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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열세 번째 이야기

페리를 타고 아이리시해를 건너다

기자입력 : 2018.09.01 06:37:54 | 수정 : 2018.09.01 13:03:30

클라이드 강을 건너 글래스고를 떠난다.(좌) 영국 시골에서 만나는 작은 집들(우)

4시에 박물관을 떠나 배를 타게 될 케언리언(cairnryan) 항구로 향한다. 버스로 1시간반 정도 걸린다. 버스가 출발하고는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도시를 빠져나가자 전형적인 시골풍경이 이어진다. 작고 소박한 집들이 납작납작하니 엎드린 작은 마을이 띄엄띄엄 나타나고, 마을 사이에는 잘 구획된 밭들이 이어진다.

자세히 보니 밀이 누렇게 익어가는 풍경이다. 밭 사이에 서 있는 말뚝에는 까마귀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날씨도 구름이 몰려들어 음산한 탓인지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이 떠오른다. 캐슬린 에릭슨이 말한 것처럼 고흐는 ‘마지막을 향하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픔과 느낌을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 <사진=Wikipedia>

글래스고를 떠난 버스가 한 시간 정도 달리자 바다가 나타난다. 하늘은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다. 비까지 흩뿌리는 듯 버스앞 유리에 빗방울이 맺혀있다. 다만 멀리서 보아도 파도가 거세지 않은 듯해서 다행이다. 

잠시 후에 뿌연 해무 속으로 작은 섬이 떠오른다. 가이드는 이 섬이 바로 에일자 크레이그(Ailsa Craig)섬이라고 한다. 클라이드강 어귀에 있는 이 섬은 스코틀랜드 본토의 해안에서 16㎞ 떨어진 곳에 있는 99ha(헥타르) 넓이의 섬이다. 

16세기 아일(Isles)의 부주교 도널드 먼로(Donald Monro)경은 엘자이(Elsay)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즈음의 이름은 게일어로 ‘요정의 바위’를 의미하는 에일세 크리그(Aillse Creag)에서 왔다. 에일자 크레이그 섬은 화산활동의 잔해인 화강암으로 돼있는데, 특유의 외관과 균일한 경도를 가지는 특이한 결정성분을 가지고 있어 컬링경기에 사용하는 컬링구의 가장 좋은 재료로 평가된다.

버스 창문너머로 에일자 크레이그 섬이 손에 잡힐 듯하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영미!, 영미!’로 우리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던 컬링은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동계스포츠로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됐다. 20kg짜리 스톤을 동그란 원의 중심에 더 가까이 넣는 팀이 승리한다. 

일반적인 화강암은 차가운 얼음 위를 미끄러져 다른 화강암에 부딪히는 충격을 잘 버텨내지 못한다. 하지만 에일자 크레이그 섬의 화강암은 다르다. 섬에서 채취하는 화강암은 ‘에일자 크레이그 일반 초록 화강암‘, ‘에일자 크레이그 파란 연마 화강암‘, ‘에일자 크레이그 빨간 연마 화강암’ 등 세 종류가 있다. 

이 섬의 화강암을 독점 채취하는 ‘케이스(Kays) 오브 스코틀랜드’는 1851년부터 컬링 스톤을 만들어 왔다. 스톤 중심은 얼음이 녹은 물기가 스며들지 않는 파란 화강암으로 돼있고, 바깥 부분은 충돌에 강한 초록 화강암으로 돼있다.

야트막한 산이 잘 닦여 동글동글해진 정상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비탈이 슬며시 바다와 만나는 곳을 따라 나있는 도로를 달리다보니 페리가 떠나는 항구에 도착했다. 아이리시해의 북쪽 끝에 있는 갤로웨이 린스(Galloway Rhins)반도가 만드는 로크라이언(Loch Ryan)만에 있는 케언리언(cairnryan)이다. 

비가 조금씩 거세진다. 6시반이 조금 넘어 커다란 페리가 정박한 부두에 도착했다. 스테나라인(STENALINE)이라는 스웨덴 선사의 루시(Lucey)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갈 예정이다. 이 배는 우리나라의 현대조선에서 건조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페리다.

버스에 탄 채로 케언라인에서 벨파스트로 가는 페리 루시에 탑승한다

버스에 탄 채로 승선하므로 비가 쏟아져도 문제가 없다. 배가 출항하기 1시간 전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해야 한다. 버스의 무게를 측정해서 배를 어디에 세울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선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니 가슴 아픈 세월호 사건이 다시 생각난다. 정해진 물량보다 더 많은 화물을 싣고, 게다가 차량을 배에 제대로 고박해서 파도에 굴러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 참사의 1차 원인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가장 마지막으로 탑승한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갔더니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일행 모두가 자리를 함께 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각자 알아서 빈자리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흩어져 앉게 됐다. 

배는 정시에 출항했다. 흐리고 비는 내리지만 바다가 잔잔한 편이라서 배도 안정적으로 항해한다. 식사를 주문해 놓고 뱃전에 나가보니 그래도 바람이 있고 바닥이 미끄러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스코틀랜드 해안이 바다안개에 묻혀가고(좌) 아일랜드섬은 아직 수평선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우)

식사는 피시앤칩스, 치킨, 소고기, 햄버거, 미트볼 등으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피시앤칩스를 또 맛볼 수도 있었지만, 한번쯤은 다른 것을 먹어보고 싶었다. 치킨을 골랐는데 다만 양이 너무 많았다. 

유럽연합에서 광우병파동이 종식됐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영국은 광우병이 처음 발생했고 워낙 광범위하게 확산됐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에 소고기를 피했는지도 모른다. 하기는 10년 전에 런던을 방문했을 때도 소고기를 먹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국만큼은 광우병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치른 만큼 광우병을 차단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개발됐고 효율적으로 적용되도록 엄격하게 관리해왔을 터이니 오히려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보니 스코틀랜드에서 머문 시간이 불과 하루 밖에 되지 않고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없었다. 그 유명하다는 스카치위스키를 제대로 맛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물론 스카치위스키를 우리나라에서도 마셔는 보았지만 본고장의 맛은 어떤지 궁금하다. 

조석현 시인은 스카치위스키의 맛을 제대로 보았던지 ‘위스키를 마시다’라는 시에서 “시간은 가도 사랑이 남듯이 / 세월 속에 익는 술 // 관용의 작은 악마 / 위스키를 마신다”라고 느낌을 적었다. 스카치위스키의 다양한 면모가 잘 표현된 느낌이다. 

그런가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니 워커, 커티 삭, 화이트호스 등의 브랜디 말고 싱글몰트 위스키야 말로 위스키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싱글몰트 위스키의 성지라 하는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Isley)섬을 찾았다. 

아일레이섬은 아이리시해가 스코틀랜드 쪽으로 해서 남대서양으로 열리는 곳,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있다. 아일레이를 위스키의 성지라고 하는 이유는 스카치와 물이라는 단어가 붙어 다니는 것처럼 아일레이와 위스키라는 단어도 붙어 다닌다고 한다.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위스키를 스코틀랜드에 전하면서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한 바가 있다. 아일레이섬은 관광객도 별로 찾지 않지만, 싱글몰트 위스키와 야생조류를 찾는 매니아만이 가끔 찾는다고 한다. 

드디어 벨파스트 항구가 가까워졌다

스코틀랜드의 케언리언에서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까지는 페리로 2시간 반 정도 가야 한다. 비도 내리고 해서 식당에 머물면서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도착할 시간이 됐다. 배안의 분위기가 술렁술렁해서 밖을 내다보니 멀리 벨파스트의 항구가 내다보인다.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는 4개의 영국 구성국 가운데 하나로 수도는 항구 도시인 벨파스트이다. 아일랜드섬 북동부에 위치하며 전통적으로 얼스터(Ulster)라고 하던 지역의 일부이다. 아일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일랜드와는 다른 나라이다. 13,843㎢의 면적으로 영국 구성국가 중 가장 작고,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1,876,695명이다. 

18세기 무렵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이 영국의 식민지가 된 아일랜드섬,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가까운 얼스터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대부분이 가톨릭신자인 아일랜드 사람들을 밀어내게 됐다. 

결국 1920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도 얼스터 지역 사람들의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라는 점을 핑계로 영국이 아일랜드 정부법을 통해 북아일랜드 지역을 영토로 남겨뒀다. 하지만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에 통합돼야 한다는 행동주의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중간에 일행 사이에서 의견충돌이 있어서 씩씩거리는 바람에 식당에 핸드폰을 놓고 나왔다. 다행히 하선 전에 상황을 깨닫고 식당에 올라갔더니 제자리에 놓여있었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뭔가 톱니가 맞지 않는 듯 실수연발인데, 아직까지는 사건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 어떻든 기상상황이 크게 나쁘지 않아서 정시에 배가 벨파스트 부두에 도착하고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숙소인 파크애비뉴(Park Avenue)호텔에 도착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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