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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유시민 알릴레오 팩트체크… 해명이나 사과 없이 거짓으로 우정 포장”

이영수 기자입력 : 2019.05.04 09:52:30 | 수정 : 2019.05.04 09:52:34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은 3일 페이스북을 통해 “5월 1일자 알릴레오 방송은 39년 전 역사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젊은 세대에게는 유시민의 예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에 입각한 명확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거짓으로 우정을 포장하고 감성으로 정의를 가장했다”고 비판했다.

심 의원은 ‘유시민 알릴레오 팩트체크’라는 제목으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5월 1일 유튜브 알릴레오 방송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은 다음과 같다’며 설명했다.

1. “그 진술서는 7월 한 최소한 7월 중순 이후에 쓴 걸로 보여요.”

(거짓!) 당시 유시민의 합수부 진술서는 심재철의 진술(6.30) 전인 6월11일과 6월 12일 작성되었다.

2. “그 제가 쓴 진술서의 명단을 가만히 보시면, 77명이 누구냐 하면 대부분이 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의 총학생회 간부, 근데 저의 비밀조직 구성원들은 단 한명도 수배자명단에 안 올라왔거든요.”

(거짓!) 1980년 6월 11일자 유시민의 진술서에 등장하는 77명 명단 중 18명이 6월 17일 지명수배 되는데 이 때 지명수배 된 한 복학생 선배는 나중 체포되어 진술조서를 작성해 본 의원과 이해찬에 대한 증거로 채택된다.

학생회 간부도 아닌데 왜 복학생들의 이름이 진술되는가. 아울러 학생회 간부라 해도 누가 언제 어떤 행위를 했다는 진술이 없었다면 이들이 지명수배 되었겠는가? 설령 공개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행적에 관한 유시민의 진술이 없었다면 지명수배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진술 중 중요한 진술 후(진술서에 수사관의 밑줄) 그 당사자를 체포 후 진술을 받아내는 식으로 전체 그림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수사의 상식이다. 한 예로 본 의원의 지시로 교문 앞 시위 때 가정대 여학생들이 공대 공사장에서 주운 돌을 핸드백에 담아 교문으로 가져와 시위에 사용했다는 유시민의 진술이 나오자 그 입증을 위해 20살 여학생이 체포되고 그 여학생은 혹독한 합수부 신문조서 이후 쓴 2번의 합수부 진술서가 본 의원의 유죄의 증거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그가 말한대로 “그러니까 인제 자기들끼리 진술서를 받다가 뭐가 나오면 비교를 해요. 서로 정보 공유를 하고. 그러고 ‘야 이 건은 얘가 이런 진술을 했는데 쟤를 좀 족쳐봐’ 그러면 인제 딴 사람 관련된 딴 사람을 족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들이 유리한 진술을 누군가가 하면 그 진술에 맞춘 진술을 하도록 두들겨 패는거죠”였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학우의 이름과 행적을 상세하게 진술했는가. 결국 유시민은 자신의 행적은 소극적인 방관자로 기술하고 학우들의 행적은 적극적이고 상세하게 기술하여 합수부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셈이었다.

3. “두번째는 정치인들하고 묶어서 이렇게 조작하는거 여기 휘말려 들어가면 안된다. 그래서 그 당시 김대중 총재하고는 절대 얽혀들어 가서는 안된다. 김대중씨의 조종을 받아서 시위를 했다 이 진술을 계속 요구를 했어요. 처음부터 김대중 총재하고 엮는게 목표예요.”

(거짓!) 유시민은 진술서에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자를 기술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줄 알면서도 자신의 진술서에 ““민청협” 회장이고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사회학과)이었습니다”라며 민청협에 인용부호까지 표시했다.

4. “제가 임의로 쓴 건 아니고 거기서 임의로 쓴 진술서는 하나도 없어요.”

(거짓!) 유시민의 검찰 참고인 진술조서에서 자필로 쓴 ‘심재철에 대한 내란음모 등 피의 사건에 대하여 임의로 진술하겠다’나 ‘검찰관...은 검찰서기...를 참여케 하고 아래와 같이 임의로 진술케하다’ 라고 적시되어 있다.

유시민의 진술은 적극적인 협조에 가까운 것 이었다. 문구를 보면 맞지 않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진술서를 상세하게 늘려썼다고 말한 것 이상이다.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회의를 열었으며 숭전대 총학생회장 윤여연이 사회를 본 것으로 알고 있으며…사립대학의 족벌재단의 반성을 촉구하는 9개대학 공동성명서가 채택되었으며 그 초안은 학생활동위원장 이홍동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001183쪽)
이미 회의가 시작되어 있었고 제일 먼저 연대 대표(총학생회장 박광호가 아니었습니다.)가 13일 연대의 신촌 및 광화문 가두시위 상황 보고를 하면서 “연대가 제일 먼저 십자가를 진 셈이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싸울테니 타 대학도 이때 같이 가두시위를 벌여야한다”고 주장하였으며(001223쪽)
저는 그 학생들의 이름은 알 수 없고 ○○○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001296쪽),

5. “두들겨 패니까 쓴 거지 전부다, 그러니까 제가 막 이렇게 저렇게 개발새발 썼던 진술서들 중에서 안 맞는 부분이 많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려면 제출된 진술서들이 서로 맞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수사관들이 내가 꼭 써야 될 내용들을 찍어서 거기에 쓰게 만든 거예요. 그니까 제가 말 안했다가 들키거나 아니면 사실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써야만 되는 그런 내용들을 쓴 거죠.”

(거짓!) 유시민의 진술을 보면 자신이 한 것은 거의 없고 다른 사람의 혐의사실을 적극적으로 진술했다. 타인의 행적에 관한 진술이 상대방에게는 들이대어지는 칼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인가.

그래서 유시민 진술서의 압도적 분량과 상세함은 결코 선의로 읽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유시민을 제외하고 본 의원의 유죄 입증용 경찰측 진술자 14명은 학생 총회 등 공소사실 한 개에 대해서만 소극적으로 진술하였다. 이들의 진술서의 분량이 2~8쪽 인 것은 물어보는 것만 최소한 진술하는 학우들 간의 불문율 때문이다. 다른 학우들 진술서 분량을 보면 유시민은 자신이 학생운동가의 수칙에 따라 기술했다는 알릴레오 발언이 얼마나 궤변인지 알 수 있다. 대부분 학우들의 진술서는 유시민의 것과 달랐다. 적게는 8, 9쪽 이내 최소한만 적시하였다.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검찰관 정기용)가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목록(002227~002327쪽) 중 심재철에 관한 부분(002287-02289쪽)
증거 기록
 김◯◯ 진술조서 3513-3522쪽 9쪽
 유시민 진술서 3034-3123쪽 90쪽
 김◯◯ 진술서 3168-3201쪽 33쪽
 안◯ 진술서 3196-3201쪽 5쪽
 이◯◯ 진술(1회-4회) 3204-3209쪽 5쪽
3210-3226쪽 16쪽
3236-3240쪽 4쪽
3413-3419쪽 6쪽
3420-3421쪽 2쪽
 이◯◯ 학생과장 3227-3231쪽 4쪽
 허◯◯ 진술서 3211-3413 2쪽
 노◯◯ 진술서 3486-3492 6쪽
 정◯◯ 진술서 3493-3495 2쪽
 이◯◯ 진술서 3496-3497 2쪽
 유◯◯ 진술서 3498-3499 2쪽
 양◯◯ 진술서 3500-3501 2쪽
 김◯◯ 진술서 3502-3503 2쪽
 김◯◯ 진술서 3504-3507 4쪽
 김◯◯ 진술서 3508-3512 4쪽
 윤◯◯ 진술서 3534-3543 9쪽

분량이 방대한데다 유시민의 진술서는 또한 너무나 세세해서 학우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로 작용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유시민의 진술은 학우들의 혐의를 입증하였다. 본 의원과 관한 진술 중 일부이다.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5월에 들어가면 학원의 이슈를 교내문제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확산시키자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001191쪽)
4.28. 15:00~18:30 종로 한일관에서 서울시내 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가 열렸는데…본인은 참석치 않아…총학생회장 심재철이 5월에 들어가면 학원의 이슈를 교내문제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확산시키자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000091쪽)
“심재철이 사회도 보면서 시국선언문도 낭독하였으며 구호를 선창하고 교내 순환도로를 일주하는 민주화대행진을 총지휘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001199쪽), 심재철이···항목을 생각해내어 제 의견을 물었고 제가 거기에 동조하자 심재철이 초안하였으며(001185쪽), 저는 농성을 장기화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습니다(001192쪽)”

유시민의 진술은 그대로 본 의원의 공소사실이 되어 재판목록에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본인의 공소사실의 90%는 유시민의 진술서가 입증취지 곧, 증거가 되었고, 그래서 판결문에서도 유시민의 이름이 증거의 요지 부분에 판시되어있다.

입증취지 공소사실(13은 본 의원 피고인 번호)
4.11. 김상진 추도식, 장례식 제13.1., 의 가
4.16. 및 17. 학생회장단 회의 “ 나
4.19. 기념식행사 및 시위사실 “ 나
5.1. 운영위원회 “ 다
5.2. 학생총회 시위사실 “ 라
5.3. 서울대 시위사실 “ 마
5.4. 문무대 입소환송식 제 13.2. 모 두
5.6. 학생총회 “ 가
5.11. 학생회장단회의 가
5.13. 문무대퇴소환영식 가
5.14. 및 15.의 가두시위사실 나
5.16. 학생총회사실

5월 1일자 알릴레오 방송은 39년 전 역사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젊은 세대에게는 유시민의 예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에 입각한 명확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거짓으로 우정을 포장하고 감성으로 정의를 가장했다.

2019. 5. 3.
국회의원 심 재 철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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