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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강원 산불, 당신에게 집의 의미는

안세진 기자입력 : 2019.04.16 05:00:00 | 수정 : 2019.04.16 10:08:42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내린 주택들

‘집’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먹고 자는 기본욕구만을 충족시켜주는 공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젊은 날과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일 수도 있다. 또 혹자에게는 사고파는 투자 상품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공통분모를 꼽으라면 바로 ‘소중함’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저마다의 소중한 이유로 집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소중한 공간을 상실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강원도 산불 피해자들이다. 지난 4월4일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불씨는 삽시간에 화마(火魔)가 되어 속초·강릉·동해·인제 등 5개 시·군을 덮쳤다. 강원도 재난안전실의 산불 피해 현황에 따르면 8일 기준 이번 산불로 인해 발생한 주택·상가 등 시설물 피해는 총 1722곳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불에 탄 집은 478채. 그리고 현재 임시주거시설이나 친척 집 등을 떠돌고 있는 이재민은 916명에 이른다고 한다.

불에 녹아내린 자동차

12일 오전 10시 시외버스를 타고 약 3시간을 달려 기자가 도착한 강원도 속초의 모습은 참혹했다. 3시간이라는 시간은 평범한 일상에서 재난의 중심부로 들어가기에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택시로 속초 내 피해지역 중 한곳인 장사동으로 이동하던 중 동네 분위기에 대해 물었다. 택시 운전사는 “난리도 아니었다”며 “우리 집 마당에도 불똥이 떨어졌는데, 손주 녀석은 빨리 도망가자 보채고, 애 할머니는 집 버리고는 못 간다 하고 정신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기가 너무 심해진 나머지 결국 가족들과 바닷가로 대피해 있다가 몇 시간 후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다행히 집은 멀쩡했지만 마당은 시꺼먼 재가 돼 있었다고 한다.

어느덧 도로 양옆으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타버린 건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 보이는 저 산으로부터 불똥이 여기까지 튀어 옮겨 붙었다는 사실은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운전사는 택시를 세우며 이곳부터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목격할 수 있을 거라 했다. 택시 운전사에게 집이란 쉽게 떠날 수 없는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신평이라는 마을에서 데려온 개의 이름은 신평. 하얀 털이 검은 재로 덮혀 검게 변해 있다.

타지 않은 한 카센타 안으로 백구 한마리가 꼬릴 흔들고 있었다. 어느새 나와 계신 카센타 사장은 “그날 온 사방에 불이 붙어버리니까 묶여있던 이 아이를 풀어줬다”며 “얘도 놀란 나머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다. 다행히 며칠 전 해변에서 다시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들뿐만 아니라 가축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특히 닭들이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백구의 검은 그을음을 보며 빨리 씻겨줘야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옆을 지나가던 한 지역 주민은 “지역 사람들을 위해 내가 만든 책방이 다 타버렸다”며 “수 십 년 동안 모은 책들이 사라져 상실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들에게 집은 타 생명체와의 공존의 터이면서, 수 년 간 이뤄진 기록의 보고였다.

거리에선 산불을 조심하라는 지역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군청 관계자들은 동네 이장님과 함께 마을을 돌며 임시대피소를 마련할 부지 물색을 하고 있었다. 축산물 방역업체로 보이는 사람들은 마을의 축사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이장님에게 타버린 앞집을 가리키며 “여기 사는 김씨는 지금 어디로 가 있느냐”며 걱정했다.

한 마을이 사라져버린 동네에 자리한 마을회관은 외로워 보인다.

마을회관이 나타났다. 마을회관 외벽에는 ‘산불피해 임시대피소’라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이불과 물을 포함한 간단한 식량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게시판에는 ‘마음에도 종합검진이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재난심리회복센터의 팜플렛이 꽂혀 있었다. 한 어르신은 “살면서 이런 광경 쉽게 못 본다”며 많이 보고 가라고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인근 수돗가에서 시꺼멓게 그을린 동전들을 닦던 어르신은 “여기 산 사람들이 대부분 40~50년 된 토박이들인데 도깨비불로 인해 다 흩어졌다”며 “피는 안 섞였지만 다 한 가족들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에게 집은 남과 구분 짓는 단절의 구조물이 아닌, 소통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집과 집은 마을을 이루고 마을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의미했다.

돌아오는 길에 텃밭이 다 타버린 한 전원주택을 방문했다. 이곳에 28년째 살고 있다는 집 주인은 “한 순간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며 “이 앞에 하우스를 만들어 옥수수며 꽃이며 키우고 있었는데 죄다 사라져버렸다”고 속상해했다. 아주머니의 딸은 근처 마을에서 거주하는 신혼부부였다. 올해로 3년째 되는 신혼집은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딸은 “불이 결혼사진, 아이들 앨범까지 모든 추억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집은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것 이상의 공간일 거라 감히 확신했다. 그 언젠가 텃밭에 앉아 소중히 꽃을 가꿨을 주인아주머니와, 집 안 어딘가 걸려있었을 가족사진을 보며 미소 지었을 신혼부부를 생각하면 집은 하나의 거대한 추억의 보관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을회관 앞 한 할머니가 시꺼멓게 탄 동전들을 물에 씻고 있다. 그을린 동전들이 마치 상처 입은 주민들과도 같이 느껴진다.

집이란 무엇인가. 속초 지역 주민들은 말한다. 집은 가족이고 보금자리며 공존의 터이고, 기록의 보고이며 추억 그 자체라고. 이들은 '소중한 기억을 담는 공간'을 집이라 믿고 있었다. 사라진 478채의 집들은 뛰어난 건축가가 지은 집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 집도 아니었다. 엄청난 개발호재가 있어 투자가치가 상당한 집은 더더욱 아니었다. 물론 집이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써의 기능을 무시할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이날 만난 속초 주민들에게 집은 재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당신에게 집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떤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속초=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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