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10-30 07: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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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에 스톤헨지를 떠나 런던에 있는 숙소, 홀리데이 인 런던 웨스트 호텔로 향했다. 다음날 런던 시내관광에 이어 윈저성을 구경하고 공항으로 가는 일정을 고려한 숙소라고 했다. 런던으로 가는 길에 윈저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구경할 윈저성 아래 로열쇼핑센터에 있는 프랑스 식당에서 닭 반 마리를 찜으로 한 음식이었는데, 이름을 적어두지 못했다. 프렌치프라이를 곁들였는데, 영국에서 굳이 프랑스 요리를 먹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8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귀국비행기 좌석을 예약했다. 인솔자가 와이파이를 공유해준 덕분에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순조롭게 좌석예약을 마쳤다. 여행 도중에도 여행기를 적는데 필요한 사진을 찍느라 일행보다 처지는 필자를 챙기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준 인솔자 한지선씨에게 감사드린다.

여행길에서 맞는 여덟 번째 아침이다. 모닝콜을 받고 창문을 열었더니 밤에 비가 왔었나 보다. 땅이 젖은 품으로 보아서는 그리 많이 온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곳곳에서 홍수가 나고 도로가 파손됐다고 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대단한 밤이었나 보다. 다행히 이날은 구름이 걷히고 날씨가 맑아지겠으나 다음날에는 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다. 하지만 다음날은 우리 일행이 런던을 떠난 뒤이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이날 일정은 8시 반에 숙소를 나서서 타워 브릿지에서 템즈강 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시작했다. 숙소를 나서 길을 가다 보니 그을음으로 뒤덮인 아파트 한 채를 볼 수 있었다. 여행 한 달 전인 2017614일 새벽 1시경에 일어난 불로 전소된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 4층에 있는 한 가구에서 냉장고 합선으로 시작한 불이 아파트 전체로 번져 24층까지 모두 타버렸다고 한다.

런던 서부 래티머 로드에 있는 이 아파트는 런던시의 구청이 소유한 임대아파트다. 1973년에 준공된 노후건물이라서 2016년 리모델링을 했다고는 하지만 스프링클러시설조차 없을 정도로 부실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입주자 또한 대부분 저소득층과 이민자들로 120가구에 400~600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아파트가 있는 켄싱턴-첼시 지역은 영국에서도 알아주는 부자동네임에도 유독 이 아파트 주변은 환경이 열악했다. 그래서 나무위키는 서울로 치면 타워팰리스와 개포동 구룡마을이라고 비유했다. 뿐만 아니라 보수당이 추진한 규제완화정책이 사고의 먼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사후 수습이 미흡해 영국판 세월호 참사였다는 평가도 있다.

주민들이 잠들었던 새벽 1시에 화재가 발생해 특히 피해가 컸는데, 영국 경찰은 화재 당시 약 350명이 건물 안에 머물고 있었고, 그 가운데 71명이 사망했다고 최종 집계했다. 사고 후 오랫동안 건물이 붕괴할 위험이 있어 실종자를 확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오가면서 이 건물을 여러 차례 봐야 했는데, 볼 때마다 희생자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런 비극적 상황도 세인들의 관심을 오래 끌지 못할 정도로 런던은 거대하고 바쁜 도시인가 보다. 런던은 경계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런던시(City of London)는 고대시기에 형성된 런던의 핵심지역으로 2.9의 면적에 2011년 기준으로 7375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이다.

웨스트민스터시(City of Westminster)는 런던시의 서쪽에 위치하며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 중심부의 핵심을 이룬다. 그레이터 런던의 주민은 2017년 기준으로 8825000명이며, 주변도시를 포함하는 런던 광역시에는 1404만명이 거주한다. 1831년부터 1925년까지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던 도시였지만, 오늘날 그레이터 런던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됐다. 런던 광역시로는 세계에서 5~6번째 큰 도시다.

런던이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로마인들이 브리타니아를 정복하고 서기 43년에 이 지역에 론디니움(Londinium)이라는 요새를 건설한데서 런던이 출발한다. 로마제국이 지배하기 전에는 켈트족들이 살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3세기 초반까지 이민족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론디니움 주변에 많은 성벽을 쌓았다.

로마인들은 410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철수했다. 그 후 게르만족의 일파인 색슨족, 앵글족, 유트족이 들어와 왕국을 세우면서 런던은 새로운 도시로 번성했다. 9세기 초에 덴마크 바이킹이 침략해왔으나, 앵글로색슨족의 알프레드 대왕이 이를 물리치고 런던을 새로 건설했다.

12세기 들어 공예와 상업 길드가 발전하기 시작해 16~17세기에 번영을 구가했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시절 런던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가 됐다. 런던에는 웨스트민스터 궁전, 본초자오선이 지나는 그리니치 천문대, 버킹엄 궁전, 세인트 폴 대성당, 대영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대영 도서관 등 수많은 유적 및 문화시설이 있다.

필자로서는 이번이 두 번째 런던 방문이다. 2005년인가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23일 일정으로 런던에 온 적이 있다. 그때는 짬을 내 버스를 타고 런던 중심지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번에는 다른 경로로 런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먼저 런던탑 부근에 있는 부두에서 출발하는 템즈강 유람선을 탔다.

공식적으로는 여왕폐하의 왕궁과 런던탑요새(Her Majesty's Royal Palace and Fortress of the Tower of London)인 런던탑은 런던시의 동쪽 끝, 템즈강의 북쪽 제방에 위치한 타워 힐(Tower Hill)에 있다. 1078년 정복자 윌리엄왕에 의해 완공된 화이트 타워(Whhite Tower)는 새로운 지배자에 의한 압제의 상징이 됐다.

리처드 1, 헨리 3, 에드워드 1세 등, 12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동안 여러 차례 확장공사가 이어진 결과, 수비벽과 해자로 이뤄지는 두 개의 동심원 고리 안에 여러 건물이 들어서게 됐다. 런던탑은 4.9헥타르 면적을 차지하며 2.4헥타르 부지가 이를 둘러싸고 있다. 성은 세 개의 건물과 울타리로 이뤄졌다. 가장 안쪽에 화이트 타워(White Tower)가 들어서있다.

바닥 면적이 36×32m를 차지하는 화이트 타워는 남쪽에서 27m의 높이 솟아있다. 3층 구조로 지하층, 입구층 그리고 위층으로 돼있다. 서쪽 구석에는 정사각형 탑이 있고 북동쪽에 있는 둥근 탑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다. 남동쪽 구석에는 교회의 애프스를 위한 공간으로 튀어나와 있다.

처음에는 켄트지역에서 나는 경질암(Kentish ragstone)을 주로 사용하고, 일부 지역의 이암도 썼다. 17~18세기에 포틀랜드석으로 이를 대치했고, 전면은 프랑스에서 수입된 캉석(Caen stone)으로 장식했으므로 처음 사용한 재료는 남아 있지 않다.

건설된 초기에는 왕가에서 사용하는 왕궁이었지만, 1100년부터 1952년까지 감옥으로도 사용됐다. 그밖에도 병기고, 왕실금고, 동물원, 왕실화폐의 주조소, 공공기록소, 왕관의 보석을 보관하는 장소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14세기 초부터 찰스 2세 때까지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으로 가는 왕의 대관식 행렬이 출발하는 곳이었다.

16~17세기 무렵에 런던탑에 수감된 대표적 인물로는 여왕이 되기 전의 엘리자베스 1세를 비롯해 여왕의 총신이었던 월터 롤리(Walter Raleigh)경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스록크모튼(Elizabeth Throckmorton) 등이 있다.

작가 혹은 선동가들에 의해 고문과 죽음의 장소로 묘사된 런던탑에서 실제로 처형된 사람은 7명에 불과하며, 대부분 처형은 성 북쪽에 있는 타워 힐에서 이뤄졌는데, 400여년의 기간 동안에 모두 112건의 사형집행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런던탑에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다. 대표적 유령으로는 1536년 헨리8세에 대한 반역죄로 참수된 앤 볼린(Anne Boleyn)이 있다. 그녀가 묻혀있는 런던탑에 있는 빈쿨라의 성 베드로(St Peter ad Vincula) 교회에 나타난다는 그녀의 유령은 머리를 팔 아래에 끼고 화이트 타워를 배회한다고 전한다. 그밖에도 헨리6, 레이디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 마가렛 폴(Margaret Pole)을 비롯해 타워에 갇혔던 왕자들 유령이 출몰했다는 것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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