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파일] 여성이란 이유로 ‘설거지옥’이라니!

‘며느라기 명절잔혹사’로 본 여성인권과 성평등

기사승인 2018-02-21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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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의 아이파일(I-File : Investigative reporting File)’은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지나쳤던 일주일 동안의 탐사보도를 풍부한 데이터와 자료, 증언을 더해 쉽고 흥미진진하게 전하는 코너입니다. 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증언이나 정보를 이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매 연재에는 취재기자의 후일담과 주관적인 시각도 집어넣었습니다. 독자들의 응원과 질책, 제보와 참여를 기다립니다.

시댁 가면 가만히 앉아 있기가 영 불편해서 차라리 설거지라도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솔직히 앉아 있는 게 편하지 어떻게 설거지하는 게 편해!”

웹툰 <며느라기>의 한 구절입니다.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고스톱을 치는 동안, 여성들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모습, 익숙한 풍경일 겁니다. 우리네 명절이란 대체로 이런 모습이었죠. 제사 음식을 만들고 식사 준비를 하고 나면,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가 며느라기를 기다립니다. ‘허리 한 번 못 펴고설거지를 하는 동안, 안방과 거실에선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다 한 마디. “며느라기야, 과일 좀 내오니라.” 설거지옥(설거지와 지옥을 합친 말. 명절 스트레스와 시집살이를 나타내는 신조어)에 시달리는 여성들과 이를 방관하는 남성들, 그 안에는 여성인권의 문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이파일: 뻔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명절을 이틀 앞둔 날 저녁이었다. ‘며느리 사표라고 쓴 봉투를 들고 시부모님을 찾아갔다. 아버님은 이리저리 봉투를 열어 살피셨다. “이게 무엇이냐?” “죄송합니다. 맏며느리 역할을 그만두겠습니다.” 아버님은 잠시 할 말을 잊으신 듯 가만히 계셨다. -김영주 저 <며느리 사표>

명절마다 등장하는 뉴스가 있습니다. ‘명절 스트레스명절 증후군을 다루는 기사들 말입니다. 퍽 상투적이나 이런 기사들이 번번이 잘 팔리는이유는 여성들의 고충이 현재진행형인 탓이기도 합니다. 당초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이 2회에 걸쳐 선보인 기획 연재 <며느라기 명절잔혹>하게 명절 증후군을 짚어보자는 취지로 진행되었습니다만! 설문 과정에서 접한 사연의 구구절절함 때문에 생생한 목소릴 전하는 것으로 급선회되었습니다.

설을 앞두고 과거 취재로 신세를 진 적이 있었던 A씨에서 SOS를 보냈습니다. A씨에게 부탁해 온라인 기혼 여성 커뮤니티에 명절 사연 수집을 부탁하려는 찰나,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무얼 물어봐야할지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 겁니다. 그럴 수밖에요. 독신 남성인 취재기자가 며느라기의 고충을 상상이라도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겨우 생각해낸 질문은 세 개. 설에 당시 시댁 및 가족 안에서 느꼈던 감정 시댁에서 들었던 잊지 못할 말이나 에피소드 가족들에게 바라는 점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A씨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기혼 여성 회원들의 동참으로 생생한 목소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50여명의 여성들이 보내온 웃픈사연은 구구절절합니다. ‘며느라기들은 친정 엄말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시댁에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외로움을 호소했습니다. 시댁에서 명절 연휴의 팔할을 보내다 정작 친정에 갈라치면 눈치를 봐야하는 기혼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며느리 역할을 당연히 여기는 시댁의 태도는 시대 변화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마인드를 가진 시댁이 너무 많아요. 시댁이 바뀌질 않으니 명절이 끝나면 꼭 부부싸움이 나요. 꼭 기사화해 주세요.” -기혼여성 B

아이파일: 맞벌이는 해도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

시댁은 대식구입니다. 명절이 되면 식사도 2~3번 이상 차려야 합니다. 설거지도 어마어마하고요. 남자들은 모여서 볼링, 당구, 족구를 하러 나가서 저녁때나 들어오더군요. 다시 저녁식사를 차리고 치우면 밤 10시 가까이 되죠.” -기혼여성 C

한국 전체 가구의 43%는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2012). 이는 바깥일=남성, 집안일=여성이란 전통적인 역할 분담이 이미 파괴됐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도시화와 핵가족으로 인해 부부의 가사노동 협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괴리는 앞선 사례에서 보듯 큽니다. 명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가사 노동에 참여하는 남성의 비율은 높지 않습니다. 서구조차 남성이 가사 노동에 할애하는 시간은 여성의 1/3에 불과합니다만, 한국은 맞벌이 부부조차 여성의 1/6시간만을 사용할 뿐입니다.

아이파일: 여성, 그리고 인권

명절 증후군이나 가사 노동 스트레스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여성 인권과도 밀접한 관련을 보입니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죠. 근대의 여성인권운동은 1891년 프랑스의 올랭프 드 구즈가 발표한 여성권리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en)’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선언은 프랑스 혁명 이후 의회에 통과된 남성 및 시민의 권리선언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the Citizen)’의 내용과 구조를 따랐습니다. 다만, ‘man’‘woman’이나 ‘man and woman’으로 바꾸었죠. 여성권리선언이 발표된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대다수 국가에서 여전히 여성들은 100%의 법적 독립성과 평등을 획득하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여성인권침해는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관여된 사적 영역에서 발생합니다. 여성이란 이유 때문에 가사 노동을 일임하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린 관습들은, 그러나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해왔습니다. 정리하면, 사적 영역에서 빈번한 여성의 인권 침해 역시 인권문제로 바라봐야한단 겁니다.(1) 이러한 내용은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은 물론, 1993년에 있었던 비엔나 세계인권회의 및 1995년 북경 제5차 세계여성대회의 구호이기도 했습니다. 북경대회 당시 여성인권운동이 지향했던 것은 성차별 극복과 남녀평등과 같다는 것이었죠. 

나를 살리고, 내 딸을 살리고, 주변의 많은 여성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글로 썼어요.” -<며느리 사표>, 김영주 

아이파일: ! 성평등!

여성가족부가 주관한 성평등 문화 확산 태스크포스(TF)’는 최근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10대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육 및 미디어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각각의 과제는 이렇습니다. ▶① 학교 교과목의 성평등 내용 강화 ▶② 교과서 성평등성 모니터링 강화 ▶③ 성평등 교육 표준 매뉴얼 제작 및 콘텐츠 개발 확산 ▶④ 사범대, 교대 등 예비교사 대상 성평등 의식 제고 ▶⑤ 현직 교사 대상 성평등 교육 실시 ▶⑥ 성평등 교육의 보편화 ▶⑦ 인터넷 개인방송 등 다양한 형태의 1인 미디어 자율 규제 및 성형·외모 관련 자율규제 가이드라인 마련 ▶⑧ 뉴온라인 리터러시 교육 ▶⑨ 성평등 미디어 콘텐츠 제작 지원 및 교육 ▶⑩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및 담당수사관 성인지 감수성 제고 등이 그것입니다. TF의 이번 과제 발표는 반갑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성숙도나 발전도를 고려하면,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뿐인 발표가 아니길 바라지만, 장기적인 의식제고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지는 두고 볼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아이파일] 여성이란 이유로 ‘설거지옥’이라니!

(1) <여성인권으로 본 여성노동권과 여성노동정책> 강남식

인용 보도 시 <쿠키뉴스 탐사보도>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쿠키뉴스에 있습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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