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폭도 아닌 홍콩인… 우릴 쏘지 마세요”

[김양균의 현장보고] 도전받는 ‘원 차이나’… 브로큰시티②

기사승인 2019-06-2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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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환 절대 반대(No China extradition)”, “폭력을 멈춰라. 우린 폭도가 아니다”, “발포하지 말라. 우리는 홍콩인이다”, “ACAB(경찰은 모두 머저리들)”, “홍콩은 우리 집이지만, 캐리(캐리 램 행정장관을 지칭)는 엄마가 아니다”, “오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뿐”, “나는 홍콩을 사랑한다”….

홍콩인들이 포스트잇과 대자보로 내어놓은 항의의 메시지 중 일부다. 특히 캐리 램 장관과 스테판 로우 경무처장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이들은 홍콩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 강경 진압을 결정한 당사자다. 머리에 뿔이 그려 넣거나 히틀러처럼 묘사한 것도 있었다. 친중파인 영화배우 청룽이 이번 사태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을 비꼰 그림은 정부 청사 기둥에 붙어 있었다. 

23일 홍콩섬 중심부인 센트럴은 오전부터 부산했다. 전날 찾아볼 수 없던 필리핀 가정부들은 이날 아침 일찍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을 상대로 싼 옷가지들을 파는 이들도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불과 1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홍콩 정부 청사와 입법회(의회)의 정경은,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이었다. 

홍콩 정부청사와 의회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유원지가 위치한 페리 선착장도 지척에 있어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몹시 붐빈다. 이날만은 달랐다. 너댓대의 취재 차량을 제외하면 인적이 드물었다. 현장을 지키는 시위대 관계자도 일부 있었지만, 적막한 분위기였다. 

입법회로 연결되는 계단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트잇과 고공농성을 하다 추락사한 량모씨를 기리고자 시민들이 놓아둔 시든 국화가 보였다. 이것은 수일 전 이곳에서 격렬한 저항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잠시 서서 촬영을 하고 있자니 닫힌 철문 너머에서 기자를 주시하는 날카로운 눈빛이 느껴졌다. 이날도 정부청사는 폐쇄된 상태였다. 

반면, 홍콩 경찰본부는 깨끗했다. 전날 시위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시위대가 해산하자 경찰은 즉각 정리에 들어간 것이다. 격렬했던 항의의 흔적은, 그러나 신문 1면에 담겼다. 경찰본부 담장은 갈고리 모양의 철 구조물이 빼곡히 세워져 있었고, CCTV는 담장 밖을 비추고 있었다.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발길을 돌리려다 경찰본부 앞 벤치에서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다. 헤어지기 전 동행한 현지 기자가 말했다. “범죄인 인도 법안은 외피다. 홍콩인의 중국 통제 거부는 20년간 지속돼 왔다. 남은 30년의 일국양제 기간은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오후의 습한 바람은 땀을 식혀주지 않았다. 동행은 여기까지였다. 땀이 찬 손으로 악수를 나누고 우린 헤어졌다. 한참을 걷다 돌아보니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필리핀 남녀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한편, 이날 오후 8시 홍콩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민간인권전선(The Civic Human Rights Front, 民間人權陣線)’은 입법회에서 ‘권력 학대에 대한 경찰의 책임’이란 집회를 열었다. 집회 개최 취지 중 일부를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공적 고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홍콩인들이 경찰에게 공격당했다. 홍콩의 기존 시스템(사법체계 등)과 국제 채널을 통해 경찰을 압박할 것이며, 국제 공동체가 이 사안에 주목하는 만큼, 홍콩 정부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 

홍콩=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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