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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템즈강에서 본 것들(1)

오준엽 기자입력 : 2018.11.03 19:00:00 | 수정 : 2018.11.13 17:47:16

런던 지하철 타워힐역 가까이에 남아 있는 로마장벽의 잔해. 3세기경에 쌓은 것이다 [사진=Wikipedia]

버스에서 내린 곳이 아닐까 싶다. 런던탑의 동쪽 끝에 있는 공원의 도로 건너편에는 런던 지하철, 튜브의 타워 힐(Tower Hill)역 가까이에 런던 장벽(London Wall)의 잔재가 남아있다. 런던 장벽은 로마제국이 템즈 강변에 조성한 론디니움(Londinium)을 수비하기 위해 쌓은 방어벽이었다. 

서기 120년 론디니움 요새를 구축한 뒤 80년가량 지나서 건설됐다. 모두 130ha의 지역을 감싸는 3.2km 길이의 장벽이다. 메이드스톤 부근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켄티시 조암(Kentish ragstone)을 2.5~3.0m, 곳에 따라서는 6m의 높이로 쌓았다. 장벽의 동쪽분에는 약 64m 간격으로 최소 22개의 탑을 세웠다. 

훗날 색슨의 해적들이 여러 차례 습격해오자 서기 280년에는 강변 쪽에 장벽을 추가로 건축했다. 중세 무렵 런던은 장벽을 넘어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런던 장벽은 방어벽의 기능을 잃었다. 1666년 9월 런던 대화재로 장벽 안의 중세 런던도시 대부분이 파괴됐다. 

도시의 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았던 런던 장벽의 문들은 1760년과 1767년 사이에 모두 철거됐다. 장벽 역시 19세기에 이를 때까지 파괴되거나 다른 구조물에 통합됐다.

타워브릿지의 원경

런던탑을 돌아서 템스강변으로 내려가면 템스강 유람선을 탈 수 있는 타워부두가 있다. 여기에서 배를 타고 템스강의 상류 쪽으로 40분 정도 떨어진 웨스트민스터 부두까지 간다. 배가 출발하고 멀어지는 타워브릿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도개교와 현수교 양식이 결합된 240m 길이의 타워브릿지는 1886년 착공해 1894년 완공됐다. 런던탑 곁에 있는 이 다리는 런던의 상징이기도 하다. 높이 65m의 철골조 교량탑 위쪽에는 두 개의 수평통로가 연결돼있는데, 수평장력을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한 구조이다. 

교량탑을 올리기 위해 7만톤 이상의 콘크리트가 들어간 두 개의 거대한 교각을 강바닥에 세웠고, 탑과 다리의 골조를 만드는데 1만1000톤의 강철이 들었다. 코니시(Cornish) 화강암과 포틀랜드(Portland) 석재로 덮어 탑의 골조에 들어간 철재를 보호하고 겉모습을 꾸미고 있다. 완공 당시 118만4000파운드의 건설비용이 들었는데 2016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억2400만 파운드, 한화로 약 1801억원에 달한다.

(좌) 타워브릿지가 열리기 시작하는 모습, (중) 모두 열린 모습, (우) 타워브릿지 문을 닫아 교통을 통제한다 [사진=Wikipedia]

탑 사이의 거리 65m인 타워브릿지는 두 탑을 연결하는 도로가 양쪽으로 올라가면서 열리는 이엽도개교 형식이다. 1000톤이나 되는 탑을 들어 올리는 동력장치가 탑 안에 들어있다. 처음에는 증기엔진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전기모터를 사용한다. 

준공 당시에는 1년에 6000회 정도 다리를 열고 닫았지만, 지금은 대형선박의 통행횟수가 줄어 연간 500회 정도 여닫는다. 열 때면 다리 가운데가 분리되면서 양쪽으로 서서히 들리기 시작해 여덟 팔(八)자 모양을 거쳐 거의 90도 가까이 세워진다. 이때 두 탑의 문이 닫히고 다리 양쪽의 차선이 통제된다. 

다리가 완전히 들리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5분이라고 한다. 다리가 열리고 닫히는 것을 구경하려고 관광객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 위로 올라가면 2개의 탑을 연결하는 인도교가 나온다. 유리로 된 전망대를 통해 다리 아래의 템스 강은 물론 멀리 런던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어, 최고의 전망대로 꼽힌다.

멀어지는 타워브릿지에서 눈을 돌려 배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눈길을 두다보면 템즈강 남쪽에 정박하고 있는 순양함을 발견할 수 있다. HMS 벨파스트함이다. 1936년 12월 건조를 시작해 1938년 3월 17일, 성 파트리치오의 날에 진수했다. 전체 길이 187.0m, 가장 넓은 선폭이 19.3m, 흘수(吃水)는 5.3m이며, 배수량은 1만1200톤이다. 최고 시속 35노트(65km)를 낼 수 있었다. 

퇴역후 템즈강에 정박해 제국 전쟁박물관으로 이용되는 HMS 벨파스트함. 6.25동란에도 참전했다

왕실해군의 첫 번째 배로 열 척의 타운급 순양함 가운데 하나인 이 배에는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의 이름이 붙었다. 벨파스트함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 1945년 6월, 극동에 도착한 영국 태평양함대에 재배치된 벨파스트함은 6.25동란 기간인 1950~52년에 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1971년 벨파스트를 보존하자는 트러스트운동에 힘입어 정부가 벨파스트함을 트러스트에 이관했고,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1971년 10월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이후 1978년 제국 전쟁박물관의 하나가 됐다.

밸파스트함 뒤쪽으로 공사가 진행 중인 고층빌딩은 상그릴라 호텔 런던이 입주한 고층빌딩 더 샤드(The Shard)다.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한 높이 309.7m의 더 샤드는 영국을 포함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세계에서는 96번째로 높다.

뒤쪽으로 영국을 포함한 EU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고층빌딩 더 샤드가 있다

렌조 피아노는 부지 인근의 철길과 18세기 베네치아 화가 카날레토(Canaletto)가 그린 항해 중인 배의 돛대에서 영감을 얻었다. “빌딩의 이름처럼 ‘유서 깊은 런던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유리조각’이 될 것”이라는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의 평가도 받았다. 

건물 전체에는 각도를 바꿀 수 있는 유리판을 붙여 햇빛과 하늘을 반사해 날씨와 계절에 따라 건물의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이 건물을 덮고 있는 1만1000매의 유리판의 총면적은 무려 5만6000㎡로 웸블리구장 8개 넓이와 맞먹는다.

타워부두를 떠나 처음 지나는 다리가 런던교(London Bridge)다. 역사적으로 런던 중심부의 시티 오브 런던과 사우스워크(Southwark)를 연결하는 런던교라는 이름의 다리는 여럿이 있었다. 현재의 다리는 1973년에 개통된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들어진 박스거더교다. 

필자가 어렸을 적, ‘런던 다리 무너지네(London Bridge is Falling Down)’라는 제목의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노래는 다양한 가사를 붙여 전 세계에서 불리는 영국의 민속 동요 및 창가 놀이로, 런던 브리지의 파괴, 실현되거나 상상 속에서 실현되는 다리의 재건 시도에 대한 내용으로 이뤄져있다고 한다. 

가사는 “런던 다리가 무너지네, 무너지네, 무너지네. 런던 다리가 무너지네, 내 아름다운 여인(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own.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My fair lady!)”라는 첫 소절의 가사를 시작으로 가사내용을 바꿔 돌림노래처럼 부른다.

런던교 부근에 처음 놓은 다리는 로마제국이 설치한 일종의 부교(pontoon)였다. 켄티시(Kentish) 항구를 비롯한 남쪽으로부터 카밀로두눔(Camulodunum, 지금의 에섹스에 있는 콜체스터(Colchester)의 고대 로마식 이름)으로 이동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의 다리였다. 서기 약 55년경에는 통나무를 박아 만든 고정식 다리가 세워졌다.

런던브릿지의 야경 [사진=Wikipedia]

로마 제국이 물러난 뒤 론디니움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서 다리는 파손됐다. 색슨시대에는 템즈강이 서로 적대하던 메르시아(Mercia)왕국과 웨섹스(Wessex)왕국의 경계가 됐다. 9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반에 이르는 덴마크의 침공 당시의 기록에 다리의 재건과 파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1066년 노르만이 점령한 뒤 윌리엄왕이 다리를 재건했지만, 1091년의 런던 대폭풍우, 1136년의 화재로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했다. 친구이자 정적이었던 캔터베리대주교 토마스 베케트(Thomas Becket)를 죽인 헨리2세는 그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다리를 놓기로 하고, 수도원 길드 “교량의 형제(Brethren of the Bridge)”를 만들었다. 콜레(Cole) 교회의 피터가 교량건설을 맡아 1176년에 시작된 공사는 건설비용 확보가 어려워 무려 33년이 걸려 1209년 끝났다.

강바닥에 불규칙한 간격으로 19개의 물막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세운 아치 위로 폭 8m, 길이 240~270m의 다리를 놨다. 커다란 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도로가 열리는 구간을 뒀고, 양쪽 끝에 길을 막는 문을 달았다. 1358년 무렵 다리 위에는 138개의 상점이 밀집해있었다. 

클라우드 드 종(Claude de Jongh)이 1632년에 그린 유화 ‘런던교 풍경(View of London Bridge)’. 옛 런던교의 상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Wikipedia]

새로 만든 다리 역시 화재에 취약해 1212년 다리 양쪽 끝에서 동시에 발생한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갇히기도 했다. 1381년 웟 틸러(Wat Tyler)의 농민반란과 1450년 잭 케이드(Jack Cade)의 폭동 때 다리 위의 주택들이 불타기도 했다. 튜더 시대에는 다리 위에 약 200 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어떤 건물을 7층이나 됐다. 600년이 넘게 사용되던 이 다리는 1831년 새로운 런던교가 개통된 뒤 철거됐다. 

18세기 들어 런던교의 통행량이 많아 혼잡해지면서 새로운 다리가 필요해졌다. 1799년 공모전이 열렸고 존 레니(John Rennie)의 5개의 아치로 된 설계가 선정됐다. 1824년 존 레니의 아들이 감독을 맡은 가운데 중세의 런던교보다 상류 쪽으로 30m 떨어진 곳에 새 런던교 건설이 시작됐다. 

넓이 15m, 길이 283m의 새 런던교는 영국 동부의 헤이토르(Haytor)에서 가져온 화강암을 사용해 1831년 개통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8년마다 2.5cm씩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고, 1924년에는 동쪽이 서쪽보다 약 9cm 낮아졌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금의 런던교가 건설됐다. 윌리엄 그래엄 홀포드(William Graham Holford)경의 설계로 283m 길이의 철근콘크리트 다리가 1967년 착공돼 1972년 완공됐으며, 1973년 개통돼 지금까지 이용되고 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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