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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스물한 번째 이야기

아일랜드의 오랜 저항이 빛을 얻다

기자입력 : 2018.09.28 12:30:00 | 수정 : 2018.09.28 12:23:13

트리니티대학의 옛 도서관이 소장한 ‘켈의 서(The Book of Kells)’야말로 구경거리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켈의 서’는 예수의 가르침과 생애를 라틴어로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4종류의 신약성서로, 다양한 서문과 표가 실려 있다. 

성 제롬이 4세기말에 번역했다는 불가타 성서(the Vulgate)를 원본으로 하면서도 베투스 라티나(Vetus Latina)라는 초기 성경에 나오는 몇 구절도 포함돼있다.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국보급 보물이다.

8세기 무렵 브리튼 혹은 아일랜드의 골롬반교회의 후원을 받아 골롬반 수도원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골롬바의 서’라고도 하지만 이 책들이 켈의 수도원에 보관돼왔기 때문에 ‘켈의 서’라고 부른다. 

10세기 무렵 바이킹들이 몇 차례에 걸쳐 켈 수도원을 약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이 전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1654년 크롬웰의 군대가 쳐들어와 켈 수도원을 해체시킬 때, 마을 총독은 ‘켈의 서’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더블린으로 보냈다.

켈의 서. 4복음저자의 상징을 나타낸 그림(좌), 요한복음의 표지(중), 성모자(우) <사진=Wikipedia>

켈의 서는 당시 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에서 유행하던 인슐라 아트(Insular Art)의 기법 가운데서도 뛰어난 기독교적 삽화와 소용돌이 장식이 적용돼있다. 사람, 동물은 물론 신화에 나오는 동물들이 켈트 매듭과 활기찬 색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장식적 요소들이 기독교적 상징에 스며들어 삽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필체 등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3명 이상이 작업한 것으로 여겨진다. 글씨는 검은 색, 빨간색, 보라색, 노란색의 잉크로 작성됐는데, 검은색은 철분 찰흙 잉크(Iron Gall Ink)를 사용했고, 다른 색들은 먼 곳에서 수입한 다양한 물질에서 얻은 물감을 사용했다. 

철분 찰흙 잉크는 황산철(FeSO4)과 탄닌산을 섞어 만든 것으로 5세기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황산철(FeSO4)과 탄닌산이 작용해 만든 탄닌산철의 용해성 때문에 잉크가 종이에 침투하면 지우기가 어렵게 된다. 

히버노-색슨(Hiberno-Saxon) 예술이라고도 하는 인슐라 아트(Insular Art)는 로마시대 이후에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나타난 예술양식으로 대륙과는 다른 형식으로 발전해갔다. 특히 캘트 기독교 수도원과 금속 세공에서 비롯됐는데 서기 600년 전후에 시작됐으며, 특히 인터레이스 장식이 독특하다.

복음서가 보관된 별도의 전시실에 입장할 때, 사진은 절대 찍을 수 없다면서 카메라를 드는 몸짓만으로도 쫓겨날 수 있다는 가이드의 무서운 경고가 있었다. 사진을 남기지 못한 까닭인지 전시실을 어떻게 돌아보았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역시 조석현 시인처럼 시를 써 남겨야 할 모양이다. 

“전하고 싶은 / 말씀 중의 말씀이 / 어둠에서 빛으로 / 탄생하도다 // 주여! / 저에게 주신 재능은 / 지금 / 어디에서 / 어디로 가는 건가요? // 믿는다는 건 / 찬양을 넘어 / 자신을 존엄한다는 / 지상의 아름다움 // 페이지마다 / 크로버를 그려넣고 / 복음을 전하노니 / 내 이웃을 사랑하라! ”(조석현 시인, ‘켈의 복음서’)

템플가로 가는 길. 고풍스러운 거리가 사람들로 넘치고 있다(좌), 올리버 세인트 존 고가티(Oliver Joseph St John Gogarty) 레스토랑 밖에 서 있는 고가티(Gogarty)와 조이스의 청동상(우)

트리니티대학을 떠나 더블린 시내 구경에 나섰다. 리피강 남쪽에 있는 시가지의 브라운 토마스백화점 앞에서 2시간의 자유시간을 얻어 개별적으로 시내구경을 하기로 했다. 필자 부부는 아일랜드 여행가이드 일을 준비하는 젊은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맨 먼저 더블린에 오는 사람들이 꼭 가본다는 시카모어(Sycamore)가에 있는 템플 바(Temple Bar)로 향했다. 18세기에는 매춘의 중심지였다가 19세기 들어 점차 인기가 떨어져가던 이 지역은 더블린 문화지구로 지정된 다음 밤문화가 활기를 띄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템플 바를 비롯해 팰리스 바(Palace Bar), 올리버 세인트 존 고가티(Oliver Joseph St John Gogarty) 레스토랑, 올드 더블린(Auld Dublin) 등이 유명하다. 올리버 세인트 존 고가티 레스토랑의 밖에는 고가티(Gogarty)와 조이스의 청동상을 세워놓았다. 두 사람이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 의미 같다. 

올리버 세인트 존 고가티(Oliver Joseph St John Gogarty)는 아일랜드 출신 시인이자 작가이며, 이비인후과 의사였고, 정치가이기도 했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벅 멀리건의 영감을 그로부터 얻었다고 하니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이다. 

템플 바가 들어있는 건물들. 2층과 3층 베란다를 장식한 꽃이 예쁘다.(좌), 템플 바의 전면 벽감에 올라선 저 여성은 주변에 흩어진 소지품으로 보아 관광객인 듯, 인증사진을 찍고 있나보다. (우상) 템플 바 내부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는 한창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우하)

커다란 창문을 제외하고는 온통 붉은색으로 칠한 외관이 인상적인 템플 바의 벽감에는 마침 붉은 상의를 입은 여성이 인증사진을 찍는 듯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건물 두 곳의 1층에 각각 가게를 내고 있는데, 위층의 베란다를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꽃들이 눈길을 끈다. 

내부에 들어섰더니 가게 한 편에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기타, 바이올린,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3인조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다. 가게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있어 엉덩이를 붙일만한 탁자가 없어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리피강은 흐름이 고요하다. 멀리 강을 가로지르는 하페니 다리가 보인다.

템플 바를 나와서 하페니 다리(The Ha'penny Bridge)를 건너 리피강 너머에 있는 오코넬가로 향했다. 주철로 만들어 1816년 5월에 개통된 이 다리는 원래 더블린 출신인 웰링턴공작을 기리기 위하여 웰링턴다리로 부르다가 뒤에 리피다리로 바뀌었다.

리피강 건너편에서 7개 노선의 페리를 운영하던 윌리엄 월시(William Walsh)는 다리를 새로 지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100년 동안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로부터 반페니의 통행료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다리를 건설했다. 통행료는 한때 1.5페니까지 올랐다가 1919년에 원래로 돌아왔다. 그런 연유로 더블린 사람들은 이 다리를 하페니 다리라고 부른다. 

리피강을 따라 오코넬가(O'Connell Street)로 향했다. 오코넬다리에서 시작되는 거리는 남쪽 끝의 너비가 49m 북쪽 끝의 너비가 46m나 되는 길이 500m의 넓은 길이지만, 17세기에는 드록헤다(Drogheda) 거리로, 17세기 후반에는 삭스빌(Sackville) 거리라고 부르던 좁은 길이었다. 

1924년 민족지도자 다니엘 오코넬(Daniel O'Connell)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바꿨다. 오코넬장군은 19세기 초반 영국의 탄압을 받던 가톨릭의 독립을 주도한 민족주의자이다. 오코넬 다리 가까이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오코넬가의 중간에 더블린 첨탑이 서 있다. 나무 사이로 제임스 라킨의 동상을 볼 수 있다.(좌), 거리의 남쪽 끝에는 민족주의자 오코넬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우)

거리 중간에는 2003년 1월 21일에 설치된 더블린 첨탑(The Spire of Dublin)이 서 있다. 아일랜드어로는 ‘빛의 기념비’라는 의미의 안 투어 솔레(An Túr Solais)라고 한다. 120m에 달하는 바늘 모양의 기념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조형물이다. 

영국의 건축가 이안 리치(Ian Ritchie)가 “우아하고 역동적 인 단순함을 예술과 기술을 연결”을 의미를 담아 고안했다. 아래 부분의 직경은 3m(9.8ft)이며 상단에서 15cm다. 황혼이 되면 기념탑의 기단부에 있는 1만1884개 발광다이오드가 밝혀지며 첨탑 아래 10m가 밝아진다.

혹자들은 더블린 첨탑을 세운 2003년이 아일랜드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영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앞지른 해라서 의미가 크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2001년에 아일랜드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만9227달러로 2만7428달러에 머문 영국을 추월하고 있다. 

2000년에는 영국이 2만7982달러, 아일랜드가 2만6241달러로 다소 앞섰던 것인데 2001년에는 영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오히려 퇴조한 것이 빌미가 됐던 것이다. 이후로 아일랜드는 꾸준하게 증가한 반면 영국의 경우 증가폭이 크지 않았다. 1999년부터 더블린 첨탑 건립을 계획했던 것을 보면 아일랜드 정부의 자신감을 엿 볼 수 있다.

특히 이 거리에는 1916년 4월 부활절에 아일랜드 공화파가 점거하고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한 우체국이 있다. 영국 정부는 해군과 포병을 동원해 거리를 폭격한 끝에 6일 만에 무장봉기를 진압했다. 전투과정을 통해 거리의 많은 부분이 부서졌다. 이 전투에서 485명이 사망하고 2600여명이 부상당했다. 사망자의 54%가 아일랜드 민간인이었다.

오코넬가에는 많은 기념물이 서 있다. 존 헨리 폴리 (John Henry Foley)가 제작한 다니엘 오코넬 (Daniel O'Connell)의 동상을 비롯해 토마스 파렐(Thomas Farrell)이 제작한 윌리엄 스미스 오브라이언(William Smith O'Brien)과 존 그레이 경(Sir John Gray)의 동상, 오이신 켈리가 제작한 제임스 라킨(James Larkin) 동상 등이 있다. 짐 라킨(Jim Larkin)으로 알려진 제임스 라킨은 아일랜드 공화당, 사회주의 및 노동조합 운동의 지도자였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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