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침반 없이 배 띄우려는 최저임금위원회

기사승인 2018-05-1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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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나침반 없이 배 띄우려는 최저임금위원회일에는 알맞은 속도가 있고 과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나침반 없이 바다에 나간 배는 백이면 백 문제가 생긴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는 11대 최저임금위원이 최근 공식 위촉됐다. 위원장은 류장수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로, 위원회는 최저임금 심의에 착수하게 된다.

내년 최저임금인상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개문(開門)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7530원인 최저임금이 2020년까지 1만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19년과 2020년 각각 15% 이상씩 인상돼야 한다. 이는 지난해 인상된 16.4% 인상분과 흡사한 수준이다.

문제는 국회 파행 등으로 현안해결이 미뤄지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확대 등 제도관련부문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최저임금인상이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표볼 수 있는 정보의 통계자료도 텅 비어있다. 충분한 검토와 계산이 뒷받침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지침으로 삼을 나침반이 없는 셈이다. 

그간 통계청은 매년 3·8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통해 근로형태와 청년, 노년 층 등의 경제활동 양태와 변화를 수치화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통계청은 8월에만 부가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여파를 모니터링하고 분석할 자료가 없다. 급한 김에 고용부가 생산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자료를 활용할 수 있으나 국민 전체의 경제활동 특성을 관통해 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이번 회의에서 근로자위원 측과 사용자위원 측이 대립각을 세운 것도 이러한 문제에서 기인한다. 근로자의원 측은 ‘2020년까지 1만원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상당한 진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사용자위원 측은 지난해 인상폭이 높아 현장 사업주 부담이나 고용시장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심의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제도개선 작업은 계류 중이다. ·사 합의가 되지 않아 공은 국회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같은 상황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어떻게 변경할지 등 제도개선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최저임금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일각에서 최저임금산정을 9월로 미뤄야한다는 차선책을 언급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다.

그럼에도 노동계는 선적용 후개선을 내세우고 있다. 근로자위원 측은 지난해 16.4%의 최저임금이 인상됐음에도 휴게시간을 늘리거나 산입범위를 임의로 확대하는 등의 일이 발생해 안한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최저임금 인상을 적용하고 추후 제도 개선을 이어가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휴게시간을 늘리거나 산입범위를 임의로 확대하는 등의 일은 모두 충분한 고민과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여기서 선적용 후개선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자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한파와 물가상승 등 직·간접적인 여파를 불러왔다. 당시 충분한 연구와 고민이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적용됐을 때의 유기적인 문제에까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속도와 안정 두가지를 모두 가져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급히 먹는 밥은 체한다는 것이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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