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안해서합니다] 낫 든 여자, 뒤집개 든 남자…②차례상 차리기 편

기사승인 2018-09-11 09: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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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음식은 먹을 줄만 알았습니다. 음식 준비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의 경험은 어머니가 차린 음식을 상에 갖다 놓는 것이 전부였죠. 어느 배우의 수상소감처럼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셈입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평생 모를 것 같았습니다. 낫을 들고 벌초했던 여성 기자들에 이어 이번에는 2명의 남성 기자가 차례상 차리기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여성의 명절은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연휴’(連休)가 아닌 ‘연로’(連勞)였습니다. 지난해 9월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의 설문조사 결과, 명절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직장인은 기혼 여성(81.1%)으로, 미혼 여성(76.1%)과 기혼 남성(74.1%)보다 비율이 높았습니다. 기혼 여성은 ‘시댁 잔소리’ ‘명절 음식 준비’ 등을 스트레스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스트레스는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1월27~29일) 사흘간 방광염 환자가 5286명 발생했습니다. 이중 여자 4787명, 남자 481명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10배 정도 많았죠. 심평원은 “주부들이 명절 준비를 위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함께 노동 강도가 높아져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습니다. 

뭉클해진 기자들. 어머니를 생각하며 차례상 차리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모든 명절 음식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요리가 필요없는 과일, 한과 등은 제외했습니다. 토란국, 전(동그랑땡·동태전·꼬치전), 나물(시금치·고사리·도라지), 고기산적, 생선찜, 송편 등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지난 3일 대형마트를 찾았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던가요. 식재료를 적은 메모지를 확인하며 카트를 채워 나갔습니다. 그러나 새삼 여러 가지 고민이 들더군요. 고기는 어떤 부위가 필요한지, 생선찜에는 어떤 생선을 사용해야 하는지, 음식에 필요한 양념은 무엇일지. 지나가는 아주머니 붙잡고 재료와 조리 과정을 물었습니다. 장만 봤을 뿐인데 상당한 시간과 체력이 소모됐습니다. 

무사히 마친 줄 알았던 장보기. 실수 퍼레이드의 서막이었습니다. 재료를 꺼내던 도중 한 선배의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토란국에 넣을 토란을 샀어야 했는데 토란대를 산 것입니다. 분명 토란국을 끓인다고 얘기했었는데. 채소가게 사장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태어나서 토란국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기자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결국 토란국은 뭇국으로 긴급 변경됐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본격적으로 요리에 돌입했습니다. 일을 분담했습니다. A기자는 국과 전을, B기자는 고기산적·나물·생선찜을 맡았습니다. 송편은 함께 빚기로 했죠. 스마트폰으로 미리 봐둔 레시피를 보면서 호기롭게 음식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요리 시작 5분이 지났을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쪽파를 썰던 B기자가 칼에 손을 베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응급조치를 한 뒤 음식 준비를 재개했습니다. (손을 베인 B기자는 결국 응급실에서 8바늘 꿰맸습니다.)

냄비에 참기름을 넣고 고기와 무를 볶고, 불고기 양념에 재워 둔 고깃덩어리를 불판에 올리자 냄새는 그럴 듯했습니다.국이 끓어가고 고기가 익어갈수록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그러나 ‘설레발은 필패’였을까요. 뭇국이 싱겁다고 느낀 A 기자. 간장을 붓고, 또 부었습니다. 맑아야 할 뭇국은 어느새 기자의 속처럼 시커멓게 변해버렸습니다. 고기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력한 짠맛이 미각을 강타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밥이랑 먹으면 괜찮다’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B기자는 나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시금치를 온종일 다듬냐’는 선배의 핀잔이 날아왔습니다. 긴 시간 끝에 완성된 시금치나물. 맛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샴푸 광고에 나오는 모델의 머릿결처럼 찰랑찰랑한 시금치의 자태가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이어 도라지무침 만들기에 나선 B기자. ‘검은 뭇국’에 이은 두 번째 실패작을 탄생시켰습니다. 하얗던 도라지가 검게 물들고 만 것이죠. 이번에도 간장이 문제였습니다. 간장을 과다 투여한 탓에 도라지무침은 오징어볶음을 방불케 했습니다.

A기자는 동그랑땡을 만들기 위해 당근, 양파, 쪽파 등을 썰었습니다. 다행히 피를 보지는 않았고요. 동태전과 꼬치전을 만들기 위한 재료 손질도 했습니다. 얼어붙은 동태포를 하나하나 뜯어냈고 이쑤시개에 햄, 맛살, 단무지 등을 꽂고 또 꽂았습니다. 재료 손질에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A기자, 불판 앞에 서기도 전에 넋을 잃었습니다.

차례상 차리기의 ‘꽃’이죠. 대망의 전 부치기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재료 준비 다 했으니 전 만들기는 금방 하겠지?” 그러나 꽃을 피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더군요. 부침가루와 달걀을 묻힌 동그랑땡 속을 불판에 올리자 선배가 말했습니다. “이거 햄버거 패티 아니야?” 양 조절에 실패한 것이죠. 아니나 다를까 겉만 타고 속은 익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실패작이 나왔습니다. 

나물 3종을 끝내고 생선찜에 들어간 B기자. 그의 고난과 역경은 계속 됐습니다. 생선 비늘의 촉감,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무서운 눈빛’까지. 취재 현장에서 겪은 산전수전보다 생선 손질이 더 어려웠습니다. B기자는 결국 키친타월로 생선 눈을 가렸습니다.

송편은 같이 빚기로 했지만, 불판 앞에 발이 묶인 A기자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B기자가 송편 소와 반죽을 준비했습니다. 나름 진지하게 송편을 빚은 B기자에게 돌아온 말은 ‘장난치지 말라’였습니다.

[아무도안해서합니다] 낫 든 여자, 뒤집개 든 남자…②차례상 차리기 편오전 10시에 시작된 차례상 준비는 5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한상 차려놓으니 뿌듯했습니다.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겉보기에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반면 두 기자의 표정은 밝지 못했죠. 주방정리가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참혹했습니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은 높이를 감당 못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졌고, 주방에는 부침가루가 흩날렸습니다. 정리가 끝나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 6시간 사투 끝에 모든 체험이 종료됐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자 허리, 종아리 등 이곳저곳이 아파왔습니다. 우연히 녹초가 된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된 두 기자.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배가 물었습니다. “벌초와 음식 준비 중 어떤 게 나은 것 같아?” 두 남자 기자는 동시에 “벌초”라고 대답했습니다. 벌초를 했던 여성 기자들의 노고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예상보다 강했던 노동 강도에 깜짝 놀랐기 때문이죠. 심지어 음식의 양도 명절에 하는 것처럼 많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명절 때마다 TV 한 번 못 보셨던 어머니. 이번 추석에 전은 제가 만들게요.

김도현, 박태현 기자 dobest@kukinews.com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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