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건의료계는 ‘안전’이 화두다. 2016~2017년은 ‘환자안전’으로 떠들썩했다. 각종 의료기관 내 감염이나 의료사고 등으로부터 환자가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들이 검토되고 가시적 성과들이 제시됐다. 법도 만들어졌다.
2018~2019년에는 ‘의료인안전’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응급실을 비롯한 의료기관 내에서 벌어지는 의료인에 대한 폭언과 폭행, 그로 인해 발생한 사망과 같은 악결과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의사와 정부, 국회는 ‘의료인과 국민 모두 안전할 권리가 있다’며 대책마련에 나섰다.
그리고 오는 30일, 그간 논의된 내용의 대책이 발표될 전망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발족한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TF’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원내대표 보고를 마쳤다. 오는 29일 오전에는 당내 정책위원회에서 논의돼 도출된 대안을 공개할 방침이다.
TF팀장을 맡았던 윤일규 의원실에 따르면 회의는 보건복지부 대정부보고를 포함해 총 4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3차 회의 때는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표자들과 만나 의료현장에서의 폭력문제와 피해상황에 대해서도 청취했다.
결론적으로 TF는 큰 틀에서 4가지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입법기관인 국회 고유권한을 활용해 진료환경의 안전을 보장하고, 정신질환자의 치료가 원만하도록 의료법과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방침이다.
둘째, 의료계와의 협의체를 구성해 의료인 폭행예방 및 대응체계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들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아울러 관련 제도를 개선해 환자와 의사 간 신뢰를 확보하고 안전한 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도 손볼 예정이다.
여기에 의료기관에서의 폭행이 환자 본인뿐 아니라 진료를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일이며 심각한 범죄행위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안전하게 진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국민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대국민 캠페인과 홍보강화 방안을 마련한다.
이와는 별도로 보건복지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안전한 진료환경과 문화정착을 위한 TF(안전진료TF)’는 22일 4차 회의를 마치고 30일 5차 회의에서 구체적인 방안과 추진계획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4차 회의까지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면 민주당에서 제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복지부와 의료계는 크게 ▲의료인 폭행관련 실태조사 ▲시설 및 환경 개선, 관련 교육을 위한 ‘안전관리료’ 신설 ▲대국민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및 홍보 3가지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4차 회의까지 의료인 폭행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예비실태조사를 진행한 후 문구 등의 수정을 거쳐 본 조사를 2월 중 진행하기로 했다. 대국민 인식개선 캠페인과 홍보를 위한 포스터 제작에 대한 사항도 협의했다”고 전했다.
이어 “실태조사를 통해 폭행현황을 파악한 후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논의할 예정”이라며 “대비통로나 비상연락체계, 보안인력배치나 안전시설을 갖추는 등 현장에서의 변화는 실태파악 이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가칭 ‘안전관리료’로 불리는 수가신설에 대한 사항은 논의가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방상혁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시설개선과 안전교육에 소요될 비용을 지원하기 위한 수가신설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소요재정에 대한 추계 등이 이뤄지지 않아 구체적인 사항은 정하지 못했다”면서 “별도의 안전관리료 항목을 신설할지 진찰료에 안전관리 명목의 수가를 녹여낼지 2가지 방안을 제시했고, 진찰료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모이는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일련의 논의과정을 지켜본 이들 중 일부에서는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분명 일련의 조치가 취해진다면 보다 안전한 진료실이 갖춰질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환자와 의사간의 다툼이 폭력사태로 번지는 원인에 대한 냉정한 자기반성 없이 외형적인 변화에만 치중한다면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하고 장기적으로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민은 “환자가 의사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냐”면서 “폭력은 분명 잘못된 의사표현이지만 그 역시 답답함이나 억울함을 표현하기 위한 분노의 표출이자 자기표현 수단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면밀히 살펴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 또한 “이번에 내놓을 안전진료대책은 단기적 대책에 불과하다. 여기서 더 이상의 개선노력이 없다면 안전한 진료환경이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의료인력이 늘고 진료문화, 의료기관 이용행태나 전달체계, 태도가 바뀌어야한다. 이를 위해 국민과 의료계 모두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