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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열아홉 번째 이야기

기네스는 맥주가 아니다. 그저 기네스일 뿐이다

기자입력 : 2018.09.22 11:03:34 | 수정 : 2018.09.22 11:03:41

기네스창고에 도착했다(좌) 공장부지를 45IR£에 9000년간 임대한다는 계약서를 볼 수 있다(우)

성 패트릭교회를 떠난 일행은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브루어리(St. James's Gate Brewery)거리에 있는 기네스창고(Guinness Storehouse)로 이동했다.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은 창업자 아더 기네스(Arthur Guinness)가 4에이커에 달하는 부지를  IR£ 45(아이리쉬 파운드)에 9000년간 임대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1759년에 설립해 기네스맥주를 생산해왔다.

이후 1838년에는 아일랜드 최대 규모의 양조장이 됐고, 1886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양조장으로 연간 120만 배럴의 맥주를 생산했다. 1997년에는 그랜드 메트로폴리탄과 합병해 만든 영국회사 디아지오(Diageo)에 속한다. 

우리가 찾아간 기네스 창고는 한 파인트의 기네스를 담은 유리 아트리움으로 된 7층 건물이었다. 아트리움이란 건축시설의 중앙에 있는 큰 공간을 의미한다. 이 아트리움을 기네스 맥주로 채운다면 1400만 파운드가 들어간다고 한다. 건물을 올라가다 보면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연상하게 하는 무엇이 있는데, 같은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했다.

좋은 맥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4가지 요소. 위클로 산맥에서 오는 물(좌상), 보리(좌중), 호프(좌하) 그리고 이스트(우)

기네스창고가 들어선 건물은 1902년 아일랜드에서는 처음으로 시카고 건축학교의 양식을 따서 다층 강철프레임으로 지은 건물로 1988년까지 발효공장으로 사용됐다. 1997년 이 건물을 양조장의 방문자센터로 활용하기로 하고 재건축을 거쳐 2000년 12월 기네스창고로 개관하게 됐다. 

1층에서는 맥주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물, 보리, 홉 및 효모 등 4가지 성분에 대한 설명과 양조장을 설립한 아서 기네스를 소개한다. 기네스 흑맥주의 비밀은 보리를 껍질 채로 213도까지 가열하는데 있단다.

맥주를 생산하던 과거 설비가 남아있다.(좌) 맥주를 담는 통을 제작하는 과정도 볼 수 있다.(중), 생산된 맥주를 실어 나르던 자동차, 화차, 배, 비행기 등의 모형도 전시돼있다(우)

1층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씩 올라가면서 발효과정, 완성된 맥주를 담는 통을 제작하는 과정을 비롯해 차량, 배, 비행기 등 맥주를 실어내던 교통수단의 모형들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발전해온 맥주양조의 공정을 실제 양조 장비와 함께 보여주고 있어, 맥주생산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심지어는 광고모델은 물론 광고내용 등, 기네스 맥주를 홍보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공간도 있다. 기업홍보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라면 참고할 만하겠다. 곳곳에 맥주를 생산하던 공장시설의 일부로 보이는 파이프라인은 일부러 남겨둔 것처럼 보인다. 

기네스 맥주 홍보의 역사도 볼 수 있다. 밀레니엄을 맞은 홍보이념(좌상) 그동안 홍보에 등장한 모델로는 거북이(좌하)를 비롯해 타조(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3층과 4층의 한 귀퉁이에는 회의를 할 수 있는 방이 모여 있었다. 5층에 있는 브루어리 바(Brewery Bar)에서는 아일랜드식 요리를 팔고 있다. 이곳에서는 기네스맥주를 반주로 요리와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그라비티 바(Gravity Bar)는 공장건물의 위로 치솟아 있기 때문에 주변풍경을 360° 돌아볼 수 있다. 

가깝게는 양조장의 전체 규모, 양조와 관련된 곡물 사일로, 다양한 통 등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멀리는 도시의 곳곳을 볼 수 있다. 피닉스공원, 짧은 구간의 물길만 볼 수 있는 운하, 야트막한 산 등을 볼 수 있다. 찾아보면 오전에 구경한 성패트릭교회, 그리고 오후로 예정된 트리니티 대학도 볼 수 있다. 

그라비티 바에서는 가까이는 공장의 모습과 사방으로 열려있는 더블린을 볼 수 있다.(상) 왼쪽으로 보이는 위클로 산맥에서 물을 취한다.(하)

그라비티 바에서는 기네스 맥주를 한 잔 마실 수 있다. 공짜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입장료에 포함된 것이다. 입장료는 2018년 3월 기준으로 20유로라고 하는데, 미국에 본사가 있는 럭셔리 여행잡지 ‘콘데 나스트 트레블러(Condé Nast Traveler)’는 비싼 가격이라고 평했다. 

줄을 서 기다린 끝에 유리잔에 담긴 기네스 맥주를 한 잔 받아든다. ‘슬란챠(Sláinte)!’를 외치며 잔을 부딪친 다음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슬란챠!’는 아일랜드어로 ‘건배!’라는 말이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면서 출출했기 때문일까? 기네스맥주의 독특한 까만 빛깔에 어울리는 쌉쌀한 맛으로 금세 취기가 올라온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기네스맥주를 파는 곳이 많아져 즐겨 마시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흑맥주를 생산했기 때문에 흑맥주를 파는 술집도 없지 않았다. 필자는 약간 쌉쌀한 맛이 좋았는데,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 마시지는 못했다. 

기네스 창고를 찾은 사람들이 그라비티 바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기네스 한 잔을 받을 수 있다

조석현 시인 역시 이곳에 와서 ‘기네스 맥주’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박물관 / 7층 전망대에서 / 기네스를 마신다 // 저 멀리 펼쳐진 / 아일랜드의 황야를 보며 / 한잔 / 과거를 향한 그리움에 / 한잔 / 내일의 여행을 위하여 / 한잔 // 술이 술을 부른다 // 술이 익으려면 / 걸리는 시간은 / 까만 보리 같은 글씨로 쓴 / 계약서엔 / 9000년”

기네스 맥주를 설립한 아더 기네스가 성공회 신자였음에도 파격적인 계약조건에 땅을 임대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책담당자가 혜안을 가졌거나, 아니면 새로운 투자가 절실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된 셈이다. 

기네스는 쉽게 사업에 착수하여 확장할 수 있었고, 아일랜드는 고용증대는 물론 기네스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잘 이행한 덕을 보았으니 말이다. 붕괴위험에 빠진 성 패트릭성당의 재건비용을 내놓은 사례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최악의 기근이 아일랜드를 덮쳤을 때 기네스맥주가 기근을 이기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은 견강부회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남았지만, 회사가 사원을 위해 다양한 복지정책을 펼쳤다는 것은 수긍할 만하다. 

그래서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기네스는 특별한가 보다. 2007년 아이리스 프로젝트 밴드 바드(BARD)의 아일랜드 공연을 기록한 음악 다큐멘터리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를 감독한 임진평 감독은 이렇게 적었다. 

“기네스를 빼놓고 아일랜드를 얘기할 수 없을 만큼 기네스는 아일랜드에서는 맥주 이상의 그 무엇이다. ‘기네스는 맥주가 아니다. 그저 기네스일 뿐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기네스를 먹고 그 매력에 빠져 본 사람만이 안다.”

더블린에 와보니 이 말이 공감된다. 하지만 기네스를 마시고 매력에 빠진 것만으로는 다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블린에서 보고, 듣고, 마셔봐야 조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네스 창세주(創世酒)의 무관심사는 있지 않을 수도 또는 있을 수도 있는지라”라고 한 제임스 조이스의 말은 곱씹어보아도 알 듯 모를 듯하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파렴치한 인간’이라는 이름의 펍이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파렴치한 인간(The Brazen Head)’이라는 펍을 보았다. 무려 1198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주점이나 에일하우스가 있었다는 지역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이 지역에 상인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13년부터이며, 장거리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여관으로 이 건물을 지은 것도 1754년이라고 한다.

어찌됐거나 아일랜드는 유럽의 다른 곳보다 옛 건물이 더 많아 보인다. 특히 더블린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폭격을 받지 않아서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철학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삶을 깊이 통찰해온 영국 작가 패트리샤 레비(Patricial Levy)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있어 역사란 현재와 함께 지속되는 것이며, 그들은 매우 미신적이며 순종적이어서 자신들의 방식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소개한 임진평 감독은 “이들이 역사를 현재와 함께 지속되는 것으로 본다는 건 바로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모습들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살아있는 전통(Living Tradition)이었다”라고 평했다.

하프웨이 하우스라는 이름의 펍에서 점심을 먹었다(상) 점심시간이어서인지 한가하다.(하)

이날 점심은 하프웨이 하우스(Halfway House)라는 이름의 펍에서 먹었다. 누군가는 아일랜드에 가면 반드시 펍에 들러 그들이 삶을 즐기는 모습을 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하프웨이 하우스는 작은 방으로 나뉘어져 있는 탓인지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 나오는 운명의 수레바퀴주점이 아닌 탓일까? 조이스가 다음처럼 장황하게 설명하는 펍의 분위기는 전혀 느껴볼 수 없었다. 

“이 강력한 낙거인樂巨人(HCE)은, 전포前泡의 배제配劑 아래, 당시 그는 네크 호반으로부터 꿀꺽 신神의 대은총으로 우쭐 코르크마개를 잡아 뽑았도다. 그때, 우리들의 백발성포부왕白髮聖泡父王에게 압찬壓讚 있으라, 교부敎父는 자신의 울숙鬱肅의 황우皇牛 축복을 부여했나니 그리하여 복통腹痛 알피파派의 유제화乳劑化 해방운동을 건健비탈의 질척한 미끄럼 아래로 편향偏向하여 리피강江-풋내기 선원들까지 썰매 흘러 내렸나니라. 아멘. 그것은 그의 궤도의 순회巡廻 속에 저들 두 피동행자彼同行者들, 음료의 수배水盃, 바스 형제들로부터 그의 배액음기排液飮器(술잔)를 들어 축배했도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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