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피임약 처방, 가톨릭은 안합니다

종교, 윤리 문제로 응급피임약 처방 금지 방침...성폭력 피해자도 예외없어

기사승인 2018-02-23 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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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피임약 처방, 가톨릭은 안합니다

응급(사후)피임약 처방이 필요한 경우 가톨릭 계열 병원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22일 쿠키뉴스 취재결과 가톨릭계열의 다수 의료기관이 응급피임약 처방을 자체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응급피임약은 수정란이 자궁내막에 착상하는 것을 방해해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 의약품이다. 성관계 후 12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95%)가 좋고, 늦어도 72시간 내에는 복용해야 효과(42%)를 볼 수 있다.

이 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진단 후 처방받을 수 있다. 반드시 정해진 시간 내에 복용해야 하지만, 병원이 문을 닫은 늦은 저녁이나 성폭력 피해 등 위급상황 시에는 복용 가능 시간 내에 약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 같은 지적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 8월 종합병원 이상 응급실에서는 처방·조제가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앞서 6월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고자 했지만 종교계·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된 것에 따른 보완 조치다. 

그러나 일부 병원의 응급실과 산부인과에서는 응급피임약의 처방조차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다.

서울에 위치한 A대형병원 관계자는 “낙태와 피임을 반대하는 천주교 재단이라서 응급피임약 처방이 안 된다”며 “응급실 처방이 안 되고, 담당 진료과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약 처방은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재단의 다수 병원도 마찬가지로 응급피임약을 처방하지 않았다.

서울 B병원 관계자는 “태아의 생명에 위해가 가는 행위라 (응급피임약을)주지 않는다. 응급실, 진료과 둘 다 그렇다”고 답했다.

경기도 C병원은 “응급피임약은 처방하지 않는다”며 성폭력 피해자일 경우 인근 대학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D,F병원도 “천주교 재단이라 응급피임약 처방은 (우리 병원에) 없다”고 했다. 

해당 병원들은 모두 성폭력 피해자인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고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 조치와 관련해 모 병원 관계자는 "사정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며 말을 흐렸다. 해당 병원은 여성가족부가 지정한 성폭력 피해자 전담 의료기관 중 한 곳이다.

가톨릭을 표방하는 모든 의료기관이 응급피임약 처방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외에도 여러 의료기관이 응급피임약을 처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기도 모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ㄱ응급의학과 의사는 “과거 지방 종합병원에서 인턴으로 있을 때 종교적 이유로 응급피임약 처방하지 말라는· 방침이 있었다”며 “아예 원무과에서 환자를 안 받는 방식”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해당 소식을 접한 ㄴ씨(27)는 “전혀 몰랐다”며 “임신 가능성을 막는 약인데 태아가 위험해서 처방을 안 한다니 이상하다”고 전했다.

ㄷ산부인과 전문의도 “처음 들어본 이야기”라며 “응급실에서 직접 약을 주는 곳도 있고 여의치 않으면 보통 처방전을 발급한다. 강간당해 오는 환자들에게는 응급피임약을 기본적으로 주고 검사 등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ㄹ약사는 “응급피임약은 착상이 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약이다. 피임하지 않았을 경우 종교적, 윤리적 우려가 더 크지 않느냐.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고 개인의 권리에 해당한다”며 “전날 저녁에 성관계가 있었다면 다음날 아침에는 반드시 먹어야만 12시간을 맞출 수 있다. 접근성이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와 관련 김진선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생명존중사상이나 성문란을 염려해 응급피임약을 반대하는 종교계의 논리는 말도 안 된다. 피임약은 말 그대로 임신을 예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며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는 결코 적지 않다. 시기를 놓치면 임신가능성이 높아짐에도 피임약 접근성은 매우 떨어진다. 특히 청소년, 저소득층, 장애아동 등 취약계층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6년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보류한(2012년) 이후,  3년간(2013~2015) 피임제 사용 실태, 부작용, 인식도 등을 종합 검토한 끝에 피임제 분류를 현행대로 계속 유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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