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두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8-11-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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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탈리아 여행의 첫날이다. 휴대폰에 문자가 쏟아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피곤이 풀리지 않았는지 다시 잠이 들었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깼는데 마침 아내가 기척을 했다. 모닝콜까지 두어 시간의 여유를 이용해서 원고를 쓰기로 했다. 주제는 양치질과 치약에 관한 이야기다. 

홀린 듯 써내려가던 원고를 날렸다. 스마트폰으로 글쓰기 작업을 할 때는 중간 중간 저장을 하는데, 이날은 ‘저장’을 누르지 않고 ‘무시’를 눌렀던 모양이다. 기억을 되살려 날아간 원고를 어느 정도는 복구했다. 모닝콜까지 원고지 70매 정도의 초고를 정리할 수 있었다.

식당은 7시부터 시작한다고 했지만 이른 입장이 가능했고, 좌석도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차림이 다양하지 않더라는 것. 식사를 시작할 무렵 창밖을 내다보니 구름이 꽤나 두텁다 싶었는데, 식사를 마칠 무렵부터 비가 내렸다. 낌새를 보니 종일 끈질기게 비가 내릴 듯하다. 바람도 만만치 않다. 내리는 비를 맞아가면서 가방을 싣고 버스를 탔다.

약속한 8시에 버스가 출발했다. 먼저 이탈리아반도의 북쪽을 둘러서 다시 로마로 이동했다가 나폴리 인근까지 내려가 둘러보고 로마로 와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첫날은 오르비에토와 아씨시를 구경하고 피렌체에서 묵는 일정이다. 첫날부터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버스가 출발하자 현지가이드가 이탈리아 관광에 필요한 사항을 설명했다. 

먼저 간단한 이탈리아어부터. 아침인사는 본 조르노(Boun giorno), 저녁인사는 보나 세라(Buona sera), 가볍게 하는 인사 ‘안녕’에 해당하는 챠오(Ciao), 감사합니다는 그라찌에(Grazie), 미안합니다는 스쿠지(Scusi)다. 맛있다는 부오노(Buono)인데, 검지를 볼에 대고 말한다고 배웠다. 일본에는 부오노라고 하는 3인조 여자아이돌이 있다. 가이드가 열성적으로 이탈리아어를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여행하는 동안 사용한 이탈리아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고속도로 변으로 펼쳐지는 크고 작은 들판은 연초록의 풀로 뒤덮여 봄이 가까운 것을 알겠다. 하지만 야산을 덮고 있는 나무는 지난 가을이 남긴 알록달록한 옷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앙상한 가지마다에는 연초록빛을 담고 있어 봄을 느낄 수 있다. 내리는 비 탓인지 큰 강과 작은 개울에는 탁류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이번에 돌아보는 이탈리아의 공식명칭은 이탈리아 공화국(이탈리아아로는 레퍼블리까 이탈리아나, Repubblica Italiana)이다. 유럽대륙이 허리춤에서 지중해로 슬그머니 발을 담그고 있는 듯한 장화모양의 반도다. 반도의 동쪽은 아드리아 해, 남쪽은 이오니아 해, 서쪽은 티레니아 해와 리구리아 해라고 부른다. 지중해에 있는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섬 그리고 스위스와의 국경 너머에 있는 캄피오데디탈리아까지 총 30만1338km²의 영토를 가진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영토 안에도 산마리노와 바티칸시국이 들어있다. 북쪽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인구는 6020만명으로 유럽에서는 여섯 번째, 세계적으로는 23위에 해당한다. 국내총생산은 2018년 추정 2조4000억 달러로 세계 12위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3만9500달러로 32위에 올라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85만년전 선(先)인류가 거주한 흔적이 발견됐으며, 4만3000년전 무렵 크로마뇽인이 거주한 흔적도 발견됐다. 기원전 6000년에서 5500년 사이에는 신석기문명이 시작됐고, 기원전 1500년 무렵 인도유럽어족의 사람들이 청동기문명을 가지고 들어왔다. 

기원전 8세기 무렵 시작된 철기시대에는 지금의 이탈리아인의 조상이 살기 시작했는데, 북부에는 켈트족이, 중부에는 에트루리아인이, 그리고 남부에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식민지들이 자리 잡게 됐다. 이러한 상황은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까지 지속됐다.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753년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이탈리아 중부지방을 흐르는 티베르 강변에 있는 팔라티네 언덕에 로마왕국을 세웠다고 전한다. 티투스 리비우스 등 고대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왕국는 건국이후 일곱 명의 왕이 다스리면서 243년간 이어지다가 기원전 509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성립했다. 로마왕국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390년 갈리아인의 침입으로 벌어진 알리아 전투 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갈리아인을 격퇴시키고 난 다음 로마공화정은 본격적으로 세력 확장에 나서, 기원전 281년 그리스 식민지의 거점 타란토를 점령하면서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완성했다.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146년 사이에 아프리카 북쪽, 지금의 튀니지 일대에 고대 페니키아사람들이 건설한 카르타고와 치른 세 차례의 포에니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서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시칠리아 등까지 속주로 삼게 됐다. 이어서 알렉산드로스대왕 사후에 분열된 마케도니아왕국과 셀레우코스왕국을 점령하여 지중해를 왕국 안에 품게 됐다. 

로마 공화정은 기원전 1세기 중반 시작된 정치·사회적 혼란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의 암살을 계기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카이사르의 양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가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하면서 막을 내리고,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게 된다. 옥타비아누스가 ‘존엄한 자’라는 의미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칭호를 받은 기원전 27년을 로마제국의 출발로 본다. 

로마시를 빠져나가 북쪽으로 1시간 20분 정도 달리다보면 언덕 위에 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선 마을을 만난다. 먼저 만난 마을이 오레테(Orete)이고, 이어서 나타나는 언덕 위 마을이 오르비에토(Orvieto)이다. 유럽의 옛 도시들은 외적의 침입을 쉽게 발견하고 방어하기 쉽게 언덕 위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오르비에토는 시타즐로, 즉 슬로우 시티 운동을 처음 시작한 마을이며, 오레테 역시 대표적인 시타즐로라고 한다. 하지만 시타즐로의 명단에서 오레테는 볼 수 없었다.

이탈리아어로 시타즐로(Cittaslow)운동은 투스카니의 수도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31km 떨어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의 시장이 슬로 푸드 (Slow Food)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1999년 처음 제안했다. 패스트푸드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음식과 전통요리를 권장하는 슬로 푸드 운동처럼 도시의 공간 사용, 교통의 흐름 그리고 삶의 흐름 등에서 전반적인 속도를 늦춤으로써 도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원조직인 시타즐로에는 세 종류의 회원이 있는데, 인구 5만명 미만의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시타즐로 타운(Cittaslow town), 5만명 이상의 시타즐로 서포터(Cittaslow Supporter) 그리고 개인 또는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시타즐로 프렌드(Cittaslow Friend)가 있다. 시타즐로 타운만이 정회원이다. 이탈리아에는 28개 마을이 서명해 2001년 시작됐고, 지금은 30개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모두 11개의 마을이 인정을 받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시타즐로를 가지고 있다.

버스가 오르비에토 마을이 있는 언덕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신기하게도 비가 멎었다. 해외여행에서 비를 맞지 않는다는 법칙이 이번에도 적용되려나보다고 했더니 아내가 말을 아끼라고 한다. 급행전철역 아래로 나있는 지하보도를 지나 오르비에트 구시가로 오르는 푸니쿨라를 타러갔다.

오르비에토는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응회암이 평원에 우뚝 솟아 만든 외딴 언덕의 평편한 꼭대기에 들어선 마을이다. 언덕의 사방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돼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언덕 아래에서 언덕 위로 오르는 동굴을 파서 푸니쿨라를 설치한 것이다. 푸니쿨라는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타자마자 출발했다.

푸니쿨라를 타면서 이탈리아 가곡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떠올렸다. “무서운 불을 뿜는 저기 저산에 올라가자, 올라가자 /  그 곳은 지옥 속에 솥 있는 곳 무서워라, 무서워라 / 산으로 올라가는 수레 타고 모두 가네, 모두 가네 / 가세, 가세 저기 저 산에, (반복) 후니쿨리 후니쿨라 / 모두 타는 차, 후니쿨리 후니쿨라”

이 노래는 나폴리에서 동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 때문에 만들어졌다. 폼페이를 지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베수비오 화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1880년에는 영국의 사업가 토마스 쿡이 케이블카를 설치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케이블카가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토마스 쿡은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없애기 위해 음악을 이용해보자고 생각했다. 

가사는 당시 나폴리 신문의 기자였던 주세페 투르코가 썼고, 나폴리 출신의 런던대학 음악교수 루이시 덴차가 곡을 썼다. 제목은 이탈리어로 케이블카를 의미하는 푸니콜라레 (Punicolare)에서 땄다. 흥이 넘치는 곡조의 노래는 곧 유행을 탔고 덕분에 베수비오 화산으로 가는 푸니쿨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수비오 화산의 푸니쿨라는 안전상의 이유로 1943년에 철거됐다.

오르비에토 구시가로 오르는 푸니쿨라에 탔을 때는 이미 승객들이 어느 정도 차있었다. 그런데 앞 창문 쪽에 서있던 이탈리아 남자가 사진을 찍어주더니 자리도 비켜준다. 이탈리아 사람들 참 친절하다. 

푸니쿨라가 동굴을 통과해서 언덕 위에 도착하고 건물 밖에 서 있던 버스를 타고 오르비에토 두오모 앞까지 갔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비가 다시 쏟아진다. 아내는 입빠른 소리한 덕분이라 한다. 오늘은 버스를 타는 동안에는 비가 오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버스를 내려 걷는 동안에는 비가 내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법칙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이탈리아, 두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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