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사업의 시작과 끝 ‘지식재산권(IP)’

기사승인 2018-06-1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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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업계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IP(지식재산권) 중요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과거 IP 수입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다양한 국산 IP를 배출하고 관련 사업의 확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4일 나란히 서비스를 개시한 모바일 게임 ‘뮤 오리진2’와 ‘카이저’는 현재 각각 구글 플레이 매출 3위와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부적인 게임성에 차이는 있지만 MMORPG(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장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고 사전예약부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그래픽 등 일부 요소에서는 카이저가 상대적 우위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뮤 오리진2가 더 높은 성적을 기록하는 이유로 업계는 ‘IP 파워’를 꼽는다. 웹젠의 2002년 PC 게임 ‘뮤’를 원작으로 개발된 만큼 그 인지도를 등에 업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카이저는 패스파인더에이트와 넥슨이 선보인 자체 IP로 원작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IP의 영향력은 다른 게임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매출 최상위권에 포진한 ‘리니지M’, ‘리니지2 레볼루션’, ‘검은사막 모바일’ 등도 모두 PC 게임을 모바일로 각색한 사례다.

게임 외에 유명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른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예도 있다. 6위에 버티고 있는 ‘삼국지M’은 너무도 익숙한 소설을 소재로 다른 전략 장르 게임들을 압도하고 있고 이 밖에 여러 전략 게임이 같은 세계관을 활용하고 있다. 넷마블의 3년차 ‘마블 퓨처파이트’는 올해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업데이트를 통해 10위권에 재진입 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 약 2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포켓몬고’가 꼽힌다. 일부는 포켓몬고의 AR(증강현실) 기능에 주목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새로울 것이 없던 이 기술을 활용해 20년 동안 인기를 지속한 ‘포켓몬고’ 애니메이션 세계를 구현해 낸 것이 성공 요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처럼 익숙한 IP를 활용할 경우 그 효과는 원작 인지도에 따른 마케팅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용자들이 등장인물이나 세계관에 애착을 가질 여지가 확대된되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이용을 유도하고 심지어 게임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의 재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삼국지M도 이 같은 맥락의 사례다. 전략 게임의 경우 대부분 그래픽 연출이 단순하지만 원작의 설정과 느낌을 일정 수준 이상 구현하면 이용자들은 스스로 인물과 세계관에 감정을 이입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3D 그래픽과 여러 부가 콘텐츠를 더한 전략 게임 ‘아이언쓰론’이 출시됐지만 삼국지 소재 경쟁작 이용자를 흡수하지 못한 것은 이용자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관에 몰입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게임사들은 이미 이 같은 IP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 하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명 애니메이션 원작 ‘페이트 그랜드오더’, 동명 웹툰을 소재로 한 ‘갓오브하이스쿨’ 등 다양한 게임들이 서비스 중이며 이들은 최근 각각 ‘공의경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등과 같은 다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협업 이벤트를 선보이고 매출 순위를 역주행 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보다 앞서 유명 애니메이션, 영화 IP를 구축해온 미국, 일본 등에서는 더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자사의 인기 게임 캐릭터와 세계관을 한 데 모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내놨고 일본 반다이남코는 1990년대부터 각종 일본 애니메이션 판권을 기반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선보여 왔다. ‘워크래프트’, ‘파이널판타지’처럼 게임이 영화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까지 IP 수입국 입장이었던 한국도 수출국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다.

이미 1998년작 ‘리니지’를 대표 IP로 구축한 엔씨소프트는 인기를 모은 후속 게임들의 IP까지 적극 활용, PC판 리니지를 각색한 리니지M으로 모바일 매출 1위를 꿰차고 넷마블에 ‘리니지2’ 등 IP를 제공하면서 지난해 2028억원의 로열티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넷마블이 올해 선보일 ‘블레이드 & 소울 레볼루션’도 엔씨소프트의 IP 기반이다.

넷마블은 엔씨소프트의 IP 활용을 넘어 자체 IP를 강화, 후속 게임들을 준비하는 동시에 2013년부터 선보인 게임 캐릭터 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오프라인 매장까지 본격 선보였다.

올해 문을 연 ‘넷마블스토어’에서 넷마블 대표작 ‘모두의마블’, ‘세븐나이츠’ 등의 캐릭터 피규어, 생활용품 등 300여종의 상품을 판매하고 이들 게임 상품은 매장 오픈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판매량이 늘었다. 오픈 후 2개월여 동안 다녀간 방문객만도 약 13만명에 달한다.

넷마블은 또 올해부터 ‘요괴워치’, ‘매직 더 개더링’,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야채부락리’, ‘스톤에이지’ 등 다양한 IP 활용 게임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또 다른 국내 대형 게임사 넥슨은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등을 대표 IP로 보유하고 있고 EA 등의 다양한 해외 게임을 퍼블리싱 하고 있다. 특히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연매출 약 2조3000억원 규모의 넥슨 최대 수익원 중 하나가 됐다. 여기에 넥슨 보유 IP를 활용한 오프라인 콘텐츠 축제 '네코제'를 2015년 12월부터 5회 진행, 자체 브랜드(PB) 상품과 아트웍 등을 제작자와 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 상품을 취급하는 '네코제 스토어'도 열었다.

넥슨은 지난해부터 ‘액스’, ‘오버히트’, ‘듀랑고’ 등 자체 게임들을 선보이며 상대적으로 부족한 모바일 게임 IP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새 모멘텀(동력)이 필요하다. 빨리 위대한 IP를 탄생시키는 게 중요한 업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들의 국내 게임 IP는 해외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넷마블의 세븐나이츠 등은 이미 해외에 진출한 타이틀이며 특히 넷마블은 지난해부터 리니지2 레볼루션을 중심으로 해외 매출 비중을 54%까지 늘렸다. 넥슨은 중국 시장에서 던전앤파이터 등의 흥행이 올 1분기 8953억원의 분기 최대 매출 기록을 이끌었다.

중견 게임사들도 IP 경쟁에는 양보가 없다.

‘미르의 전설’ IP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위메이드는 최근 현지에서의 해당 IP 보호와 사업 강화만을 위한 법인 위메이드열혈전기3D를 출범시켰으며,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PC와 모바일에 이어 올해 콘솔 버전까지 선보일 계획이다. 펄어비스는 최근 ‘플레이엑스포’ 게임쇼에서 검은사막 캐릭터 상품을 판매, 수익을 사회공헌에 활용하기도 했다.

4년차 글로벌 흥행작 ‘서머너즈 워’를 배출한 컴투스는 지난해 e스포츠 대회 형태의 팬 축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자체 개발 타이틀이 장기 흥행에 성공하면서 IP 파워를 구축하게 된 예다.게임 사업의 시작과 끝 ‘지식재산권(IP)’

단 일각에서는 아직 국산 게임의 IP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초창기 과정에 있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의 소비자 반응이 이를 뒷받침 한다.

지난 12일부터 미국 LA에서 진행된 국제 게임쇼 ‘E3’에서는 1990년대부터 시리즈를 이어오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캡콤의 ‘레지던트이블2’ 리메이크 버전이 공개되는 등 다양한 IP 신작이 소개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반면, 시리즈 개발 소식만으로 주목을 받는 국산 게임은 아직 찾기 어려웠다. 펍지의 ‘배틀그라운드’ 개발 로드맵 영상이 그 흥행에 따라 이목을 끌었을 뿐 글로벌 시장에서 오랜 인지도를 쌓은 타이틀이 부족한 현실이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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