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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정지우 감독 “‘유열의 음악앨범’은 주관적 내면에 관한 이야기”

정지우 감독 “‘유열의 음악앨범’은 주관적 내면에 관한 이야기”

이준범 기자입력 : 2019.08.29 07:00:00 | 수정 : 2019.09.06 11:26:51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정지우 감독만큼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영화감독이 있을까. 영화 ‘은교’, ‘4등’, ‘침묵’, ‘유열의 음악앨범’까지. 최근작 네 편만 봐도 같은 감독이 연출한 영화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매번 기대 이상의 수작을 만들어내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현실적인 세계관과 서정적인 정서는 정지우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다. 과장되거나 이야기 구조에 인물을 맞추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28일 개봉한 ‘유열의 음악앨범’ 역시 그렇다. 정지우 감독은 13년 만에 다시 연출한 멜로 영화에 현실적인 공기와 90년대 정서를 불어넣었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지우 감독은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서사의 규칙들이 지켜지는 쉬운 느낌의 시나리오는 아니었어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주로 미묘한 내면의 변화를 언급하는 글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어요. 영화에 두 주인공의 약속이 틀어지는 장면이 나와요. 그 다음에 사정을 설명하고 만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만나지 않죠. 그 순간은 사실 논리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등 주관적인 내면에 관련된 이야기죠. 전 이런 느낌이 참 좋지만, 영화로 만드는 과정을 상상해보면 난이도가 여러 방면에서 아주 높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현재 영화 산업의 환경이 이런 영화에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일반적인 관객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만들어지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제작사 무비락 김재중 대표님이 ‘영화화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대표님을 믿고 용기를 내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배우 김고은, 정해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정지우 감독의 독특한 디렉팅을 언급했다. 배우가 연기할 동선과 움직임, 대사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추상적인 표현을 주문하는 식이다. ‘은교’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인 김고은은 익숙하게 받아들였지만 처음 정 감독을 만난 배우들은 낯설어하기도 했다. 정지우 감독은 자신의 말이 배우의 움직임을 방해할까 조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기는 배우들이 하는 거잖아요. 제가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백만 번 있어도 제 맘대로 안 되거든요. 그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제 입장에선 굉장히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지금 이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을 하다보니까 어떤 때는 뜬구름 잡는 얘기도 하고 그래요. 배우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구체성을 띤 행동과 움직임에 대한 요구로 받아들일까봐 그래요. 연기는 제가 하는 게 아니거든요. 배우의 마음에 들어있는 감정과 동기가 중요한 거죠. 그 감정과 동기를 밖으로 표현하는 건 사람의 몸이 하는 거고 그건 사람마다 같을 수가 없어요. 혹시 제가 배우의 표현을 규정하거나 구체적으로 지시해서 움직임을 방해할까봐 늘 조심해요.”


‘유열의 음악앨범’은 제목처럼 긴 세월 방송되는 라디오 사연을 압축해서 담아낸 느낌의 영화다. 인물들의 이야기에 깔리는 배경음악도 인상적이다. 그룹 핑클의 ‘영원한 사랑’과 가수 루시드 폴의 ‘보이나요’, ‘오 사랑’, 그룹 콜드플레이의 ‘픽스 유’ 등 당시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다수의 명곡들이 관객들을 추억 속으로 잡아끈다. 정지우 감독 역시 선곡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 시기에 맞는 음악을 계속 들었어요. 감히 저희가 좋은 음악을 골랐다는 표현을 쓰긴 어려워요. 그보다는 곡의 가사와 영화의 이야기가 연동되는 상태여야 했죠. 그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결혼식 축가를 잘못 선정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얘기를 저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앞부분만 생각해서 골랐다가 뒷부분에 가면 축가야, 저주야 싶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는 얘기죠. 잘못하면 그런 오해를 살 수 있잖아요. 가사 전체가 이야기와 어떻게 조응하는가의 문제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팝송일 경우 가사가 안 들리니까 유리한 면이 있지만, 전 가요를 많이 쓰고 싶었어요. 90년대 문화가 얼마나 번쩍거렸는지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곡들을 담고 싶었어요. 또 가사와 장면이 너무 설명하는 느낌이면 배우들이 안 보여서 문제였어요. 그 중간의 적절한 선곡을 하는 데 제일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유열의 음악앨범’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드문 감성 멜로 장르 영화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너의 결혼식’을 제외하면 흥행에 성공한 멜로 영화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7년 전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 ‘늑대소년’의 흥행 속도와 비교될 정도다. 정지우 감독은 멜로 영화의 가뭄을 아쉬워하며, 관객들이 멜로 영화에도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최근 관객들은 세고 강력한 자극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더 자극인 것만 살아남는 분위기죠. 여러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우리가 공감의 영역이 자꾸 줄어드는 힘든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보면서 기뻐하고 눈물 흘리는 공감의 순간이 점점 귀해지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멜로드라마, 가족영화, 휴먼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통해 공감 세포가 다시 커지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영화를 보고나면 마음이 훈훈해지거든요. 다양한 맛의 음식을 먹고 음미하는 것이 곧 건강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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