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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이태백 교수 “우리 음악의 소중함? 답은 교육밖에 없어요”

이태백 교수 “우리 음악의 소중함? 답은 교육밖에 없어요”

이준범 기자입력 : 2018.10.05 07:00:00 | 수정 : 2018.10.24 15:03:56


남도음악의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이수자. 국내 첫 아쟁 전공자. 아쟁 전공 교수 1호. 예술인생 50주년. 긴 세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아쟁연주가 이태백 교수를 설명하는 표현들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방배로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만난 이태백 교수는 목원대학교 한국음악학부 전임교수로 교육에 힘쓰는 동시에 현역 연주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타악이든, 아쟁이든 지인들의 공연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 그다. 하지만 이 교수는 자신보다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 그리고 국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달라진 눈빛으로 생생한 이야기를 전했다. 다음은 이태백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 아쟁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우리나라 악기들이 그렇듯 아쟁은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유입된 악기예요. 궁중음악에서 연주하는 대아쟁과 민속음악에서 연주하는 소아쟁으로 나뉘죠. 궁중음악에서는 아쟁을 서양음악의 콘트라베이스 같은 역할로 써요. 민속음악에선 아쟁을 섬세하고 빠른 음악에 쓰고요. 최근 아쟁은 민속음악 중에 남도음악을 대표하는 악기로 자리매김했어요. 음색이나 연주 주법, 음악적인 색깔이 남도음악과 적합하거든요. 남도음악을 연주할 때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악기로 평가받고 있죠. 지금 국내 모든 대학에 아쟁 전공이 생겼고, 예술 고등학교에도 아쟁 전공이 있어요. 각 악단에도 아쟁 연주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고요.”


△ 아쟁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전 어릴 때 소리 집안에서 자랐어요. 아버님이 소리와 기악을 하셨고 어머님도 소리하셔서 지금은 광주 판소리 인간문화재세요. 어릴 때부터 가야금, 타악, 소리를 하다가 어느 날 어떤 테이프에서 아쟁 소리를 들었는데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 수 있지’, ‘이렇게 잘하는 분이 있었나’ 생각했는데 그 분이 인간문화재 박종선 선생님이셨죠. 마침 어머니가 아는 분이셔서 제가 살던 목포에서 광주까지 매일 레슨을 받으러 다녔어요. 지금은 1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그때는 버스로 2시간30분, 기차로 4시간 거리였거든요. 그래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매일 오갔습니다. 어떻게든 꼭 배워야겠다는 일념 하나로요. 아쟁 공부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아쟁의 매력 때문에 다른 걸 못하겠더라고요. 지금도 생존해계시지만 선생님은 정말 최고의 연주기악을 갖고 계셔요.”



△ 대학도 아쟁 전공으로 다니신 거죠?

“네. 제가 군대에 다녀와서 1986년에 대학교를 가려는데 아쟁 전공이 없더라고요. 당시 육군본부 군악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후배들이 학교에 얘기를 해줬어요. 아쟁을 잘하는 젊은 친구가 있다고요. 그래서 그때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저를 뽑겠다하고 아쟁 전공을 최초로 만들어줘서 들어갈 수 있었죠. 제가 아쟁 전공 대학생 1호예요. 아쟁으로는 박사도 제가 1호, 교수도 제가 1호로 됐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각 대학에 아쟁 전공이 다 생겼지만요.”


△ 그런데 아쟁의 어떤 점에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셨어요?

“국악하면 악기 중에 가야금이 제일 먼저 생각나실 거예요. 보급도 많이 돼 있고 가야금 인구도 많죠. 그 다음에 해금이 떴어요. 그래서 해금 인구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죠. 해금 전공자들의 숫자가 가야금 전공자 숫자를 앞질렀을 정도니까요. 저희는 그 다음이 아쟁이 될 거라고 봐요. 아쟁의 특징은 손으로도, 활로도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손가락으로 연주하면 거문고나 가야금 소리도 낼 수 있어요. 해금 소리도 연주할 수 있고요. 그러니까 악기 한 대로 여러 효과를 낼 수 있는 거죠. 외국에도 이런 악기는 없어요. 그래서 전 제자들에게도 아쟁이 미래에 가장 경쟁력이 있는 악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합니다.”


△ 교육자로서 제자들을 가르치시지만 현역 연주자로서도 꾸준히 활동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시립 국악단에서 10년을 근무했어요. 이후에 국립 창극단으로 옮겨서 근무하다가 2002년 교수가 된 거죠. 학교에도 왕성하게 연주 활동하시는 교수님들이 계세요. 저희가 연주를 계속 함으로서 학생들에게 연주자로서 계속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현장에서 저희가 연주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어떻게 보면 아이들에게 계속 자극을 주는 거죠. 또 대학에서 가르치는 음악도 있지만, 필드에서 하는 음악도 있어요. 그런 음악들을 몸소 체험하고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는 만큼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현실적으로 국악은 현재 어떤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예전보다는 많이 발전했다고 봐요. 저희 부모님 세대에선 국악하는 걸 많이 반대하셨어요. 가난하게 살고 고생을 많이 한다고요. 저희 부모님도 제가 국악하는 걸 반대하셨거든요. 이걸 왜 하냐고, 취미로 하라고 하셨죠. 지금은 국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양음악보다 떨어지지 않아요. 예전엔 바이올린은 당당하게 들고 다니고, 우리 악기는 창피해했어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우리 악기를 떳떳하게 메고 다녀요. 그만큼 국악의 위상이 높아진 거죠. 또 지금은 국악인들이 대중과 더 소통하려고 해요. 젊은 국악인들이 대중적인 창작곡을 만들거나, 서양 음악도 연주할 수 있게끔 악기를 개량하기도 하고요.”


△ 앞으로 국악이 더 활성화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초·중·고등학교에 국악 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음악 선생님은 서양음악을 가르치시잖아요. 서양음악 교사가 있으면 국악 교사도 있어야 하는 거죠. 어릴 때부터 우리 음악의 정체성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해줘야 아이들이 우리 음악이 소중한 걸 알지 않겠습니까. 답은 교육밖에 없어요. 다른 노력들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어요. 이건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말로만 우리 것이 소중하다고 하지 실제로 한 건 없거든요. ‘음악’하면 우리 음악이 있고 서양 음악도 있다는 식으로 바뀌어야 해요. 전 이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된다면 국악 전공자들의 취업난도 일부 해소될 수 있을 거예요.”


△ 앞으로 어떤 목표가 있으신가요.

“우리 음악을 지탱해주시던 선생님들이 많이 작고하셨어요. 그래서 남아 있는 선생님들이 저에게 거는 기대가 크셔요. 어떻게 하면 관객과 잘 소통할 수 있을지, 우리 음악을 어떻게 잘 지켜서 공존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제 류(이태백 류)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래서 제가 만들려고 보니 이미 선생님들이 만들어 놓은 음악들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걸 완벽하게 소화하지 않고선 별 의미 없는 음악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들의 음악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음악들을 흡수해서 제 안으로 들어왔을 때 새로운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저도 50년 이상 했으니 많이 했다고 하지만 선생님들에 비하면 아직 조족지혈이에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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