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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1년-용눈이오름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_여덟 번째

기자입력 : 2019.09.07 00:00:00 | 수정 : 2019.09.17 09:19:24

용눈이오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28)은 해발 248미터, 실제 높이는 88미터 정도의 낮은 오름이지만 그 위의 능선을 걷다 보면 한라산 방향으로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을 비롯해 수많은 오름들이 보인다.


  풋귤청을 만들었다. 제주에서의 새로운 생활경험이다. 풋귤은 2016년부터 유통이 허용되었으니 아마도 그 이전에는 이곳 주민들 사이에 알음알음으로 풋귤청을 만들었을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 입장에서는 따 낼 수밖에 없는 덜 익은 과일이지만 그 한 알 한 알이 아깝고 소중했을 터이니 그냥 버리지는 않았을 듯하다. 

용눈이오름은 오름이 마치 용들이 놀고 있는 모양으로 생겨서 ‘용논이’, 또는 분화구가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이어서 ‘용눈이’오름이라고 한다.


  8월 하순부터 며칠 동안만 구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8월 20일 세화 오일장에 가서 풋귤 5kg을 샀다. 깨끗이 씻고 물기를 말린 다음 얇게 썰어 놓으니 보기에 좋았다. 껍질은 짙은 초록색인데 과육은 아직 맑다. 더러 조금 일찍 익어가는 귤은 노란 색을 띠기 시작하며 침샘을 자극한다. 미리 준비한 커다란 유리병에 거의 비슷한 무게의 설탕과 함께 버무려 넣고 밀봉해 두었더니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설탕이 다 녹았다. 하루 더 기다려 냉장고에 넣었다. 

이 설치물은 교래자연휴양림의 산책길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노루와 같은 산짐승, 또는 방목된 말이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고안된 설치물로 보인다. ㄷ자 형태의 저곳을 통과하기가 조금은 성가실 정도로 통로가 좁다.


  찬 물에 섞어 마셔보니 귤의 신맛과 단맛에 연한 쓴맛도 느껴지고 귤향과 귤껍질향도 풍긴다.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면 맛이 더 깊어진다고 한다. 가을 숲길과 오름 걸을 때 한 모금씩 마시기 좋은 음료가 익고 있다. 9월엔 오름을 걷든 숲길을 걷든 보온병에 얼음과 함께 풋귤 음료를 담아 갈 생각이다. 아직 따가운 햇살을 견디며 걷다가 마시는 이 특별한 음료 한 모금이 새로운 힘을 줄 듯하다. 제주의 가을 길이 기다려진다.

용눈이오름의 능선 가까이 오르다 보니 아래쪽에 아기 오름이 붙어 있다. 아주 작은 오름이지만 동그란 분화구와 주변부의 능선까지 완벽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 용눈이오름의 등에 업혀 있으니 ‘용눈이애기오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을 만큼 작고 예쁜 오름이다.


  1990년 여름은 가을에 대한 기대 속에서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형체도 무게도 알 수 없는 짐을 끌어안고 나는 직업 없이 여름을 견디고 있었다. 8월 중순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조간과 석간신문 4 종류를 배달받아 구인광고를 살폈다. 지난 2년 동안 영어로 발행되는 월간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어느 매체든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눈이오름 능선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불규칙한 모양의 분화구가 눈에 들어온다. 분화구가 하나였다면 동그랗거나 한쪽이 터진 말굽 모양이었을 것이다. 여긴 3개의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출한 것으로 보인다. 분화구 안으로 사람이 건너간 흔적이 있지만 지금은 통행금지 표지가 설치되어 있다. 능선에 올라서도 이렇다 할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고 잔디와 억새가 용눈이오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사람을 뽑는 다는 크고 작은 매체와의 접촉이 반복되면서 내 경력이 취업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번듯한 직장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내 또래 사람들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따라가겠다는 욕심도 버렸다. 어디에서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할 곳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용눈이오름의 주변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름들이 도열해 있다. 시야가 좋으면 한라산의 백록담 봉우리도 보인다.


  눈에 띄는 크기의 구인광고부터 한 줄짜리 광고까지 관심을 가질만한 직종에 대해서는 그냥 넘기지 않고 전화를 했다. 33살의 구직자에게 기회를 줄만 한 곳은 많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기회라도 버릴 수는 없으니 서류를 만들어 보내고 결과를 확인하고, 실망하며 또 구인광고를 읽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해 안에 취업을 하지 못한다면 내 앞날이 얼마나 암울하게 펼쳐질지 알고 있으므로 하루하루 조간신문과 석간신문에서 찾아내는 작은 구인광고라도 내게는 절실한 기회일 수 있었다.

간간이 빗방울이 듣는 날씨였지만 용눈이오름의 능선에 서고 보니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9월 중순에 접어든 어느 날 정말 한 줄짜리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편집유경험자구함’이라는 문구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담당자와 전화 통화 후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고 보니 우편으로 발송해서는 늦을 듯했다. 다음날 직접 접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퍼붓고 있었다. 머뭇거리는 동안 경인선 전철이 침수되어 운행을 일시 중단한다는 뉴스가 들렸다. 담당자에게 전화해 사정을 이야기 하니 접수 마감일을 늦출 수는 없다고 한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비를 바라보다가, 뉴스를 기다리다가 신문의 구인광고를 읽다가 그날 하루가 지나갔다. 내게 절실한 취업 기회 하나가 비와 함께 그렇게 사라졌다.

용눈이오름은 밖에든 안에든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며 억새풀과 잔디로 덮여 있다. 능선엔 바위도 거의 보이지 않고 흙은 점성이 거의 없어 쉽게 훼손될 수 있는 오름이다. 능선 보호를 위해 산책로에 야자매트를 깔아 두는 등 보호 조치를 해 두었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보니 벌써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아직 어린 곰솔이 능선 가까이에서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야 숲의 모양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함덕을 출발하는데 차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 듣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지역에 따라 날씨 변화가 심하니 용눈이오름엔 비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용눈이오름은 아래에서부터 어디 한 곳 모나지 않은 능선이 몇 굽이나 끝없이 겹쳐지고 펼쳐지며 올라가 있었다. 오름 아래 넓은 초지엔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올려다보니 저 멀리 오름 능선 위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려오는 사람들 중 더러는 우산을 쓰고 더러는 비옷을 입고 있었다.    

야고는 억새풀 뿌리와 함께 살아가는 기생식물이다. 야고는 스스로는 전혀 양분을 만들지 못하는 완전 기생식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억새뿌리가 있어야 꽃을 피우고 번식도 가능하다. 야고의 줄기는 땅 위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 꽃이 담뱃대를 닮아서 '담배더부살이'라고도 하며 '사탕수수겨우살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지만, 최근 서울 상암동의 하늘공원에서도 관찰되고 있는데 제주도의 억새를 옮겨 심을 때 그 뿌리와 함께 야고도 옮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빗줄기가 조금 더 잦아졌다. 주차장 입구에 컨테이너를 개조한 작은 상점을 살폈다. 아내는 말린 고사리에 관심을 두고 상점 여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 용눈이오름에서 지난 봄 꺾어 말린 고사리라고 한다.

잔대는 도라지와 비슷한 모양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나 도라지처럼 쓰고 아린 맛은 없다. 용눈이오름에서는 잔대꽃이 다른 오름보다는 많이 보였다. 몸에 좋다고 보이는 족족 캐가지는 말아야 하겠다. 몸에 좋은 것이 널린 세상이니 굳이 풀뿌리까지 캐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봄에 아무나 고사리 꺾을 수 있어요?”
  “그럼요. 주인이 따로 없으니까요. 고사리 꺾어 말리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꺾어 말려본 사람만 알아요. 친한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은 맘이 들지 않는다니까요.”
  “그렇게 힘들어요?”
  “고생한 것에 비하면 싸게 파는 거죠.”

송장풀은 익모초와 많이 닮은 풀이다. 며느리밑씻개나 큰개불알꽃 만큼이나 거북스러운 송장풀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이름이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도 거의 보이지 않으니 광복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송장풀이 옛 풍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신성한 꽃으로 여기고 있는데 광복 후 우리말로 된 식물 책을 제작하면서 일본 식민지 정책에 대한 분풀이로 송장풀이란 혐오스러운 이름을 붙였다는 말이 있다.


  고사리 한 봉을 사고 나니 비가 잦아들었다. 배낭에 비옷을 챙겨 넣고 용눈이오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길 양쪽으로 파이프 철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말들이 방목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설치해 둔 듯했다. 

이질풀은 과거 이질이나 설사 치료에 이용했던 풀이다. 이질풀과 비슷한 쥐손이풀이 있는데 꽃모양까지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꽃을 보면 이질풀의 꽃잎에는 잎맥이 세로로 5줄, 쥐손이풀의 꽃잎에는 3줄의 세로 잎맥이 있어 이를 기준으로 (이오쥐삼) 두 꽃을 구별하기도 한다.


  철책 안 방목지에 억새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길 가 억새풀을 살피려 허리를 숙이는데 꽃 한 송이가 내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갈라지지 않은 원통형 꽃잎 끝으로 연한 분홍이 감돌았다. 야고였다. 며칠 전 산굼부리를 걷다가 억새 틈새에서 처음 본 꽃이다. 제주에 와서 처음 보았고 그리 흔하지도 않은데 이 길에서는 몇 걸음 옮기면 하나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묘하게도 꼭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는 길가의 억새포기에서 보인다. 

무릇꽃은 8월 말부터 제주의 오름에 지천으로 피어난다. 과거 배고팠던 시절엔 쪽파처럼 생긴 땅 속의 비늘줄기와 어린잎을 엿처럼 조려서 먹고 뿌리를 구충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질풀과 송장풀 그리고 잔대꽃도 이곳에선 흔하게 보였다. 무릇도 철을 알고 분홍색 꽃을 피워 올렸고 가끔은 철 늦은 찔레꽃도 한 송이 씩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용눈이오름 능선에 오르기까지 크지도 않아 어지간히 관심을 두지 않고서는 눈에 띄지 않는 꽃들과 눈 맞추느라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풀과 꽃을 살피고 그 향을 느끼며 걷는 시간이 즐거웠다.

철지나서 핀 제주찔레꽃도 용눈이오름 능선에서 가끔 보인다. 제주찔레는 육지의 찔레처럼 나무줄기가 곧추 자라지 않고 바위 위나 땅 위를 덮듯이 자라며 잎은 작고 꽃은 훨씬 크다.


  오름 능선에 올라서고 보니 용눈이오름은 조금 복잡하게 생겼다. 대부분의 오름이 가운데에 둥글거나 말굽형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용눈이오름은 분화구가 세 개나 된다. 분화구 주변의 능선도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다. 오르다보면 내려가고 다시 올라간다. 오름엔 나무가 거의 없고 온통 풀과 억새로 덮여 있다. 아직 어린 곰솔 몇 그루가 힘차게 자라고 있을 뿐이니 숲을 이루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 보인다. 

용눈이오름엔 고사리가 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이 자라고 있었다. 주차장의 상점 아주머니는 고사리를 꺾어서 삶아 말려본 사람은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 형제간에도 나누어 주기 아까워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능선에 오르면서 더 바빠졌다. 억새와 잡풀만 있을 줄 알았던 능선엔 나와 눈 맞추기를 기다리는 작은 꽃이 더 많았다. 눈을 들어 조금 멀리 보면 또 다른 오름들이 손짓을 한다. 나무도 거의 없어 민둥산처럼 보여 참으로 단조롭게 생긴 듯 보이는 용눈이오름은 그 능선에 오를 때까지, 또 능선에 올라선 뒤에도 서 있는 곳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든 제주에 와서 오름을 보려거든 제일 먼저 용눈이오름에 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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