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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버튼 온 더 워터, 코츠월드의 베니스

기자입력 : 2018.10.19 14:40:00 | 수정 : 2018.10.19 14:40:46

여행길에서 맞는 일곱 번째 아침이다. 전날 체스터 구경을 마치고 2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레디치(Redditch)까지 이동했다. 8시 반에 숙소인 라마다호텔 앤 스위트 코벤트리(Ramada Hotel&Suites, Coventry  City)에 도착해서 묵었다. 밤 일정이 없으니 일찍 쉴 수 있었다. 

아침 식사에 제공되는 과일이 다양하고 신선해보였다. 아마 이날까지 묵은 호텔 가운데 최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전날 일정이 조금 빠듯했다 싶었는지 이날은 8시 반에 숙소를 출발하는 일정이다. 구름이 살짝 끼어서 햇볕을 가려주니 좋다. 생각보다는 쌀쌀한듯해 가벼운 긴 팔을 꺼내 입었다. 서울은 엄청 덥다는데 피서를 제대로 하는 것 같다.

2011년 기준 인구 8만4300명의 레디치는 버밍엄에서 남쪽으로 24km 떨어져 있다. ‘붉은 도랑’이라는 의미의 레디치는, 흑사병이 유행하던 1348년에 남긴 서류에서 보면 도시에서 가까운 애로우(Arrow)강의 붉은 진흙에 대한 기록이 있어,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중세 무렵부터 바늘제조의 중심지로 성장해 와서 19세기에는 한때 세계에서 소비되는 바늘의 90%를 만들어낼 정도로 바늘과 낚시도구 산업의 세계적 중심이 됐다. 국립바늘박물관(National Needle Museum)에서 그 역사를 볼 수 있다. 21세기 들어서는 경공업과 서비스업으로 대체됐지만, 버밍엄의 베드타운 역할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코츠월드로 가는 길. 버스 창밖으로 굽이치는 구릉이 장관이다. 초지 사이로 숲이 우거져 있고, 곳곳에 마을이 흩어져 있다

약속한 시간에 숙소를 나서 버튼 온 더 워터(Bourton-on-the-water)로 향했다. 레디치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버튼 온 더 워터는 ‘코츠월드(Cotswolds)의 베니스’라고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이다. 여름철 코츠월드를 찾는 우리나라 여행사가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다른 장소로 안내한다고 했다. 

‘굽이치는 구릉 위에 있는 양 울타리’라는 뜻의 코츠월드는 영국의 남중부지역으로 템스강 상류 초원에서 시작해 세번 밸리(Severn Valley)와 이브하임 베일(Evesham Vale) 지역에 있는 코츠월드 엣지(Cotswold Edge)로 알려진 절벽까지 이어진다. 폭 40km, 길이 140km에 달하는 코츠월드는 면적이 2038㎢로 영국에서는 여행초반에 구경한 호수지역(The Lake District) 다음으로 넓은 자연보호지역이다. 1966년 AONB(Area of Outstanding Natural Beauty, 자연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지정됐는데, 금년 기준으로는 영국에서 지정한 AONB 가운데 세 번째로 넓다. 

여러 카운티가 포함돼 있지만, 주로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옥스퍼드셔(Oxfordshire), 윌트셔(Wiltshire), 서머셋(Somerset), 우스터셔(Worcestershire), 워릭셔(Warwickshire) 등의 지역이 포함된다. 코츠월드 지역에는 2016년 기준으로 모두 13만9000명이 거주한다.

중세 무렵 코츠월드 라이온(Cotswold Lion)이라는 품종의 양을 길러왔고, 13세기 중반에서 14세기 중반 무렵에는 대륙, 특히 이탈리아와 양모교역이 번성했다. 양모교역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교회를 세우는데 들어갔다. 이 지역에서 나는 코츠월드 스톤(Cotswold Stone)이 사용됐다. 쥬라기에 만들어진 석회암인 코츠월드 스톤은 황금색을 띄고 있어 자연과 어울려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화석화된 성게의 화석이 풍부하게 발견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노스 콧츠월드에서 본 장날 풍경

여행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져’의 사용자들이 추천하는 코츠월드의 명소로는 혹크(Hawks)와 챌튼햄(Cheltenham)에서 걷기, 스태포서셔의 스토턴에 있는 코츠월드 증류소, 모레톤 인 마쉬(Moreton-in-Marsh)의 코츠월드 팔콘리 센터(Cotswold Falconry Centre), 노스리치(Northleach)의 기계음악박물관,  텟베리(Tetbury)의 챠비네지 하우스(Chavenage House), 튜크스베리(Tewkesbury)의 튜크스베리 수도원, 챌튼햄의 글로스터셔 워릭셔 증기기관차 철로, 글로스터(Gloucester)의 글로스터 대성당과 제트 시대 박물관(Jet Age Museum), 텟베리(Tetbury)의 하이그로브(Highgrove)에 있는 왕실정원(Royal Gardens ) 등이다. 

작곡가 데릭 부르주아(Derek Bourgeois)가 작곡한 6번 교향곡(Op. 109), ‘코츠월드 심포니(A Cotswold Symphony)’는 코츠월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하며, 그밖에 많은 작곡가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고 한다. 이 외에도 글로스터 대성당이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한 장면으로 등장하는 등, 다양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코츠월드 지역에서 촬영됐다. 조앤 롤링 역시 코츠월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하니, 이번 여행은 ‘셰익스피어에게 여행을 묻다’가 아니라 ‘해리포터를 따라가는 여행’이 돼야할 것 같다.

노스 콧츠월드에서 본 장날 풍경

코츠월드로 가는 길은 평탄하지만 멀리 야트막한 산도 있고 널따란 밭 사이로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사이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이 그림처럼 예쁘다. 코츠월드라는 이름을 왜 붙였는지 알 것 같다. 

버튼 온 더 워터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노스 코츠월드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마침 장이 서는 날인지 기면비가 서 있는 마을공터에 장을 펼쳐져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장을 연지 얼마 되지 않는 듯, 물건을 파는 사람들만 느긋하게 장사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예쁜 꽃을 올려놓은 좌대도 보이고 동물가죽도 걸려있다. 바나나도 내놓은 것을 보면 꼭 집에서 생산한 물건만 파는 것은 아닌가 보다. 우리네 시골의 5일장과 비슷한 모양이다. 장터 한 편에서는 산책길에 나섰다가 만난 듯 몇몇 어르신들이 둘러서있다.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나누는 듯 멀리서도 오가는 정이 느껴진다.

장에 가는 길, 아니면 산책길에 만난는지 모르겠지만, 다정하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장날 탓일까 버튼 온 더 워터에는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은 9시 반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고즈넉한 돌담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2011년 기준으로 3296 명이 살고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그래서 인지 번잡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마을 가운데로 야트막한 개울이 흐르고 있어 버튼 온 더 워터라는 마을 이름이 딱이다. 

윈드러시(Windrush)라는 이름의 강(사실은 개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도 적당한 굽이로 예쁘게 감아들고, 개울에 무거운 가지를 드리우는 나무와 절묘한 합을 이루고 있다. 개울 위에는 몇 마리 오리가 떠 있어 여유를 더 한다. 그래도 코츠월드의 베니스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지나친 것 아닐까 싶다. 

개울 위로 다섯 개의 다리가 걸려 있는데, 그 가운데 제일 오래된 것은 1654년에 세운 것이고 가장 최근 것도 1953년에 만든 것이다. 곳곳에 다리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데 불편함은 없을 듯하다. 

마을 밖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돌담길. 제주의 올레길을 닮았다(좌), 마을 한 가운데를 흐르는 윈드러시 강. 적당한 굽이로 감아드는 개울에 오리까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다(우)

개울을 따라 차가 다니는 큰 길 가에는 조금 커 보이는 가게들도 있지만, 다리를 건너면 주로 마을 사람들이 사는 구역인지 좁은 골목길이다. 골목 곳곳에는 작은 티룸이나 기념품점이 들어있다. 납작납작한 집들이지만 정원을 예쁘게 가꾸고 담장에는 제라늄 혹은 장미가 활짝 피어있어 “참 예쁘다!”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마치 이곳에 사는 것처럼 집을 나서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사진을 찍어본다. 

이 마을의 집들 역시 코츠월드석으로 지어졌다. 황금색의 돌 위에 세월의 덮개가 내려앉아 고색창연한 느낌이 든다. 마을의 건물 대부분인 114개의 건물들은 영국정부에 의해 보존가치가 있는 유산으로 지정돼있다. 자유시간 1시간은 마을을 둘러보는 데는 충분했지만, 티룸에서 차를 한 잔 마시기에는 빠듯했다. 마침 차고세일을 하는지 늘어놓은 접시며 인형, 책 등 오래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말 조그만 기념품 가게에도 들어가 지나치게 화사하지 않고 고졸한 맛이 있는 전통 수공예품도 구경한다. 

좁지만 예쁘게 정원을 꾸민 집이 탐이 났던지 마치 그 집에 사는 것처럼 꾸며봤다.(좌) 주거지역에서 만난 티룸. 황금색 코츠월드 돌로 만든 아담한 집이 고풍스럽다.(중), 지나다 보니 차고 세일을 하는 듯 옛날 물건들을 늘어놓고 있다(우)

마을이 크지 않아서인지 1937년에 마을 전체의 모형을 9분의 1로 축소해 제작한 모형 마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마을 전체를 돌아보는 일정이라서 따로 모형을 구경하러 가지는 않았다. 개울 아래쪽에는 자동차 수집가 마이크 카바나(Mike CavanaghI)가 1978년 설립한 자동차 박물관이 있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캐러밴 및 자동차 운전 기념품 등을 비롯해, 페달 자동차, 자전거, 버스, 비행기 및 기타 차량, 모델 키트, 등 자동차와 관련된 다양한 장난감도 볼 수 있다. 

1991년부터 BBC One에서 방영돼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시리즈 ‘브럼(Brum)’의 주인공인 인공지능 자동차 모형, 브럼도 전시돼있다. 1920년대 출시된 ‘오스틴(Austin) 7처미(Chummy) 컨버터블’의 모형인 브럼은 주인이 없을 때, 마을로 나가서 벌이는 모험을 그렸다. 브럼이 사는 박물관이 바로 버튼 온 더 워터의 자동차박물관이며, 이 시리즈의 유일한 등장인물 마이크는 짐작하는 대로 이곳 자동차 박물관의 주인인 마이크 카바나다. 

개울 끝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좌) 큰길가에 세운 전몰장병 기념비(우)

개울을 따라 걷다보면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희생된 마을 주민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볼 수 있다. 누군들 스스로의 목숨이 아끼고 싶지 않을까 싶지만, 그것이 대의를 위한 일이라면 피하지 않은 이들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는 전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어떠한가 되돌아보게 된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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