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e스포츠는 축구처럼 될 수 있을까?

[e스포츠의 미래를 말하다③] e스포츠 종목의 한계와 가능성

기사승인 2017-10-0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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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e스포츠 선수들의 연봉이 프로야구 선수에 필적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이상혁(페이커)의 경우 국내 프로야구 최고 연봉자인 이대호(4년 150억 원)에 비견되는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스포츠는 각광받는 미래 스포츠 종목입니다. 북미와 유럽, 중국에서 연이어 거대한 투자자가 나타나고 있고 선수들은 일찌감치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국내 시장 규모나 인식은 여전히 초라합니다. 친(親) 게임정권이 출범해 기대를 받고 있지만, 당장의 인식과 시장규모는 마이너 내지는 지하세계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쿠키뉴스 스포츠팀은 e스포츠의 현 주소를 점검하고 유의미한 담론을 제시하고자 이번 연재물을 기획했습니다. e스포츠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스포츠와 e스포츠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 간에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둘 사이엔 분명한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일반적인 스포츠와 다르게 e스포츠는 게임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e스포츠의 종목은 곧 ‘게임’이며 각 게임의 고유한 규칙에 따라 경기가 진행된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게임과 e스포츠가 밀접하지만 동일시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이라고 해서 종류를 불문하고 모두 e스포츠 종목에 편입되진 않는다. 접근성과 방송 중계성 등 나름의 기준과 원칙에 부합해야만 e스포츠 종목으로 거듭날 수 있다. 

▶ 스타크래프트, 한국을 e스포츠 종주국으로 만들다 

전략시뮬레이션, 즉 RTS(Real-Time Strategy) 장르의 하나인 ‘스타크래프트’는 그런 측면에서 e스포츠에 최적화 된 게임이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방송으로 중계하기 적합한 옵저빙 시스템을 갖췄고 운적, 확률적인 요소 또한 거의 배제됐다. 다른 스포츠가 가진 묘미처럼 선수들의 ‘피지컬’에서 나오는 화려한 플레이를 감상하는 재미 또한 일품이었다. 

e스포츠 시장이 활성화 된 최근에야 e스포츠를 염두에 두고 게임을 개발하지만 당시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게임은 아니었다.

PC방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스타크래프트가 몇몇 미디어 관계자들의 눈에 포착됐고 미래를 내다본 이들의 결단에 의해 전국적인 대회로 발돋움했다.

여기에 온게임넷(OGN)을 필두로 게임tv, MBC GAME 등의 방송사가 e스포츠 대회를 열고 중계하기 시작하면서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출범, 숱한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마침 게임 산업 육성에 관심을 가진 정부도 거들고 나서면서 지금의 e스포츠라는 단어도 탄생했다. 

스타크래프트가 불러온 e스포츠의 태동은 점차 한국을 넘어 중국, 서양권으로 전파됐다. 토너먼트식의 일반적인 게임 대회는 미디어, 자본과 결합해 e스포츠로 거듭났다. 한국을 e스포츠 종주국으로 보는 시선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e스포츠가 가진 고민, 종목의 단명(短命)성 

2004년 한 때 10만 명의 구름관중을 모으기도 했던 스타리그의 인기도 영원할 순 없었다. 게임 기술이 진보하면서 패치(Patch) 없이 정체 된 스타크래프트는 점차 인기를 잃어갔다. 여기에 리그 안팎으로 승부조작, 종목사와의 중계권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결국 2012년 스타리그는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게임 전문 리서치 사이트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출시 이후 줄곧 PC방 점유율 1위를 다투던 스타크래프트는 리그가 마무리 된 2012년과 2013년 무렵엔 평균 점유율 3%로 6위에 그쳤다. 

스타크래프트의 빈자리는 2012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리그오브레전드’(롤)가 메웠다. 롤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e스포츠 종목이다. 

게임 월간 접속자 수가 1억 명에 이르는 롤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숱한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1년에 1번 세계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대회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은 지난 2016년 누적 시청자 수가 무려 3억9600만 명에 달했다. 

이밖에도 총상금이 280억원에 이르는 ‘도타’와 유럽의 국민 게임 ‘카운터스트라이크’ 등의 종목이 두루 인기를 얻으며 e스포츠 시장은 산발적으로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목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수명을 잃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e스포츠의 짧은 역사에서 가늠할 수 있듯 e스포츠 종목은 가능성과 한계가 명확하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진보하는 한 게임의 수명은 한정적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유연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제한된 수명은 e스포츠가 지닌 한계이자 고민이기도 하다. 따라서 e스포츠에 안겨진 숙제는 무엇보다 종목 수명 연장과 새로운 종목 발굴을 위한 노력이다.

e스포츠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방송국 OGN의 임태주 국장은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전 세계를 아우르는 e스포츠 종목은 나오지 않았다”며 “e스포츠의 발전은 무궁무진하다”고 e스포츠의 향후 전망을 밝게 점쳤다.

아래는 임태주 국장의 인터뷰다.


Q. e스포츠의 성장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봤다. 한국 e스포츠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하고 확대돼 왔는지 설명 부탁한다.

=한국 e스포츠는 사회적인 시기와 맞물렸다. IMF가 터져서 많은 직장인들이 사회로 빠져 나와 PC방이라는 창업 아이템을 찾던 때였다. 이들이 동네 단위 PC방에서 크고 작은 대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 본 몇몇 미디어 관계자들이 저걸 방송으로 해서 대회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가졌고 실행에 옮기게 됐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이 미디어가 결합된 전국단위의 대회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젠 전 세계가 한국의 e스포츠를 포맷으로 해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하면 e스포츠라는 등식은 앞으로도 계속 성립될 거다. 다만 한국의 e스포츠 시장 전망이 마냥 밝다곤 볼 수 없습니다. 중국은 거대 자본으로, 북미나 유럽은 게임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e스포츠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중이다. 우리도 발 맞춰 나아가야 한다.

Q. e스포츠 현재 인기에는 OGN의 역할이 컸는데,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 리그오브레전드와 오버워치 등의 e스포츠화를 OGN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종목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OGN만의 특별한 기준과 원칙이 있는지?

=우리는 자체적인 툴(tool)을 갖고 있다. 가령 이 게임이 재미가 있는지, 중독성이 있는지, 중계를 하기는 좋은지, 운에 의해서 승부가 결정 나지 않는지 등의 기준이 결집된 툴에 의해 종목을 선정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보다 가장 집중하는 건 공정성이다. 같은 조건에서 실력을 겨룰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관전의 편의성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e스포츠에서 팬들이 볼 수 있는 건 컴퓨터 앞에 앉은 선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 선수들의 컴퓨터 안에 있는 영상을 뽑아내고 편집해서 누가 우세하고 어떤 재미가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세한 컨트롤이나 전략에 의해서 우위를 점하고 실력의 편차를 가져올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시장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기존의 시장과 동일한 류의 게임이 들어오면 힘들다. 활동하는 게임과는 다른 장르가 들어와야 관심을 받고 성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Q. e스포츠가 지적받는 한계 중 하나는 수명이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저문 것처럼 얼마든지 롤과 오버워치 리그가 사라질 수 있다. 수명연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나는 e스포츠가 나오면서 게임의 수명이 연장됐다고 본다. 스타크래프트가 10년 넘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도 e스포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로 선수들의 현란한 플레이를 보면서 감탄하고, 즐기고 공감하면서 게임 자체에 대한 재미가 더욱 부각됐다. 

이젠 자연스레 e스포츠에 투자하는 게임사가 수명을 더 길게 가져가게 됐다. 월드컵 기간 동안 축구의 인기가 치솟는 것처럼 e스포츠도 매 해 굵직한 국제 대회와 같은 빅 이벤트를 준비한다. 더불어 게임 회사의 밸런스 패치, 관객 피드백 등을 활용해 수명을 연장하려 애쓴다. 

수명을 늘릴 순 있어도 영원한 게임은 없다. 새로운 게임 발굴과 시도가 핵심이다. 우리 OGN은 끊임없이 새로운 종목을 발굴하고 e스포츠화 하려 노력 중이다.

베인글로리라는 모바일 게임을 e스포츠화 시킨 것이 좋은 사례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모바일 게임을 e스포츠화 시켰다. 결과적으로 시청률과 시장 파급력은 크지 않았지만 글로벌 e스포츠 종사자들은 이를 신선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성공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장담하고 투자하지 않는다. 게임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종목을 발굴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모든 종목이 성공할 수 없지만 이 가운데서 스타크래프트나 롤 같은 빅타이틀 컨텐츠가 탄생한다. 시도 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결과물은 없었다. OGN은 계속 노력할 것이다. 

Q.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e스포츠를 공식 종목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앞으로의 e스포츠 전망은?

=e스포츠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사실 e스포츠는 이제 시작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 중에 e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의 비율이 아직 50%를 넘지 못한다. 

하지만 동북아가 중심이었던 e스포츠 시장이 이젠 유럽과 북미와 같은 큰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때문에 IOC에서도 정식 종목 채택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 전 세계를 아우르는 e스포츠 종목이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게임은 PC게임이 될 수도 있고 콘솔 게임 혹은 모바일 게임이 될 수 있다. 현재의 e스포츠 종목을 잘 구려나가면서 가능성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런 단계를 밟아나가야 정식 종목 채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작이다. e스포츠는 100m 달리기를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 언젠가 삶 속에 스며들 e스포츠를 꿈꾸며 

시장조사 전문업체 ‘뉴주’가 올 초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e스포츠 시장의 규모는 무려 6억9600만 달러(한화 약 7900억 원)에 이른다. 

또 뉴주는 2020년엔 e스포츠의 시장규모가 14억8800만 달러(한화 약 1조68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e스포츠의 잠재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e스포츠의 가능성도 범주를 넓혀가는 중이다. AR(증강현실)과 VR(가상현실)을 이용한 게임이 속속 등장 중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11명의 사람들이 땀 흘리며 함께 축구 게임을 즐기는 일이 더 이상 꿈만 같은 일은 아니다. e스포츠팬들이 가상 경기장에서 그들의 경기를 현장감 있게 즐기는 순간도 머지않았다. 

[기획] e스포츠는 축구처럼 될 수 있을까?

세계적인 스포츠 종목인 축구 역시 단순한 공놀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변형되고 발전돼 지금의 축구에 이르렀다. e스포츠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관계자들의 예측처럼 언젠가는 e스포츠에도 축구와 같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종목이 나타날지 모른다. 

물론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다. 프로게이머와 개발사, 미디어의 노력에도 여전히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게임’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중독물 혹은 부정한 것에 그친다.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e스포츠 종목 선정 기준을 ‘비폭력’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시선에 일각에선 게임이 문화, 혹은 놀이로 머무르면 충분하지 꼭 스포츠가 돼야 하냐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한다. 게임을 스포츠에 편입시키려 애쓰는 것이 오히려 게임의 특성과 고유성을 무시하고 게임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현재로선 e스포츠가 떳떳한 스포츠의 장르로 거듭날지,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문화로 회귀할 지는 가늠할 순 없다. 다만 종목선정을 향한 치열한 고민과 발굴이 계속 된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레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스포츠가 여타 스포츠처럼 우리의 삶과 문화 전반에 스며드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영상 촬영·편집=김혜성 영상기자·전덕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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