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이 눈물 참으며 낭독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편지

한지민이 눈물 참으며 낭독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편지

기사승인 2019-08-14 14: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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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지민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편지를 낭독했다.

한지민은 14일 서울 임정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란 제목의 편지를 낭독했다. 이 편지는 여성가족부가 일본군 위안부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유족들의 재확인을 받아 완성한 편지다.

한지민은 “엄마가 일본군 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어 “1942년. 그러니까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며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지민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애써 외면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다”며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하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고 낭독했다.

한지민이 눈물 참으며 낭독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편지

이어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다”며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다. 반드시 엄마의 못다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한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한다”고 마무리 지었다.

한지민은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이 불거지고 목소리가 떨리는 등 울컥한 모습을 보였다. 낭독을 듣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한지민은 위안부 피해자로 인권운동을 했던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한 27년간의 여정을 담은 영화 ‘김복동’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을 계기로 지정됐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외국에 알리기 위해 8월 14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지난해부터 기념식을 개최해왔다.


<다음은 한지민이 낭독한 ‘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 편지 전문>

엄마가 일본군 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942년. 그러니까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 다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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