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 핵심 ‘예비급여’, 이대로 괜찮은가

왜곡된 의료체계의 필연적 결과물, 하지만… 필요악 vs 만능열쇠

기사승인 2017-10-20 08: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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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건강보험 보장률 70%의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정부는 가능성을 열어줄 결정적인 열쇠로 ‘예비급여’를 들며 성공을 자신했다. 

통제에서 벗어나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되는 ‘비급여’ 대부분을 예비급여라는 이름아래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조율하고 관리할 때, 보장성 강화를 위한 각종 장치들이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이다.

실제 손영래 보건복지부 비급여관리팀장은 18일부터 3일간 부산에서 열리는 대한예방의학회 70주년 기념 학술대회 둘째 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방향과 쟁점을 발표하며 “문재인 케어의 핵심전략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이며 그 수단이 예비급여”라고 전했다.

그리고 인적가치는 저평가되고 물적가치는 고평가된 수가구조의 불균형과 그로인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만들어지는 비급여로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메워온 왜곡된 의료체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깰 도구이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라는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자리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예비급여의 도입배경과 필요성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수가구조의 개편과 증가하는 의료비에 따른 가계부담을 줄이고, 민간실손보험으로 부담을 줄이려는 가계의 보험료 이중부담 구조를 타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예비급여가 만능열쇠처럼 이곳저곳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들을 모두 풀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동의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손 과장 또한 제도의 한시성을 언급하며 문을 열 열쇠일 뿐 전가의 보도는 아니라는 뜻을 내비쳤다.

문재인 케어 핵심 ‘예비급여’, 이대로 괜찮은가
◇ 인간의 본성 억눌러 성공할 수는 없다?

가장 크게 문제를 제기한 인물은 서인석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였다. 그는 “예비급여는 보장이 아닌 비급여 팽창을 막는 제도”라며 하나의 행위 혹은 치료재료에 대한 가치를 점수화한 ‘상대가치점수’가 갖는 한계를 그대로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가를 의미하는 환산지수가 해마다 정부와 의료공급자 간의 협상으로 정해지면 개별 행위나 재료가 갖는 가치를 곱해 가격을 결정하는 현행 수가체계 상, 개개의 행위나 재료의 가치를 모두 나눠 책정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획일적으로 분류되고 점수가 매겨져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 이사는 빅5로 불리는 상급종합병원과 지역 병원의 MRI 비용차를 알고도 상급종병을 찾는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 언급하며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의학적 기술과 장비의 차이, 사회적 평판이 갖는 의미에 다른 가격을 매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정부에서 MRI의 비용을 하나로 표준화했을 때 이것은 국민의 공익을 위한 올바른 선택일지, 아니면 하향평준화이자 민간 의료기관에게 손해를 강요하는 행위일지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화두를 던졌다.

여기에 “얼리어답터에게 1년 후에 나올 물건을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지금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이는 의료인과 비의료인을 떠나 인간의 입장에서 자율성과 본성의 문제”라며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의사협회가 예비급여와 급여제도에 비판적 시각을 갖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기존의 관행수가보다 상대가치체계가 낮거나 환산지수를 급격히 높일 수 없는 체계에서 등재될 수밖에 없는 문제, 급여기준과 심사기준의 경직성으로 의료의 자율권을 침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당장 노후 장비로 찍은 MRI와 최신 기기로 찍은 MRI의 차이를 상대가치점수에 달리 반영하기가 힘들고, 같은 장비로 찍은 MRI라도 촬영 부위나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난이도를 모두 구분해 가격을 정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하 보의연) 박동아 연구위원 또한 “예비급여의 적용기준을 정책적으로 결정한다면 행위의 우선순위뿐만 아니라 적응증에 따른 행위를 구분해 적용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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