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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기자의 트루라이프] 생명 살리는 나무 심고 키우는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곽경근 기자입력 : 2019.04.29 12:58:09 | 수정 : 2019.04.29 17:50:35

“온실 가스를 줄이는데 첫 번째는 모든 건축물을 그린 빌딩 화하는 것이다. 에너지 새는 것(효율화)을 막으면 30% 정도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이 말은 화력 발전이건 원자력 발전이건 30%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라며 “동시에 에너지 효율화 작업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미국은 이를 통해 천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도 빨리 그린 빌딩에 눈을 떠야한다.”고 오 이사는 강조한다.

-‘고물상 소년글로벌 환경리더-

- 전교 꼴찌에서 단숨에 전교 1등으로-

- 민주화 투쟁시기에는 민주화 핵심전략가로-

- 기후변화 최대피해국인 몽골과 미얀마를 푸르게-

- 유엔, 푸른아시아 모델을 대안으로 권고-

푸른아시아와 함께 한 대한항공 신입사원 연수프로그램 중 하나인 몽골 바가노르 지역 나무심기 현장(2013년)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몽골에 나무를 심는 푸른 아시아 오기출 상임이사(58·이하 오 이사)를 만났다. 오 이사는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심는 것입니다며 말을 꺼냈다.

인류는 매년 320억 톤 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약 490억 톤의 온실가스를 하늘에 버리고 있습니다. 이는 서울 청계천에 하루 65,000톤의 물이 흐르는데 청계천의 약 2,060년 동안 흘러온 물의 총합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약 1,350년 전 즉 신라의 삼국통일때부터 흘러온 청계천의 물만큼의 환경 쓰레기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이렇게 가면 북극이 녹아내리고 혹한과 폭염, 농산물 흉작이 일상화되면서 영화처럼 인류멸망의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인류는 핵무기보다 기후변화로 멸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인류는 지금보다 이산화탄소를 80퍼센트 줄여야한다.” 시작부터 기자의 머리가 무거워졌다.

전교 꼴찌가 단숨에 전교 1등으로

오 이사는 1961년 경상남도 산청의 산골에서 51녀의 다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산골소년 오기출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먼 친척이 운영하는 부산의 고물상으로 강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소년 오기출은 학교 다니는 날보다 고물상에서 고물을 정리하며 보내는 날이 더 많았다. 학교에 가도 담임선생님이 회초리를 들고 기성회비를 가져오라며 집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이래저래 졸업 때까지 출석일수가 100일도 채 안 되었다. 그래도 졸업은 했다. 운 좋게 초등학교 졸업장은 받아들었지만 생활기록부에 적힌 성적은 전교 꼴찌였다.

“그동안 지구 온실가스의 93%를 바다가 해결해줬는데 바다도 이미 포화상태다. 바다의 기온이 1.5도 오르면 산호초의 95%가 사라지는 등 바다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온다.”면서 “빠르면 20년 이내에 다가올 인류의 재앙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오 이사는 밝혔다.

내가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 아이인가? 만약 내가 전교 일등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그동안 고물상의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파지들이 보물로 다가왔다. 오 이사는 그 속에서 필요한 헌책과 참고서, 신문을 골라냈다. 특히 참고서와 신문은 그에게 공부방법을 알려주는 훌륭한 과외선생님이었다. 고물상에 딸린 방은 하나였다. 좁은 방에서 8명의 식구가 먹고 자는데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책을 펴서 늦은 밤까지 공부에 열중했다. 제발 불 좀 끄라는 식구들의 성화와 미안함에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 때 '형설지공'이 무엇인지 알았다. 밥값을 하라며 친척아저씨는 학교도 잘 안보내줬지만 결국 전교 일등의 꿈은 고물상이 아니었다면 실현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경남 산청의 산골마을의 말썽꾸러기 소년은 일이나 배우라며 부산 친척집 고물상에 보내졌다. 학교도 잘 안다니고 산처럼 쌓인 고물들과 놀았다. 학생기록부는 ‘양가양가’에다가 체육이 유일하게 ‘미’ 였다. 전교 꼴찌로 졸업한 오기출 소년은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 당당히 전교 일등을 차지한다. 무엇이든 마음 먹으면 이루어 내는 그는 아시아 26개 나라 55개 단체가 연대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아시아 시민사회 콘퍼런스’ 조직위원장으로 ‘테라시아 포럼’을 이끌고 있다. ‘테라시아는 땅을 의미하는 테라(Terra)와 아시아(Asia)를 결합한 말이다

중학교에 입학 후 처음 한 달은 그에게 정말 견디기 힘든 인내의 시간이었다. 고물상 소년의 몸에서는 당연히 냄새가 났고 얼굴과 옷은 때에 절어있었다체육선생은 용의검사 시 팬티만 입혀 세워 놓았다. 구질구질한 그를 좋아할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공부에 필요한 지능과 집중력, 뚝심까지 겸비한 그는 이를 묵묵히 감내하며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일학기 첫 시험에서 당당히 전교 일등을 차지했다.

전교 꼴지 졸업생이 단 몇 달 만에 전교 일등이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공부로 우뚝 선 그에게 주변의 대접은 틀려졌다. 놀림의 대상에서 어느새 미담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집에서는 공부 할 여건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밤12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경비아저씨는 연습장을 가졌다 주고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주면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친구들은 어려운 문제를 그에게 들고 왔다. 산청의 가족도 친척의 고물상을 인수하면서 부산으로 이사 왔다.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일등을 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오 상임이사의 이력은 남다르다.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민주화운동을 했다. 격변의 시기에 민청련· 민통련· 전민련 등을 모두 거친 운동권의 중심 인물이었다.

하지만 공부 박사 오기출에게 사춘기가 왔다. 공부에 머리가 깬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국··수 등 주요과목의 3년 공부를 일찌감치 마쳤다. 오 이사는 2학년 2학기에 들어서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심하게 겪는다. 왜 공부를 열심해 해야 하는지 그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무조건 공부만 강요했다. 오 이사는 방황의 시기를 거쳐 재수 끝에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결국 그는 촌놈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라며 경제학과 교수로 삶의 방향을 정했다.

19811학년 2학기 때 친한 친구가 데모를 하면서 강제징집을 당하게 되고 친구가 맡고 있던 농촌봉사활동(농활)을 대신 맡아하면서 오 이사는 사회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전두환 군부 독재, 한국경제의 문제점과 사회 변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정체성 문제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면서 인생의 방향도 정확한 푯대가 세워졌다.

가난한 노동자가 고통 받지 않는 사회 만들겠다!

그 무렵 어머니는 아들의 뒷받침을 위해 상경했다. 어머니는 구로공단 내 공장에 근무하면서 한 달의 절반은 철야를 했다. 밤새워 일하고 아침 7시에 퇴근해서 아들 밥을 차려 주고 다시 출근 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 무리해서 쓰러졌다. 어머니는 집안의 기둥인 오 이사가 대기업에 취직해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 굳게 믿었다.

축 쳐진 어머니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뛰면서 그는 어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어머니처럼 가난한 노동자가 고통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 가난이 더 이상 인간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앞장 서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오 이사는 이후 순수 학생운동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사회변혁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2010년 5월, 몽골 울란바타르 인근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에르덴 솜에서 한국 학생들과 몽골 주민들이 참여해 조림하고 있다. 이 지역은 몽골 환경난민들이 하늘마을을 만들어 생태복원을 진행했다.

어머니와 가족이 소망했던 탄탄대로의 대기업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선택한 오 이사는 30대 중반까지 민청련, 민통련, 전민련 정책실에서 핵심 이론가로 활동했다. 감시와 고통, 고문과 인내의 시절을 민주주의와 사람에 대한 희망으로 살았다. 하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경찰의 감시가 없어지고 사회가 변했다. 90년대 중반 들어 운동권이 해체되고 많은 선배들은 정치권으로 떠났다. 일부는 의원 보좌관을 하거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자신도 정치권에서 손을 내밀었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보고 사회변혁운동에 나섰던 후배들 생각에 혼자 남아 96년까지 노동운동을 했다. 오 이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역감정과 남북통일, 재벌의 문제 등 3개의 과제가 늘 풀고 싶은 어려운 숙제였다.

2006년 6월, 울란바타르의 구청공무원들과 중학생 등이 참여한 조림현장(울란바타르 시 성긴하이르항 구)에서 참가자들에게 환경과 기후변화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역의 안경을 벗고 인류라는 프리즘으로

우리 사회의 현안에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한 오 이사는 그 무렵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던 PC통신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꾼다. ‘현재의 내 능력으로 이 땅에서 할 일은 없다.’고 판단한 오 이사는 한국이라는 지역의 안경을 벗고 인류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나라 밖 세상, 인류는 어떤 현안을 갖고 있는가독학을 하면서 자료를 찾고 연구하면서 인류의 아젠다를 찾아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식량·빈곤 문제를 다루는 미국·유럽·일본 등의 엔지오(NGO)나 전문기관들의 팩스번호를 알아내 자신이 알고 싶은 현안들을 정리해 무조건 보냈다.

그는 19981월 '한국휴먼네트워크'를 설립해 아시아의 시민사회단체와 교류를 시작했다. IMF 직격탄을 맞은 때라 국제회의가 쉽지 않았다. 외유내강의 그는 어렵게 한국, 일본, 중국, 몽골, 대만이 참여한 동아시아의 미래 국제심포지엄을 성사시켰다. 아시아의 미래는 인류 아젠다의 축소판이었다.

몽골 바양노르 솜에서 주민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생전 처음보는 수박을 들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2017년 8월)

인류 미래의 축소판이 한국이라는 것도 심포지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역감정, 통일, 재벌 이라는 우물 안 문제에서 기후변화를 비롯해 금융’, ‘빈곤식량그리고 성평등문제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시각이 확장되었다. 두 번째 열린 1999년도 일본회의에서는 지구공공재의 위기 즉 공기, 환경, 인권 상황에 따라 시민들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지구공공재의 위기는 곧 기후위기, 금융위기와 직결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지구공공재의 위기에 대응한 실천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2018년 3월, 몽골 울란바타르 푸른아시아가 운영하는 임농업교육센터에서 주민들이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에서 시작한 일이 3년 만에 아시아 네트워크가 구성되었다. 뜻을 세우니 길이 열렸다. 몽골이 기후 변화로 난민이 발생하고 전국토의 90%가 사막화의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UNDP(유엔개발계획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와 일본은 몽골의 기후변화에 대한 자료를 이미 많이 갖고 있었다. 오 이사는 공동실천을 제안했고 한국, 일본, 몽골이 함께 조사에 나섰다.

20008월에는 맨몸으로 몽골을 찾았다.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사막화로 풀이 사라지고 물도 마르자 목축을 하던 유목민들은 낯선 도시로 떠밀려가 환경 난민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사막화는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몽골 당국은 돈도 없고 의지도 없어 보였다. 몽골은 기후변화의 나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오 이사는 여기서 성공하면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가장 어려운 곳에서 답을 찾기로 한 것이다.

때마침 2000년대 들어 황사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환경부와 기상청 등의 요청으로 몽골의 사막화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조림사업과 환경난민 자립사업, 에코투어 등 구체적인 현장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에는 지금의 푸른아시아로 명칭을 변경했다. 6년 전부터는 미얀마에도 진출해 중부건조지역 사막화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5년 6월 17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엔사막화방지기념식이 열렸다. 300여명의 유엔 대표와 세계은행 및 정부 관계자가 참여한 생명의 토지상 수상식에서 푸른아시아 오기출 상임이사가 ‘생명의 토지상 최고상’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환경 분야의 노벨상 생명의 토지상수상

2014년 푸른아시아는 환경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생명의 토지상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푸른아시아를 통해 지난 15년간 몽골의 황사 발원지 6곳에서 주민자립형 조림사업으로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정착시킴으로써 전 세계 사막화 지역에 희망을 심어준 공로였다.

몽골 울란바트로에서 열린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천개의 복이 온다” 몽골어판 출판기념회에서 몽골 환경관광부 장관이 감사를 표하는 표창장을 전달했다.(2019년 4월 10일)

UN이 생명의 토지상을 푸른아시아에 준 것은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어서가 아니라 주민역량개발을 통해 사람의 삶을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가장 극단적 지역에서 만들어진 성공사례로, 기후변화로 고통 받는 각 지역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기도 했다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국가들은 협력해야 합니다. 수탈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체계적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국제적 지원 시스템과 결합해 안정적인 생산과 판매를 통해 성장의 열매를 나누어야 한다.”고 오 이사는 강조한다.

푸른아시아는 사막화가 진행 중인 미얀마 만달레이주 냥우시 현지에서 2015년 6월 200명의 주민들과 함께 240ha에 15만그루 심었다.


-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천개의 복이 온다-

1977년 케냐에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하면서 전국에 걸쳐 1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환경운동가 왕가리마타이는 2004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숲에 불이 나면 모든 동물은 도망갑니다. 그런데 달아나지 않고 숲을 지키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벌새인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새는 숲에 불이 나면 개울가에서 그 작은 부리로 물을 머금고 와서는 불붙은 나무 위에 뿌립니다. 숲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큰 불에 비하면 벌새의 이런 행동이 하찮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벌새에게서 인류가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0억 인류가 벌새가 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평생 나무 10그루를 심는다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앞으로도 몽골·미얀마 등 아시아에 10억 그루 나무를 심어 황사 발원지를 막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면 2의 생태복원이 이뤄져 그 10배 정도 이상의 지역에서 모래먼지 폭풍이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오 이사는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는 일과 더불어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의 삶, 사람과 자연의 관계도 함께 복원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고통 받고 있는 지구촌 160개 나라가 이 같은 푸른아시아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푸른아시아의 활동가들과 주민들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만들어가는 공동체 모델은 지금도 변화하며 발전해나가는 중이다.

오 이사는 공동체(community)의 어원은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것이다. 벌새 한 마리는 미약하지만 수백만, 수천만이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연대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면 막강한 힘이 된다.”면서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과제가 아닌 지구 공동체가 당면한 절박한 현실이다. 민간 리더들이 먼저 시작하되 국가 차원에서 결합해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답이라고 힘을 주었다.


 글=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 사진=왕고섶 사진가 ·
 

 사진제공=푸른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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