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지갑은 가볍고 연금만 무겁다

국민연금 인상에 서민 분노 커져… 연금행동 구창우 사무국장 “연금 신뢰 형성 쌓아야”

기사승인 2018-11-20 02: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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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지갑은 가볍고 연금만 무겁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도처에서 쏟아지고 있다. 경기 둔화와 높은 실업률, 여기에 설상가상 줄줄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보험료는 가뜩이나 팍팍한 서민들의 현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각종 경제 지표도 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올해와 같은 2.7%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로 오름세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재인 정부가 주력해 온 일자리 창출도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사실상 0%를 기록하자, 정부는 내년 일자리 창출에 23조5000억 원의 상당한 예산을 편성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는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 안정자금인 국민연금이 인상될지 모른다는 ‘루머’는 단연 ‘뜨거운 감자’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3%, 즉 3명 중 1명의 비중을 차지하는 봉급생활자들은 매달 월급에서 저절로 떼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인상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연봉 인상폭보다 더 많은 보험료 인상, 거기에 물가 인상까지 고려하면, 갈수록 손에 쥐는 돈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회의 내용이 언론에 ‘유출’되자, 박능후 장관은 부랴부랴 “사실과 다르다”고 진화에 나섰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수습에 나섰지만, 이후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후 문 대통령은 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의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충분히 들으라”는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지난 13일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은 “보험료 증가 없이 소득대체율 인상은 불가하다”고 밝히며 다시금 연금 인상 논란에 불을 지폈다. 

때문에 지금도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등의 각종 보험률 인상을 다룬 기사마다 “각종 연금에 피 같은 세금 쏟아 부을 생각하지 말라”, “국민연금 폐지하거나 선택하게 해 달라”, “월급은 제자리인데 세금과 보험료만 오르니 이민을 가야겠다” 등의 성난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인상은 예정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 상황에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대통령의 국민 의견 수렴 지시가 사실상 연금 인상 당위성을 국민에게 설득하라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이 관계자는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중소기업에서 주임으로 재직 중인 박민정씨(34·가명)는 최근 국민연금의 인상 가능성을 점치는 뉴스를 보고 모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몸담은 회사에서 내가 낸 국민연금을 노후에 돌려봤으리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다”며 “안정적인 고용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언제 받을지 모르는 돈을 위해 매달 지출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근 직장을 관두고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권혁진씨(40·가명)는 “국민연금의 인상 여부는 현재 내 상황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무신경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만약 당장 변리사가 돼도 앞으로 돈을 벌 나이는 20년이 채 안될 것”이라며 “연금이 인상돼 수익의 적잖은 금액이 떨어져 나가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구창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돈을 올리는 건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며 “국민연금을 받는 노령층이 안정적으로 사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여러 이유로 보험률을 올려 기금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득세하고 있지만, 현재의 국민연금은 재정안정보다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구 사무국장은 “장기적으로 보험료는 인상되어야 하지만, 인상이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는 “외국의 보험률 인상 과정을 보면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형성 단계를 충실히 밟는다. 국민들의 제도 신뢰에 발맞춰 점진적으로 보험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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