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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플라스틱과의 불편한 동거

플라스틱과의 불편한 동거

임중권 기자입력 : 2019.01.18 04:00:00 | 수정 : 2019.01.17 17:32:29

인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플라스틱(plastic)과 함께한다. 아동용 장난감, 볼펜, 청소기, TV, 칫솔, 인공 치아·관절·심장까지 이쯤 되니 플라스틱 없는 인류를 상상키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처럼 유용한 플라스틱은 태생은 착한 기술이었다. 19세기 초 미국에서 개발된 플라스틱은 당구와 피아노를 비롯해 일부 부유층의 사치품 재료로 쓰이던 코끼리의 상아를 대체했다. 그 결과 몇천 년 동안 인류의 허영심에 사냥당하던 코끼리는 멸종을 피할 수 있었다. 부수적으로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당구, 피아노 등이 대중에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안경의 뿔테도 마찬가지다. 과거 안경테는 물소의 뿔, 거북의 등 껍데기 등으로 만들어졌지만 플라스틱의 발명으로 이 동물들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앞서 설명한 플라스틱의 저렴함, 빨대부터 수술용 제품의 위생성, 보조 장기가 이끈 의료 혁신 등 인류에게 플라스틱은 그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의 뜻 ‘생각한 그대로 만들다’처럼 무궁무진한 가공성으로 인류문명의 좋은 동반자로 자리매김했었다.

그랬던 플라스틱이 최근에는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생산에는 5초가 걸리지만 분해에는 50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조선이 500년을 지속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00년 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니 500년은 쉽사리 가늠키도 어렵다.

이 상황에 플라스틱 폐기물은 나날이 지구에 쌓이며 산과 들, 바다까지 버려진 플라스틱이 떠돌아다니며 지구를 좀먹고 있다. 최근에는 고래부터 사람의 몸속에서까지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지구촌 공동체가 직면한 큰 환경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국내에서는 플라스틱 제품의 재료가 되는 각종 플라스틱 소재를 생산하는 한국 화학업계를 두고 ‘악의 축’으로 취급하며 질타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국내 화학업계에서는 광복 이후 불모지인 한국에서 화학 산업을 세계 4위로 키워내 국가 경제를 견인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질책이니 자괴감이 든다는 업계 관계자들도 많다.

물론 해양오염, 폐기물처리 문제 등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조류가 됐으니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업계에서 새어 나온다.

다만 술은 마시는 사람이 문제지, 술이 문제는 아니다. 수요에 맞춰 자사 이익 창출에 노력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하기 위해 나선 화학업계에게 플라스틱 환경 오염의 모든 책임이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인류 생활에서 빨대부터 인공관절까지 차지한 플라스틱의 자리를 대체할 수단이 없다는 게 업계와 학계의 중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한국의 플라스틱 처리 문제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물론 과거 정부부터 켜켜이 쌓여온 문제, 글로벌 숙제에 대해 뾰족한 대안을 당장 정부에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다만 현 정부가 일회용품 플라스틱 빨대 등을 2027년까지 퇴출하기로 했지만 대책이 미진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대형마트 등에는 자발적 감축에 기대고 있고, 일부 카페 등 업체는 플라스틱이 금지되니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종이컵을 내놓는 ‘눈 가리고 아웅 식’ 대응도 하고 있다.

결국 일반 소비자들에게 실생활에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일을 권장하는 모양새인데 이는 구우일모(九牛一毛)식 대책으로 보인다. 대중의 플라스틱 줄이기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원천적인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폐플라스틱은 최근 논란이 일었던 필리핀 쓰레기 불법 수출 사건처럼 제3국에 수출되거나, 국내에서 매립·소각 등 조치로 처리되고 있다.

이 역시 국내 플라스틱 매립지나 소각장들은 대부분 포화 상태거나, 님비 현상 등으로 인해 시설을 짓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반면 이웃 일본은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 중 88%를 자국 내에서 재활용한다. 한국과 달리 플라스틱을 수거부터 재활용까지 ‘재화’개념으로 접근해 자원화하고, 남은 것은 해외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웃지 못할 상황으로 한국은 돈을 주고 플라스틱을 매립·소각하면서 일본에서는 플라스틱을 수입하고 있다.

결국 일반 소비자들에게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게 하는 ‘착한 해법’보다는 당근과 채찍이 포함된 정책을 통한 ‘경제성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만 이 숙제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문제 해결의 미래는 밝다. 한국 화학업계는 지난 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신년 인사회’를 통해 플라스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과 문제해결에 업계가 앞장서자고 공언한 바 있다.

더불어 정부 역시 올해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공격적 정책을 펼칠 것을 16일 밝히기도 했다. 다른 여러 사회적 문제와 달리 민관이 합심해 나선 이상 이 안건의 미래는 고무적이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플라스틱과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인류와 플라스틱이 다시 좋은 동반자가 되길 바라본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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