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싶어 하면 욕해주세요”...거식증 예찬하는 新프로아나족

사망률 1위 정신질환 거식증, 질병인식 낮은데다 치료기반도 미약

기사승인 2019-06-2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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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아나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청소년입니다. 먹고 싶어 하면 욕해주세요.”
“뚱뚱해질 바엔 죽을래요. 목표는 **kg입니다.”
“한 달 안에 10키로 뺄 수 있는 방법 알려주세요. 건강 해쳐도 괜찮아요.”

#10대 청소년 A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다이어트 자극 사진이나 생활습관을 공유한다. 아주 적은 양의 음식만 섭취하는 다이어트를 함께 할 친구도 SNS에서 찾는다. 목표는 다이어트 자극 사진에 등장하는 뼈가 앙상한 모델의 모습. 마른 몸매가 되기 위해서라면 ‘거식증’도 괜찮다고 이야기 한다.

최근 10~20대 사이에서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을 동경하는 '프로아나' 바람이 불고 있다. '프로아나(pro-ana)'는 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을 의미하는 아나(anorexia)를 조합한 신조어다.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매를 동경하고, 이를 위해서라면 거식증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다.

거식증은 신체적·정신적 기능 손상을 유발하는 섭식장애의 한 종류로 장기간 심각할 정도로 음식을 거절하는 정신질환이다. 거식증 환자들에서는 음식이나 체중, 몸매를 강박적으로 조절하는 증상을 보이며, 종종 우울증과 불안, 폭식장애 등 다른 정신병리가 함께 나타난다.

거식증, 사망률 1위 정신질환

거식증을 옹호하는 ‘프로아나’족(族)은 과거 10여 년 전쯤 유행했다 수그러든 바 있다. 그러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다시 번지고 있는 것.

신(新) 프로아나족은 거식증을 옹호하는 글귀, 이미지 등 콘텐츠뿐만 아니라 마른 몸매를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감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공유·소통하는 것이 특징이다. 10대 청소년과 젊은 여성층이 주축이다.

단순한 또래문화나 다이어트 모임이라기에는 위험한 것이 문제다. 거식증은 정신과 질환 가운데 사망률 1위인 치명적 질환이다. 연구 결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955년 미국정신의학회지 보고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 10년 동안 사망할 확률(치사율)은 약 6%에 달한다. 정신과 단일 질환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수치다.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극단적인 체중 감량으로 인해 심각한 전신 쇠약이 발생해 신체 전체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살률도 높다. 거식증 환자에서 다른 정신질환(특히 우울증 같은 기분 장애)이 많이 동반되고, 이로 인해 사망자 5명 중 1명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거식증을 청소년들에서 가장 우선으로 치료해야 할 질환 중 하나로 꼽는다.

◇무작정 굶고, 먹토.죽음 부르는 다이어트

‘프로아나’족이라고 해서 모두 거식증 환자는 아니다. 거식증의 유병률은 대개 전체인구 1%정도로 보고된다. 체중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및 섭식과 관련한 이상행동을 보이면서 확연한 저체중이 나타날 때 거식증으로 진단을 내린다.

다만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많이 나타는 질병인 만큼 SNS나 또래문화를 통한 ‘거식증 선망’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굶기, 먹토(먹고 토하기),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운동하기 등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건강에 매우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금식을 하거나 극단적으로 식이를 제한할 경우 빈혈, 탈모, 피부가 거칠어지고 손발이 잘 깨지는 영양결핍성 증상이 나타나고,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나 감염성 질환에 취약하게 된다. 여성의 경우 월경불순이나 무월경, 골다공증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현실적인 감량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체중을 유지하기 어렵고, 결과도 좋지 않다. 건강한 다이어트에서 신체활동량을 늘이고 섭취열량을 줄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필수적 영양소를 줄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성준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도 “다이어트로 인한 심한 변비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초기 변비는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장기간 음식을 섭취하지 않을 경우 장운동 자체 능력이 떨어져 만성변비로 진행될 수 있다”며 “오랜 기간 금식이나 과도한 식이제한을 지속하는 것은 영양학 측면에서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극단의 다이어트는 뇌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준다. 김율리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모즐리회복센터 소장)은 “사춘기는 인생에서 두 번째로 뇌 성장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시기다.  뇌가 성장하는 시기에 영양공급이 안되면 성격적 문제나 강박장애 등 정신적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며 “또한 영양이 부족하게 뇌면 뇌가 위축되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고를 풍부하게 할 만한 에너지 공급이 안 되니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 치료기반 미약.사각지대 수두룩 

거식증은 치료가 어려운 정신과 질환 중 하나다. 사망률이 높지만, 치료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식증에 특화된 치료제도 드물다.

또 마른 몸매를 선호하고,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서는 거식증의 발병률이 높아지는 반면, 환자들의 질병인식이 낮아 빠른 치료로 이어지기가 쉽지않다. 거식증 증상임에도 단순한 다이어트로 여겨져 방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청소년에서 문제가 된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초등학생 거식증 환자가 진료실을 찾을 정도로 발병연령이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행히 거식증은 조기에 개입하면 다른 정신과 질병보다 치료 효과가 높게 나타난다. 청소년 환자의 경우  심각한 거식증을 앓더라도 기능손상이 거의 없는 회복도 가능하다.  

김율리 교수는 “정신질환 중에서 완전하게 회복되는 질환이 많지 않다. 회복되더라도 일부 기능손상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청소년기 거식증은 병을 앓기 이전 단계로 회복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도가 좋다”고 말했다. 거식증 등 섭식장애 치료는 대개 인지행동치료, 심리치료 중심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효과가 입증된 섭식장애 치료법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장이 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거식증 치료에 대한 보장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다. 청소년에서 효과가 인정된 가족치료의 경우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건강보험 수가 보장이 되지않아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 일부 상담센터 등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 가이드라인은 청소년 거식증 환자에 가족치료, 그리고 일부 약제의 효과를 인정하고  의료보장도 이뤄진다. 여성 환자에 골다공증 진단도 필수로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식증 치료에서 급여화된 치료법이 없다. 효과가 입증된 치료에 대해서도 급여 인정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식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는 질병이다. 유병기간이 길어질수록 같은 치료를 받더라도 효과가 줄고, 치료기간은 길어진다.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기능손상이 심한 만성 거식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치료 황금기인 청소년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어렵고 기능저하가 심한 만성 거식증 단계로 넘어간다. 오로지 먹는 것과 씨름하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되고, 전신의 문제도 동반돼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렵다. 이 환자들도 의료보호나 복지에서 소외된 상황”이라며 “만성화를 막기 위해서는 청소년기에 적절한 거식증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국제적으로 근거가 입증된 치료는 우리도 할 수 있게 국가차원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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