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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바스, 로마 식민 시대로부터 이어온 휴양도시

기자입력 : 2018.10.23 20:08:58 | 수정 : 2018.10.26 19:09:46

10시 반, 우리는 버튼 온 더 워터를 떠나 세머셋 카운티에서 가장 큰 도시, 바스(Bath)로 향한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바스는 로마제국이 브리튼을 지배하던 시절 발견된 온천, 로만바스가 있는 곳이다.

당시 나병에 걸린 귀족 혹은 왕자가 이곳에 와 있었는데 웅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양들의 피부병이 없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웅덩이에 몸을 담가 나병이 나았다는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서기 60년 로마가 에이번(Avon) 강 계곡에 목욕탕과 신전을 지어 아쿠에 술리스(Aquae Sulis)라는 라틴 이름을 붙였을 때는 이미 온천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또한 온천물이 치유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17세기에 들어서야 알려졌다.

욕탕을 건설하기 위해 건축가들은 온천수가 용출하는 진흙탕에 참나무기둥을 박아 넣은 다음 석재들을 쌓았다. 석재 사이의 틈은 납으로 메웠다. 2세기 무렵에는 나무로 만든 둥근 천정을 올렸다. 욕조는 물의 온도에 따라서 온탕(caldarium), 미지근한 욕조(tepidarium), 그리고 냉탕(frigidarium) 등으로 구분했다. 5세기 무렵 로마군이 철수한 직후부터 욕탕은 부서지기 시작해 6세기 무렵에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좌)사원의 박공벽을 장식한 조각품, (중)로만 바스 박물관에 전시된 술리스-미네르바 여신의 두상, (우)신전 벽에 새겨진 태양신의 부조

바스의 로마제국 시절의 이름 아쿠에 술리스는 술리스의 물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술리스(Sulis)는 바스에서 숭배된 켈트족 신으로 로마의 미네르바 여신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술리스 여신에 대한 언급은 영국의 바스, 그리고 독일의 알제이(Alzey)에서만 볼 수 있다. 켈트신화에서는 갈라진 틈, 우물 혹은 우물과 관련된 부분, 물웅덩이 등과 관련돼있다.

술리스의 의미는 분명치 않으나, 옛 아일랜드어에 따르면 ’, 혹은 간격의 의미로, 인도-유럽어에서는 태양에 해당하는 단어와의 연관성이 고려되고 있다. 따라서 술리스는 로마시대 이전에는 태양의 여신으로 숭배됐을 것이다.

바스의 온천은 영국 유일의 자연온천이다. 온천물의 근원은 멘디프(Mendip) 언덕에 쏟아지는 비에 있다. 빗물이 석회암의 대수층을 지나 지하 2700~4300m 깊이에 이르면 64~96에 달하는 지열에 의하여 가온된다. 온도의 상승으로 압력이 높아진 물은 석회석의 틈과 단층을 따라 지표면으로 상승한다. 바스에서 용출되는 온천수는 매일 1170톤에 달한다.

7세기 무렵 바스 수도원이 건립되면서 종교의 중심이 됐고, 18세기 들어서는 바스 스톤으로 건축된 로얄 크레센트(Royal Crescent), 서커스(The Circus), 펌프룸 및 보우 내쉬(Beau Nash) 등은 조지왕 시대의 대표적 건물들이다.

버튼 온 더 워터에서 바스까지는 버스로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영국의 국도는 비교적 좁은데다가 도로 양쪽에 나무들이 가로수라기보다는 거의 숲에 가까워 창밖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가 어렵다. 운전기사 베브(Bev)의 거친 운전솜씨도 한 몫을 더했다.

버스가 바스 시내로 진입하는데 전통 복장을 한 여성 둘이 문 앞에 서있는 집을 지났다. 바로 전에 오만과 편견을 쓴 작가 제인 오스틴이 8년간 살았던 집이라고 가이드가 소개했던 집이다. 게이(Gay)40번지에 있다는 제인 오스틴 센터이다. 하지만 베브가 차를 쌩하니 몰아가는 바람에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사인을 주고받는 법이 없나보다. 버스에서 내려 중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먼저 먹었다.

제인 오스틴 센터 <사진=구글 지도>

흥미로운 점은 제인 오스틴이 바스에 8년 동안 살았고, 바스에는 제인 오스틴 센터가 있어 그녀를 기리고 있지만, 막상 그녀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을 읽어보면 거의 마지막 무렵에 리디어는 가끔 남편 혼자서 런던이나 배스에 놀러갔을 때만 펨벌리로 왔다라고 적은 것이 바스에 대한 유일한 언급이다.

1775년에 햄프셔주의 스티븐턴에서 태어나 성장한 오스틴이 바스에 온 것은 26살이 되던 1801년이다. 아버지가 스티븐턴의 목사직을 큰 오빠에게 양도하면서 부모님, 언니와 함께 바스로 이사했던 것인데, 스티븐턴을 아주 좋아했던 오스틴으로서는 8개월 동안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작품 설득에서는 바스가 이야기의 전개에서 큰 축을 차지한다. ‘설득의 주인공 앤은 바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아마도 작가가 본심을 투사한 것일 수도 있다.

오스틴은 눈이 너무 부시다는 점이 바스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색이 바랬지만 당시만 해도 바스에 세워진 많은 건물들이 아이보리색의 바스 스톤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날이 맑으면 온 눈이 부실정도로 도시가 밝게 빛났다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설득’, 두 작품은 젊은 여성들의 결혼과정을 다루고 있다. ‘남편 찾기 소설이라고 잘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나, 19세기 초반 영국의 젊은 여성들의 자아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잘 묘사했다고 하겠다.

두 작품 모두에서 우여곡절 끝에 좋은 짝을 만나는 결말로 이끌어가고 있지만, 정작 작가는 미혼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실패한 첫사랑으로 인한 좌절 같은 것이 찌꺼기처럼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첫인상으로 남주인공 다시씨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가졌던 엘리자베스가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의 편견을 깨고 다시씨의 진정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면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 오히려 편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어떻든 오만과 편견설득두 작품을 통해 19세기 초 영국사회에서의 결혼은 재산과 지위를 중심으로 한 정략결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스스로의 기준으로 상대를 고르는 현명함을 보인다.

(좌)로만바스 박물관 입구.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다. (우)2층 테라스에서 굽어본 모습. 테라스에는 다양한 조각상이 늘어서 있다. 초록의 욕탕물이 인상적이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바스 구경에 나섰다. 마침 바스대학교의 졸업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로만 바스에서는 욕탕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로마신화에서 유래한 조각 작품들이 많이 발굴됐다. 지금도 쏟아지고 있는 온천수도 볼 수 있다. 녹색을 띄는 욕탕에서는 공기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는데 아마도 탄산온천인 모양이다.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는 로마 목욕탕에서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비롯해 온천수가 용출해 흘러내리는 통로를 볼 수 있다욕조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천정은 없지만 2층에는 테라스 형식으로 돼있어 1층 욕조를 내려다 볼 수 있다테라스의 가장자리에는 다양한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다.

(좌)주변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돼있다. 사원의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 (중)2000년 전 이 지역에 살던 남자의 묘석에 새겨진 모습, (우)사원에 있던 점치는 돌(The Haruspex Stone). 희생된 동물의 창자를 돌 위에 펼쳐 점을 쳤다

가이드가 온천탕에 들어 있는 물을 만지지 말라고 미리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은 꼭 있는 법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1978년에 복원된 로마 목욕탕에서 수영한 어린 소녀가 수막염에 걸려 사망했으며, 온천물에서 아메바의 일종인 네글레리아 파울레리(Naegleria fowleri)가 발견됐다. 인공담수호에서 발견되는 이 아메바는 뇌로 침범해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 1시간의 자유시간을 얻었다. 우리말로 된 오디오가이드가 제공됐는데,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돼있어 시간 안에 모두 들을 수는 없었다. 전시된 유물을 보고 설명을 들을 것인가를 판단하면 된다.

하지만 욕심을 내다보니 시간이 꽤 많이 흘러 바스 수도원교회의 안까지 들어가 볼 시간을 내지 못했다. 전 베네딕트회 수도원에 속했던 교회는 7세기에 발견돼 10세기에 개편됐다가, 12세기와 16세기에 각각 재건됐다. 수도원 해산조치 이후 1539년에 영국국교회 소석의 웰스대성당에 통합됐다.

교회정면의 양쪽으로 두 개의 사다리가 걸려있는데 이를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이라 한다. 자세히 보니 천사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올리버 킹(Oliver King)주교가 선지자 야곱이 꿈에 보았다는 사다리를 인용해 야곱 사다리(Jacobs Ladder)’라고 했다는 그 사다리다. 계단 끝에는 하느님이 서 있다.

5개의 내포가 있는 본당건물의 길이는 74m이고, 폭이 24m, 높이는 23m이다. 노란색을 약간 띄는 바스 스톤으로 지은 바스수도원교회는 고딕양식의 수직형의 전형적인 형식은 아니다. 창문을 50개나 가지고 있어 전체벽면의 80%를 차지하는 점도 특징적이다. 합창단석에서 서쪽으로 난 통로 위로 부챗살 모양의 아치형 천정이 이색적이다. 교회 안에는 모두 617건의 추모현판이 걸려있고, 847개의 기념석이 바닥에 놓여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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