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로그인] 서구권 MMORPG 시장은 한국에 기회 줄까

기사승인 2018-06-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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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MMORPG(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명가(名家)’ 아니겠습니까”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세계 게임 시장을 흔든 블루홀에 MMORPG ‘에어’를 차기작으로 택한 이유를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이전까지 ‘테라’ 시리즈가 간판 타이틀이었다는 점에서는 납득이 간다.

이는 블루홀 뿐이 아니다. ‘리니지2 레볼루션’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 넷마블, ‘프로젝트TL’을 비롯한 PC·모바일 MMORPG 신작만 4종을 준비 중인 엔씨소프트도 자신들의 강점이 MMORPG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 ‘MMORPG 종주국’이라는 표현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이 인기를 끈 후 2000년대부터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MMORPG가 쏟아졌다. 이렇게 인터넷 회선과 PC방이 발달한 환경을 등에 업고 시장이 급격히 팽창한 것을 이르는 표현이다.

이 같은 역사 측면에서는 국내 게임업계의 MMORPG 경쟁력을 수긍할 수 있다. 또 근래 국내 게임사 다수가 이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MMORPG가 보편화 되지 않은 서구권 공략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노린다.

이 기회는 언뜻 매우 희망적으로 보인다. ‘리니지의 아버지’ 엔씨소프트는 ‘길드워’ 시리즈 등으로 꾸준히 북미 지역에서 입지를 쌓았고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이 글로벌 시장 메이저 MMORPG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을 보면 그렇다. 

또 최근 네오위즈가 2016년 국내에 선보인 ‘블레스’의 글로벌 얼리억세스 버전을 스팀에 선보여 최다 판매 게임에 오른 것만 봐도 충분한 수요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서구권 게임 커뮤니티 다수는 MMORPG 신작에 대한 목마름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국산 MMORPG들이 이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또 어떤 새로운 상대와 경쟁해야 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산 MMORPG 대부분은 서구 시장의 취향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전통적으로 사실적 묘사와 다소 잔혹하거나 어두운 분위기마저 선호해온 북미·유럽에 비해 한국 게임은 보다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소년·소녀’ 캐릭터 디자인과 밝고 화사한 배경을 주로 차용해 왔다.

다수 국산 MMORPG가 귀엽고 만화적인 캐릭터 커스터마이징(꾸미기)을 지원하며 인기를 끌지만 이는 서구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수 취향에 해당한다. 오히려 ‘엘더스크롤’, ‘디아블로’ 등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통한다. 장르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광활한 가상 세계에서 생활하는 MMORPG의 경우 보다 사실적이고 진중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게임성 면에서도 극복할 과제가 있다. 리니지 이후 소재와 세부 시스템만 다른 천편일률적 게임들이 쏟아지다가 2004년 미국 블리자드가 조작과 육성 방법을 완전히 달리 접근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인기를 끌자 우리는 종주국 타이틀이 무색하게 이 공식을 뒤따른 경험이 있다.

지금의 국산 MMORPG들도 보다 풍성한 퀘스트와 액션성으로 과거 ‘리니지 세대’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여전히 서로 닮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상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후 ‘아이온’부터 검은사막까지 그 이상의 ‘레볼루션(혁신)’보다는 ‘에볼루션(발전)’에 그쳤다.

최근 비공개 테스트(CBT)를 진행한 PC판 기대작 중 ‘스팀펑크’ 세계관으로 차별화를 꾀한 에어도, ‘핵앤슬래시’ 액션의 ‘로스트아크’도 보다 ‘예쁘고 화려한’ 외관에 비해 신선한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공중전과 화려한 연출·액션은 흥미로웠지만 이제 과히 새롭지 않다. 이외 대부분 게임사가 ‘양산형’ 소리까지 들으며 쏟아내는 모바일 시장의 ‘자가복제’는 언급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게임 로그인] 서구권 MMORPG 시장은 한국에 기회 줄까

이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도 연관된다. 고도화된 네트워크 환경에 따라 ‘대규모다중접속(MMO)’이라는 멀티플레이 요소 중심으로 발전한 국산 MMORPG와 달리 서구권에서는 보다 RPG(역할수행게임)의 본질에 무게를 두고 멀티플레이를 더해가는 과정의 차이가 나타난다.

즉 국산 게임 다수는 대규모 멀티플레이라는 매력적인 구조를 중심에 두고 퀘스트(임무), PvP(대전) 등 콘텐츠를 더하며 상품성을 개선하는 데 집중한 반면, 치밀한 배경 세계관과 이에 따른 스토리 서사, 캐릭터 설정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때문에 싱글플레이로도 오랜 시간 즐길 풍성한 세계를 구성한 ‘엘더스크롤V: 스카이림’이나 반복적 공략과 아이템 파밍 과정마저 매력적이었던 ‘디아블로2’와 같은 RPG의 본질적 매력은 갖추기 어려웠다. 또 이처럼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 MMO와 결합될 때 국산 MMORPG의 경쟁우위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북미에서 엘더스크롤이 ‘엘더스크롤 온라인’이라는 MMORPG 수작으로 다시 태어나 안착했고, 블레스를 구매했던 다수가 그간의 신작 갈증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게임 콘텐츠에 혹평을 남긴 점 등에 비춰보면 국산 MMORPG가 마주한 과제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북미 게임쇼 ‘E3’에서는 RPG 성장 요소를 적극 차용한 ‘어쌔씬크리드 오디세이’가 등장하고 ‘폴아웃 76’가 대규모 멀티플레이 방식을 적용해 선보이는 등 게임성이 검증된 액션·어드벤처 게임이 장르의 벽을 깨며 발전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틀에 박힌 MMORPG에 설자리가 남겨질 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서구권 MMORPG 시장에 기회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하지만 게임의 본질적 재미에 소홀하면서 기존 ‘흥행 공식’만 앞세운다면 돌아올 결과는 새로운 ‘캐쉬카우’가 아닌 ‘국제적 망신’이 될 수 있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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