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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첫 번째 이야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오준엽 기자입력 : 2018.11.27 12:00:00 | 수정 : 2018.11.28 10:38:26

‘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의 열 번째 여행지로 이탈리아를 골랐다. 그동안 돌아본 스페인, 터키, 발칸, 영국 등 곳곳에 남아있는 로마제국의 유적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변죽만 두드렸다면 이제는 제국의 본거지를 들여다 볼 때가 되었다 싶었다. 아프리카와 이스라엘-요르단 여행을 같이 했던 모호곤 사장님의 강력한 추천도 한 몫을 했다. 조지 에머슨은 “이탈리아는 ‘운명’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는데, 이탈리아를 봐야 할 이유는 충분했던 것 같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서기 117-138년) 로마제국의 도로망 [그림=Wikipedia]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로마제국은 유럽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말은 로마제국이 건설한 방대한 도로망을 자랑하는 라틴어 속담 ‘오므네스 비아에 로맘 두쿤트(omnes viae Romam ducunt)’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하지만 1175년 알랭 드 릴(Alain de Lille)이 『리베르 파라볼라룸(Liber Parabolarum)』에 쓴 “mīlle viae dūcunt hominēs per saecula Rōmam”라는 구절이 최초라고 한다.

‘모든 길은 언제나 사람을 로마로 인도한다’라는 의미다. 이를 영어로 처음 옮긴이는 영국의 시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이다. 1391년 발표한 『아스트롤라베(Astrolabe; 고대 그리스의 천체 관측기)에 관한 보고서』에서 “right as diverse pathes leden the folk the righte wey to Rome”라고 했는데, ‘다양한 길들이 사람들을 틀림없이 로마로 이끌어가는 것처럼 옳다’라는 의미다. 우리말로 치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의미로 통할 수도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1786년 9월 3일, 마차를 타고 독일의 칼스바트를 떠나 20여개월에 걸쳐 오스트리아를 경유해 이탈리아 곳곳을 돌아보고 느낀 점을 『이탈리아 기행』에 담았다. 책에서 “내가 이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다”라는 구절을 읽을 수 있다. 

한편 괴테가 자신을 바이마르로 초대해준 아우구스공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제 여행의 원래 의도는 독일에서 저를 괴롭힌, 그리하여 급기야 저를 쓸모없게 만든 육체적, 정신적 상처로부터 저 자신을 치유하는 일이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적은 것을 보면 힐링을 목적으로 한 여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의 성공 이후에 침체기에 빠진 스스로를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또한 여행을 통해 예술을 향한 자신의 타오르는 갈증을 달래는 기회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이 무렵 유럽의 변방에 속하던 영국과 독일 등의 나라의 신흥귀족들은 자녀들을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보내 2~3년 머물면서 앞선 문화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 유행했다. 주로 16세에서 21세의 청소년들이 이런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그랜드 투어라고 했는데, 여행지에 대한 정통한 지식과 소양을 가진 사람과 경호원들까지 대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역시 젊은 날부터 큰물에서 놀아봐야 시야가 넓어진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해외의 여행지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매체를 통해 올리는 그들의 여행기를 보면,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위한 무엇을 확실하게 얻는 젊은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2018년 3월에 떠난 이번 여행에는 군의관으로 근무하는 큰 아이가 함께 했다. 전역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었다. 작은 아이만 두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 다소 미안한 감은 있지만, 일정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다음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3월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출발하기 이틀 전에는 초여름 날씨처럼 더웠는데, 정작 출발하는 날은 쌀쌀했다. 그래서인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시릴 듯 파랗다. 토요일 아침이라 도로 사정은 원활하다. 공항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 듯 공항버스 안이 한산하다. 

그래도 강남대로에는 오가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저 젊은이는 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지 궁금해진다.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빈차 표시를 켜고 서있는 택시도 줄지어 있다. 심야 같으면 고개가 빳빳할 그들이다. 교보빌딩근처에서는 공사가 있나보다. 신분당선 복선화사업이라고 한다. 출퇴근시간에 이 길을 지나는 것이 어렵겠다. 그리고 보면 이 동네도 참 많이 변했다. 젊어서 이 근처에서 근무할 때 나와 보면 이렇게까지 번화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8시 버스가 올림픽대로에 들어섰다. 강변에 늘어선 아파트들이 아침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문득 서울은 참 건조한 느낌을 받았다. 한강이 유장하게 흐르는데도 말이다. 잠들었었나보다. 햇볕이 따가워 깼다. 벌써 공항에 다 왔나보다. 공항철도에 전철이 지나간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나왔던 프랑스친구들이 “바닥에 앉아 밥을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하다”라고 했는데 한 번 타볼 일이다. 물이 썰었나보다. 갯벌이 멀리까지 나가 있고 인천대교 주탑이 아스라이 보인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비행기 한 대가 막 이륙하고 있다. 

인천에서 로마까지의 비행경로

약속한 9시10분보다 일찍 인솔자를 만나 여행 관련 설명을 듣고 이어폰, 일정표 등을 받았다. 여유롭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이번 여행은 유네스코유산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전문 인솔자가 동행하는 하나투어의 상품이다. 아시아나 모바일 체크인으로 가서 항공권을 받고 짐을 부쳤다. 폰을 로밍하고 보안검색을 받았는데 올림픽 관련해서 보안검색이 강화됐단다. 신발까지 벗고 검색대를 통과해서 출국신고를 마치고 보니 9시40분이다. 공항수속이 엄청 간편해졌다. 

예정된 시간보다 20분 늦은 12시55분 비행기가 탑승구를 물러났다. 유럽으로 가는 항로가 중국영공에서 혼잡을 빚고 있단다. 정시에 출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아시아나 답다. 로마까지는 8947km를 12시간에 걸쳐 날아 갈 예정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미이라』를 보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본 같은 제목의 영화가 아니었다. 

검색해보니 영화 『미이라』는 1932년에 첫 작품이 발표됐고, 1959년에 첫 번째 리메이크된 작품에 이어 1999년에 리메이크되면서는 2001년, 2008년까지 세 작품이 이어 제작됐다. 그리고 2014년에 이어 2017년에도 리메이크가 된 것이다. 영화 『미이라』에서의 모래폭풍 장면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지식서재가 최근에 발간한 필자의 책 『우리 일상에 숨어있는 유해물질』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원고쓰기를 시작했다. [이미지=지식서재]

영화에서 모래폭풍을 보았던 탓에 여행 전에 출판사 지식서재와 계약한 책, 『우리 일상에 숨어있는 유해물질』에 담을 미세먼지에 관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편집자와 의논한 형식에 따라서 30매 정도의 초고를 정리했다. 가지고 간 책자 이외에 다른 자료가 없으니 여행을 마치고 보완하기로 한다. 

『우리 일상에 숨어있는 유해물질』은 개정판을 포함해 그동안 필자가 세상에 내놓은 여섯 번째 책이다. 식품의약품안전연구원의 전신인 국립독성연구원에서 독성연구부장으로 일할 때의 경험을 살려 식품과 의약품을 포함해 우리네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유해물질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내용이다. 

3월 중순에 이탈리아 여행길에 시작한 원고쓰기는 7월초 독일여행을 떠나기 전에 전체 원고를 마무리했고, 10월초 그리스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출간이 됐으니 해외여행과 꽤나 연관이 있는 셈이다. 내용에서도 여행 중의 경험을 녹여낸 부분이 조금 들어가 있다. 여행 중에 새 책의 원고쓰기를 병행하려다보니 아무래도 책읽기에는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현지시각으로 5시 17분, 예정시각에서 그리 늦지 않게 로마에 도착했다. 트램을 타고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하면서 인솔자에게 물으니, 로마의 공항에서는 주말 이 시간대가 제일 한가한 편이라고 한다. 금세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도 잘 찾았다.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3월 무렵의 이탈리아에서는 해가 일찍 지나보다 공항을 나서는데 벌써 어스름하다. 하늘은 파랗고 하늘가로 뭉게구름이 몇 점 흘러가는 좋은 날씨다. 그런데 내일은 비가 예고돼 있단다. 숙소가 로마의 변두리에 있는 듯, 공항에서 40여분을 달려 6시경 숙소인 SHG 호텔 안토넬라에 도착하다. 

인솔자가 이탈리아 여행길에 조심할 사항들을 전하는데 단연코 소매치기에 관한 것이 제일 중요하단다. 소매치기 주의보는 여행지마다 나온 현지가이드들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반복했다. 후일담이지만 덕분에 사건사고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로마 변두리에 있는 호텔에서 내려다보면 오샹이라는 수퍼마켓이 보인다.

비행기가 로마에 도착하기 직전에 기내식으로 피자 한 조각이 나와 시장기는 때운 셈인데, 이것으로는 저녁식사가 애매했던지 현지가이드가 김밥을 준비해줬다. 그래도 기내식이 피자 한 조각이었는데, 제대로 된 저녁을 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길 건너에 오샹(Auchan)이라는 프랑스계 유통업체의 수퍼마켓이 있었다. 과일이라도 사올까 하다가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만두었다. 

김밥은 9시경에 야참을 겸해서 먹었다. 준비해간 컵라면을 같이 먹었더라면 좋았겠다. 숙소는 깔끔했고, 3인실이 비좁을 것이라고 사전에 들었던 것보다는 널찍했다. 침대 하나가 소파 침대라 쿠션이 조금 불편했다. 알고 보니 방이 둘인 특실을 내준 것이었다. 덕분에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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