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기로에 서다①] 중국에 울고 웃는 한국

기사승인 2018-10-17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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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산업 기로에 서다①] 중국에 울고 웃는 한국

과거 후발주자로 인식되던 중국 게임의 영향력이 급격히 성장해 이제 한국을 추월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반면 국산 게임의 중국 진출은 1년 반이 넘도록 완전히 막혀 있어 불공정 상황에 대응책이 요구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중국 모두 게임 산업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에 따라 향후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뒤쳐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부터 국내 게임 업계에는 사실상 중국에 새로운 게임을 전혀 수출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현지에 게임 등 콘텐츠 서비스에 요구되는 ‘판호(版号)’ 발급이 지난해 2월부터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판호는 중국 광전총국(중국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의 콘텐츠 심사를 통과해야 발급 받을 수 있는 고유 식별 번호(ISPN)로 2018년 3월부터 중국 공산당의 정책 전파 역할을 담당하며 정보공개 의무도 갖지 않는 중앙선전부가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2016년 7월부터 모바일 게임 유통까지 의무사항으로 적용된 판호를 받기 위해 외국 게임은 반드시 번역 등 현지화를 거치고 중국 내 법인을 통해 서비스해야 한다. 기존 광전총국 심사에는 약 4~6개월의 기간이 소요됐지만 중앙선전부로 이관된 이후 사실상 심사가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2016년 중국 내 판호는 총 4161종(약 93%)이 발급됐고 해외 게임 299종(5.9%) 중 국내 게임은 30여종(0.72%)만이 판호를 받았다. 이듬해 2월 이후부터는 한국 게임에 대해 단 한건도 발급되지 않았다. 불가 원인은 대부분 ‘심사 중’ 이라는 입장 아래 파악되지 않아 게임사의 대응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업계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한한령(限韓令)’ 영향으로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이 중단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며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채 1년 반 이상이 지난 현 시점에는 이 같은 상황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약 24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중국 게임 시장 진출이 막힌 상황은 한국 게임업계에도 막대한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판호 발급 중단 이전인 2016년까지 한국 게임 수출 비중은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이 37.6%로 일본 18.4%, 동남아 15.6%, 북미 11.4% 등을 압도한다. 국내 게임업계가 주력하는 모바일 플랫폼이 중심이라는 점에서도 중국은 중요한 시장으로 꼽힌다.

앞서 중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등 PC 게임은 지금까지도 이들 게임사 실적에서 가장 큰 수익원이며 차기작 개발과 성장의 자금 동력이 돼 왔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 1년 반 동안 이 시장을 고스란히 놓쳐온 손실은 가볍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현지 진출이 막힌 국내 게임업계에서 중국에 IP(지식재산권)만 따로 판매하거나 게임 개발에 필요한 요소를 별도로 파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에 빗대면 완제품이 아닌 디자인과 내부 부품, 외장 케이스 등을 따로 분해해 파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부가가치는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중국 게임사에 판매된 국산 IP 기반 게임으로 ‘뮤 오리진2’, ‘라그나로크M’ 등이 국내에 역수입돼 흥행했으며 국산 PC 게임 원작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중국 텐센트의 손에서 만들어져 글로벌 서비스 됐다. 넷마블의 ‘세븐나이츠’ 그래픽 자원 등을 사들인 중국 게임사가 현지에서 이를 활용해 별도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한국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출시된 중국 게임은 136개로 2016년보다 22개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91개의 중국 모바일 게임이 출시되며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20위 내에 16개가 중국 게임으로 나타났다. 앱 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위권 내에 든 중국 게임의 연간 매출은 292% 급증했다.

양적 공세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한국 게임을 넘어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출시된 ‘소녀전선’, ‘붕괴3rd’ 등은 한국 게임들과 차별화 되는 캐릭터, 게임성, 완성도 등에서 호평을 받았고 올해도 ‘영원한 7일의 도시’ 등이 공세를 이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국내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불공정 무역 상황인데 개발력이나 속도 모두 중국이 앞서가는 상황에서 이제 국내 운영 서비스까지 직접 하고 있다”며 “모바일에서는 한국이 우위인 부분이 거의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올해 초 방준혁 넷마블 의장도 중국과의 경쟁 우위 확보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올해 판호 담당 업무가 중앙선전부로 넘어가면서 외국 게임에 대한 외자 판호 비준이 중단되고 자국 게임에 대한 내자 판호 발급도 한층 어려워진 것으로 전해져 이 같은 비대칭 상황은 한 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를 상대로 개별 게임사 차원의 직접대응은 어려운 상황이므로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중국 정부와의 협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판호 외에 과거부터 문제시 되던 중국 업체들의 콘텐츠 불법복제·유통 관련 IP·저작권 분쟁에 정부 차원의 외교·통상 조치 등도 과제로 남겨져 있다.

한편, 지난 11일 국회에서 콘텐츠 미래융합포럼,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 한국게임학회 주최·주관으로 열린 ‘문체부 게임 산업 정책 평가 및 향후 정책방향 제시’ 토론회에서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 취임 이후 게임산업 정책은 100점 만점에 평균 44점”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제시되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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