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히고 싶어도 밝힐 수 없는… ‘몰카’ 피해자들의 한숨

여성의 몸을 훔쳐 파는 디지털 성범죄의 진화

기사승인 2018-03-19 0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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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자친구인 지훈과의 하룻밤이 담긴 동영상이 시중에 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희원은 지훈과 합세, 동영상의 진원지를 찾아 나선다. 영화 연애술사는 속칭 몰래카메라를 소재로 주인공이 범인을 쫓는 버디무비와 로맨스를 버무렸다. 영화는 시종일관 남녀 여주인공의 좌충우돌을 유쾌하게 그린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영화의 소재였던 몰카는 디지털 성범죄로써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친 지 오래다. 디지털 성범죄 발생건수는 지난 20122400건에서 20165185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6470건이 적발되는 등 급증 추세에 있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선 동영상의 진원지나 가해자, 몰카 영상의 유통을 차단하는 것이 어렵다는 데에서 범죄의 심각성이 발견된다.

밝히고 싶어도 밝힐 수 없는

최근 미투 운동(#MeToo)이 한국 사회 곳곳의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들추고 있다. 대중문화계에서 시작된 미투의 물결은 이제 정치권을 강타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미투는 먼 나라 이야기와 다름없다.

불특정 다수에 의해 본인의 몸을 강제로 찍혀 심적 피해를 겪고 있는 피해자들이 어렵게 세상에 목소리를 낸 것은 지난해 11해외 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무분별한 일반인 모욕 사진의 유포를 처벌해주세요란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이러한 목소리에 국회도 화답했다. 지난달 20일 불법촬영 범죄자에게 촬영물 삭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불법촬영물 삭제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데 있다. 또한 삭제 비용은 성폭력 행위자가 부담토록 하거나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피해자가 돈을 들여 피해 영상을 지우는 수고를 덜 수 있게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남인순 위원장은 불법 촬영물이 정보통신망에 유포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피해자의 고통이 극심한 반면, 문제해결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실정이라며 해당 법안은 가해자에게 삭제비용을 부담토록 하고, 국가가 불법촬영물 삭제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능화되어 가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는 법망을 피해 나날이 지능화되고 있다. 몰래카메라 촬영 영상의 유통 속도는 스마트폰 보급과 초소형 카메라의 개발과 맞물려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밝히고 싶어도 밝힐 수 없는… ‘몰카’ 피해자들의 한숨

여성의 몸을 훔쳐 파는 범죄

범죄는 진화한다. 본지에 사연을 보내온 한 제보자의 사례는 어떻게 디지털 성범죄가 2차 범죄로 이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전 남자친구로부터 성관계 영상을 빌미로 성매매를 강요당하다 결국 경찰에 신고한 제보자는 “(남자친구는) 지인과 인터넷에 제 몸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이렇게 사느니 차라니 사회적 매장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차례 언론 보도로 전해진 바 있는 P2P사이트나 해외계정을 통해 피해자의 영상이 광범위하게 유통·판매되는 경우다. 몰카는 더욱 은밀하고 치밀하게 촬영되고, 한번 유출된 영상의 완전한삭제는 매우 어렵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다. 익명을 요구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B씨는 피해자가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영상이 확산된 경우가 대다수라며 ··일을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순식간에 확산되면 최초 영상 유출 진원지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우려했다.

제보자 B씨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자신은 사회적으로 매장됐다고 호소했다. 숙박업소에서 본인의 몸이 몰래 촬영됐음을 알게 된 B씨는 영상을 삭제하는데 수백만 원의 비용을 들였다고 했다. “거리에서 웃음소리만 들려도 날 비웃는 것처럼 느낀다는 제보자는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2016년 기준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몰카 피해자의 89.01%가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찍혔으며, 10.99%는 지인에 의해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3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와 더불어 부당한 폭력을 제거하고 성평등 인식을 확산하고자 한 세계 여성의 날은 매년 돌아오지만, 여성을 성적 착취의 도구로 악용하는 인식과 폭력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여성의 날이 도래키란 요원해 보인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절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어요. 사람에 대한 불신과 저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매 순간이 괴롭습니다.”(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C씨의 말)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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