에 요청, 자료를 구해야 하기에 소송에 긴 시간이 걸린다. 

▲ DB 오류 검증, 분석 인력 단 3명뿐…연구자 등에게도 공개 어려워 

더욱 큰 문제는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DB의 오류가 제대로 수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명부 DB는 국가기록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기록의 보존을 주 업무로 삼는 기관이다. 명부를 전담, 연구할 전문 인력은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명부를 일부 보유, 전시하고 있는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도 전문적인 분석, 오류 정정 작업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류를 검증·수정·분석할 수 있는 기관은 행정자치부 산하의 지원단이 유일하다. 지원단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명부 DB 상 오류는 16만건이다. 그러나 명부 분석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은 3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봉환 사업 등의 업무를 같이 병행하고 있다. 지원단 관계자는 “인력이 한정된 상태다. 다른 업무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명부 분석, 오류 검증 등의 업무가 활성화되기는 사실상 어렵다”면서 “위원회 후속 업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도 버겁다. 명부 관련 업무를 확대하기는 벅찬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지원단 외 전문 인력의 연구는 막혀있는 상태다.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연구자들도 명부 DB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이는 강제동원 피해 연구가 더딘 원인 중 하나다. 홍성덕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 자료 중에서는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열람이 제한된 것이 많다”며 “자료가 공개되지 않으니 정확한 연구가 어려워 연구자들로부터도 외면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자 A씨도 “정부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에 대한 예산과 인력을 확충하지 않고 있다”며 “오류 정정 의지를 가진 연구자들조차 명부에 대한 전체적인 열람이 어렵다. 현재 명부는 오류를 수정하거나 분석할 기회를 거의 잃은 상태”라고 꼬집었다. 이어 “수집된 명부를 제대로 분석해야 한국 현대사의 기록을 연결시킬 제대로 된 자료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⑫ [단독]오류투성이 ‘피해자 명부’…창씨개명 알아야 확인 가능?▲ 전문가 “검증 없는 명부, 종이조각에 불과…통합된 관리 체계 갖춰야”

전문가들은 명부 등 강제동원 관련 자료를 전담, 연구·관리할 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거 위원회에서 조사과장으로 활동했던 정혜경 일본 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명부는 분석 과정을 거친 후, 실제 사실과 맞춰봐야 가치를 가진다”며 “검증 없는 명부는 종잇조각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앞서 위원회에서는 왜정시피해자명부를 전수조사해 ‘검증-왜정시피해자명부’를 작성했다. 그러나 해당 명부는 지원단에서 내부적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일본 측에 당당히 제시할 수 있는 강제동원의 증거 자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소송, 피해자 지원 등의 업무 등도 이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열 광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는 위원회의 재설립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 지원단에서는 인력 부족 등으로 명부 관련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하는 것 같다”면서 “위원회는 종료됐으나 피해자나 유족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위원회를 새롭게 설립해 남아있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제동원 관련 자료가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강제동원 자료 대부분은 일본어, 한자, 러시아어 등으로 기재돼있다. 명부 검토를 위해서는 해당 언어를 이해,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는 “통합된 관리 체계 하에서 연구자는 강제동원 문제에 어떻게 대응을 할지 살필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 피해당사자나 유가족은 좀 더 쉽게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효상, 박태현 기자 tina@kukinews.com

쿠키뉴스 기획취재팀 spotlight@kukinews.com

영상=윤기만 adrees@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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