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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미미시스터즈 “그래도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미미시스터즈 “그래도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은호 기자입력 : 2018.12.04 00:01:00 | 수정 : 2018.12.03 23:10:32

사진=PRM 제공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
‘이미 퇴사했는걸.’

우아한 올림머리에 언밸런스한 선글라스. 두 여인이 서로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여인들은 결의한다. 우린 자연사하자고. 여성듀오 미미시스터즈가 지난달 연 공연 포스터의 내용이다. 공연에서 미미 시스터즈는 관객들과 국수와 백세주를 나눠 마시며 서로의 자연사를 기원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등의 삽화를 그린 양경수 작가, 이 시스터즈 멤버 김희선, 싱어송라이터 프롬이 이 자리를 함께 했다.

“걱정 마. 어차피 잘 안 될 거야” 

미미 시스터즈가 지난 10월 발매한 노래 ‘우리 자연사하자’는 처음엔 자살 방지 캠페인송으로 기획됐다. 큰 미미는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노래를 위해 게이트키퍼(자살위험에 처한 주변인의 신호를 인식해 돕는 것) 교육을 받고 수료증까지 받았다. ‘우리 자연사하자’는 문장은 작은미미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올해 초 지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나도 죽을 것 같고 얘도 죽을 것 같아서”(작은 미미) 한 말이었다. 기획 능력이 탁월한 큰 미미는 “그 얘기, 노래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노래는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미미 시스터즈는 “그동안 발표했던 노래들 가운데 가장 많은 피드백을 얻었다”고 했다.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위로가 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처음으로 자연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는 사람도 있다. 입에 죽음을 달고 사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신은 자살 혹은 병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단다. ‘자연사하자’는 외침이 ‘죽지 말고 살자’는 메시지로 닿은 대표적인 예다. 큰 미미는 “음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드는 요즘”이라며 뿌듯해 했다.

“농담이나 유머를 좋아해요. 미미 시스터즈를 하면서 뭔가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걱정 마. 어차피 잘 안 될 거야’라고 얘기하곤 했죠. 노래를 쓸 때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돼!’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어요.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대충 살아야 돼’라고 말해주길 기대하시지만…” (큰 미미)

“자기가 행복한 대로 사는 거죠.” (작은 미미)

사진=PRM 제공

성향·성격 다르지만…“우린 ‘언니 덕후’”

큰미미와 작은미미는 쌍둥이로 오해 받는 일이 잦다. 가발과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려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둘은 다른 것투성이다. 성격도 반대이고. 발성이나 음역대, 심지어 체형도 다르다. 하지만 ‘언니 덕후’라는 공통점이 이들을 묶었다. 김 시스터즈나 이 시스터즈, 바니걸즈와 같은 ‘언니 걸그룹’에 두 사람은 열광했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멤버 하세가와 료헤이의 영향이 컸다. 료헤이가 들려준 바니걸스의 ‘우주여행’에 이들은 매료됐다. 2011년 낸 첫 EP ‘미안하지만…이건 전설이 될 거야’에 이 곡을 리메이크해서 싣기도 했다. 

미미 시스터즈는 자신들이 ‘성공한 덕후’라고 생각한다. ‘덕질’하던 언니들과 한 무대에 설 수 있어서다. 이번 콘서트에도 이 시스터즈 멤버 김희선을 게스트로 모셔 ‘할머니 그룹이 되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걸그룹이 살아남기란 옛날이 더 어려웠다. 작은 미미는 언니들에 대한 자료를 뒤늦게 찾아보면서 어느 날 ‘이 많은 시스터즈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궁금해 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상처받고 이 세계를 떠나신 분들이 많대요.”(작은 미미) 그래서 이들은 ‘우리가 언니들의 스피릿을 이어받자고 다짐했다. 큰 미미는 “우리가 그 가창력을 계승하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 (정신을 계승한다)”며 웃었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노래하는 건 물론 쉽지 않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임신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여겨진다. 일곱 살 난 아이를 두고 있는 작은 미미는 이런 어려움을 잘 안다. 큰 미미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던 날, 그는 축하를 기대했다. 하지만 큰 미미에겐 공연이나 음반 걱정이 앞섰다. 작은 미미는 서운했다. 두 사람은 사소하게 쌓인 갈등을 에세이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를 펴내면서 풀었다. “교환일기를 쓰듯, 각자 쓴 글을 서로에게 보여줬어요. 울고불고… 그러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어요.”(큰 미미) 작은 미미는 “‘엄마 뮤지션’이 없는 건 합주실에 아이를 못 데려가기 때문”이라고 울분(?) 섞인 농담을 했다.

사진=PRM 제공

“70대엔 ‘글래스톤 베리’서 공연하고파…그러려면 오래 살아야죠”

미미 시스터즈의 초기 콘셉트는 ‘신비주의’였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무대 한편에서 마네킹처럼 팔을 휘젓곤 했다. 알려진 게 없으니 소문만 무성했다. 10여년전엔 선배 가수 인순이에게 선글라스를 낀 채 인사했다가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당시 인순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오해를 풀었는데, 얼마 뒤 느닷없이 이 사건이 화제가 됐다. 큰 미미는 “선글라스 덕에 신상은 안 털렸다. 어쨌든 오해가 풀렸으니, 이 또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웃었다.

미미 시스터즈는 천천히 자신들을 둘러싼 비밀을 벗겨내고 있다. 지난해 낸 에세이가 계기가 됐다. 덕분에 팬들은 미미 시스터즈를 ‘저렴한 신비주의’라고 부른단다. 한 때는 생업인으로서의 삶과 미미 시스터즈 사이에서 균형을 찾느라 혼란스러워했고, 신비주의와 소통 사이에서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지난 10년을 회상하던 큰 미미는 “이제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미미 시스터즈가 어느 정도 하나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의 모토는 ‘가늘고 길게’다. 생활과 일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지켜 할머니 걸그룹으로 장수하고 싶어서다. 큰 미미는 “먼 미래의 우리를 상상하는 것, 할머니가 된 미미 시스터즈를 상상하는 게 즐겁다. 그 땐 지금보다 훨씬 (우리가) 멋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70대엔 세계적인 권위의 글래스톤 베리 페스티벌에 나가는 게 꿈이다. 작은 미미가 “원래는 60대였잖아”라고 하자, 큰 미미는 “60세도 너무 젊어. 얼마 안 남았어”라고 받아쳤다.

“할머니 걸그룹이 되려면요? 일단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야죠. 하하. 좋아하는 걸 해야 오래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작은 미미)

“많은 분들이 조건 없이 저희를 도와주셨어요. 인복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팬이자 지인이자 응원군이 되어주셨거든요. 그 분들에게 마음의 빚과 실제로 진 빚을 갚아야 하는데….(웃음) 그러려면 오랫동안 음악해야죠. 계속 하다 보면, 그 분들이 ‘이야~ 내가 오래 살다보니 미미 시스터즈에게 이런 것도 받아보네?’ 하시는 날이 오지 않겠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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