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몽골랠리㊥]운전병 출신 죽마고우 3人, 중고차로 달리는 청춘랠리

기사승인 2018-08-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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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꿈에 그리던 2018 몽골랠리 스타트!

체코 외곽 버려진 군 벙커 같은 곳에 위치한 몽골랠리 출발 장소에서 공식 오픈 행사가 시작됐다.  D.P.G.R.A. (Democratic People’s Glorious Republic of Adventuristan), ‘민주적인 사람들의 영광스러운 모험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곳에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333개 팀, 907 명이 출발하게 된다. 몽골랠리의 다소 정신 나간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특색 있게 개조하고 꾸민 자동차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1,000cc 이상의 차량은 추가 비용을 내면 참가할 수 있는데, 숙식 해결이 가능한 버스로 참가한 팀도 있었다. 연인이나 가족 등이 함께 참가하는 등,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팀원 구성도 다양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외치는 환호와 경적 소리 속에서 참가 차량들이 퍼레이드 행렬을 이루어 모험 공화국의 출구를 차례로 나서는 순간, 각자의 랠리가 시작된다. 아미고 팀도 양 쪽에 늘어선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신나게 엑셀을 밟으며 출발선을 넘었다.

우리는 체코에서 출발해 독일, 프랑스 등의 서유럽 국가를 지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에 입국, 러시아의 카잔에서 시작해 몽골 바로 위의 울란우데까지 도착하는 루트를 따라간다. 유럽 국가는 숙소까지 다 정해뒀지만, 러시아 이후의 일정은 닥치는대로 결정하고 해결해 나갈 생각이다.

서유럽 국가간의 이동거리는 약 430~540km 정도. 약 5~6시간씩 운전을 하며 국경을 넘었다. 영국에서는 운전석 방향이 반대라 신경 써야할 부분이 많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우리와 동일한 우측통행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좌회전 신호가 없는 사거리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여유 있는 양보 운전을 선보이는 유럽 운전자들에게 감동을 받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USB 하나 꽂을 길 없는 2003년식 차량에 문명의 이기를 연결해 준 블루투스 카팩을 소중히 여기며 달리던 중, 덴마크 향 고속도로에서 돌을 맞아 앞 유리가 깨졌다. 어차피 몽골랠리 피니시라인에 도달하고 나면 폐차 수순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경미한 수준의 고장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가던 중 차에서 나는 소리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계기판을 보니 배터리 경고등이 떴고, 엔진이 과열된 상태였다.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보니 팬벨트가 끊어져 있었다. 보험사를 통해 견인차를 불렀는데 6시간 동안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포기하려는 순간 견인차가 나타나 근처 카센터로 이동했고, 다행히 별 문제없이 팬벨트 교체 수리를 마칠 수 있었다.

아직 험준한 길은 달리지도 않았는데, 초반부터 다사다난한 과정을 겪다 보니, 10년 이상 된 중고차로 1만 km 이상을 달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워낙 차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주유할 때마다 불스원샷을 넣어 주었다. 그나마 엔진 잡음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8월 1일에는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 국경을 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국경 검문소 앞에 섰을 땐, 곧 광활한 몽골 대륙을 달릴 생각에 한없이 들뜬 상태였다. 그런데 왠걸, 입국 심사를 위해 내민 여권에 문제가 있다며 우리 차를 잡아 세웠다. 우리 여권 중 한 개의 사증란 두 장이 찢어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직전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사용해오던 여권이 갑자기 찢어진 채로 발견되어 우리가 더욱 당황했다.

러시아 국경을 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2016년 ‘희린이가 가재’팀도 차 군인들로부터 7시간 동안 취조를 받았다고 했고, 작년 참가팀 ‘쉘위고’도 입국 수속 밟는데 4~5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그러나 찢어진 여권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없었다.

국경 직원들은 왜 여권이 찢어졌냐, 여권 주인이 맞느냐 취조하듯 묻기 시작했고, 당황해 어쩔 줄 모르던 우리의 핸드폰에 순간 3G 신호가 잡혔다. 국경 지대라 네트워크 신호가 약했는데 정말 기적 같았다. 네트워크가 연결된 핸드폰을 붙잡고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 뒤로도 약 4시간 정도 구류(?)되어 있던 우리는 대사관에서 확인 전화를 해준 덕에 풀려날 수 있었다.

일단 입국이 거부되었으니 다시 핀란드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그러나 여전히 찢어진 여권이 문제가 되어 핀란드 국경에서도 약 5시간 넘게 대기하며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결국 핀란드 국경에서 훼손된 여권을 헬싱키에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 등기 배송하고, 임시로 핀란드에서만 쓸 수 있는 긴급 여권을 발급해주었다.

예상치 못한 여권 훼손 소동으로 시간이 지체되면서, 전체 랠리 여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처음엔2~3일 정도 늦어지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몽골랠리 주최측에서 랠리 참가 차량의 폐차 등록 및 선적이 주중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10일 이내에 울란우데에 도착해야 한다고 알려왔다.

모스크바에서 울란우데까지는 약 5,600km 이상 되는 거리. 남은 열흘의 시간 동안 몽골 울란바토르를 찍고 러시아 울란우데로 이동하는 루트는 물리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해 눈물을 머금고 루트를 수정했다. 중간 과정도, 끝나는 날도 예측할 수 없는 몽골랠리의 귀국 항공편 날짜를 미리 정해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러시아는 왕복 1차선 도로가 유난히 많았는데, 도로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도로 주변 곳곳에 폐타이어가 버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의 미래인 줄은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타이어에도 코드 절상 발생. 근처 공업소에 들렀지만 교체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아쉬운대로 내부 땜질 처리만 하고 울란우데까지 달렸다. [2018 몽골랠리㊥]운전병 출신 죽마고우 3人, 중고차로 달리는 청춘랠리

물론 랠리 내내 사건 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몽골랠리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진심으로 응원하고 행운을 빌어준 현지인들도 많았고, 오토바이로 혼자 몽골랠리에 도전한 참가자를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멀리서 서로를 발견하고는 약속이나 한 듯 멈춰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을 땐 몽골랠리 동지로서의 묘한 동질감도 느꼈다.

울란우데에 도착해 문제의 타이어를 교체하고, 이제 피니시 라인을 향해 달리는 일만 남았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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