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드라마 속 노양호-노명희, 현실의 조양호-이명희

드라마 속 노양호-노명희, 현실의 조양호-이명희

기사승인 2018-04-25 13:47:04
- + 인쇄

[친절한 쿡기자] 드라마 속 노양호-노명희, 현실의 조양호-이명희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종영된 지 한 달이 지난 드라마가 언급되는 건 드문 일입니다. 그럼에도 소환된 건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파문과 드라마의 연관성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힌트는 등장인물의 이름에 있었습니다. '황금빛 내 인생'에 등장한 노양호(김병기), 노명희(나영희)의 이름이 한진그룹,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과 부인 이명희와 같기 때문이죠.

캐릭터 설정과 내용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점은 더 많습니다. 먼저 노양호와 노명희는 재벌가의 특권의식이 강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무릎을 꿇게 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해석하고 잘라내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가족들을 볼모로 사회적 약자인 서태수(천호진)에게 범죄자 누명을 쓰게 하는 장면은 갑질의 절정이었습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갑질이 도가 지나쳐 불편하다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현실을 넘어설 수 없는 걸까요.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조양호 일가의 갑질 행태는 드라마에서 보던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업체와 회의 도중 팀장에게 물벼락을 뿌렸다는 충격적인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녀가 사무실에서 부하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고 폭언을 하는 음성 파일이 공개됐죠. 또 그의 어머니인 이명희 대표가 운전기사와 집사에게 욕설을 일삼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일등석 라운지에서 음식이 식었다는 이유로 접시를 집어 던지거나, 호텔 직원이 자신을 ‘할머니’라 부르자 해당 직원을 그만두게 한 일화도 공개됐습니다. 조 전 전무의 언니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4년 전 땅콩 회항 사건을 일으킨 것이 이해될 정도입니다.

극중 민 부장(서경화)와 관련된 스토리는 작가가 실제 조양호 일가의 이야기를 듣고 만든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합니다. 민 부장은 해성그룹의 직원이었지만, 현재는 오너 일가의 집안일을 돌보는 집사이자 비서로 지내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오너 일가는 민 부장을 하인처럼 취급했습니다. 화나는 일이 생기면 화풀이하는 대상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탓하는 대상도 모두 민 부장이었습니다. 민 부장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에도 이들은 위로 한 마디 없었습니다. 수표 몇 장을 주며 은혜를 베푸는 척 하는 노명희에게 질린 민 부장은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되죠.

SBS 주말드라마 ‘착한 마녀전’는 더 직접적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패러디했습니다. 항공사 전무인 오태리(윤세아)가 뜨거운 라면을 가져온 승무원에게 그릇이 뜨겁다고 화를 내는 장면이 등장한 것이죠. 승무원은 규정대로 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오태리는 승무원의 머리에 라면을 쏟아 붓고 결국 경찰에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재벌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입니다.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그렇지 않은 드라마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죠.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기 마련입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화려한 재벌가의 일상을 보며 대리 만족을 하기도, 판타지를 꿈꾸기도 하죠.

하지만 그건 드라마 속 이야기입니다. 드라마에서 노양호 회장은 이사회에 의해 해임됩니다. 재벌을 악역으로 등장시켜도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은 얼마든지 가능하죠. 현실은 어떨까요. 온갖 기행과 악행을 저지른 재벌 일가가 깊은 반성 끝에 극적으로 변화하는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해서 만들어지지만, 현실이 드라마의 영향을 받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중요한 건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인해 큰 상처를 입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진급이 어려워지거나 일을 그만두게 되어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기도 하죠. 이번 논란으로 재벌 일가가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 달리, 무거운 책임감과 큰 영향력을 갖춰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모두가 되새기지 않았을까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