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 올려야 하나” 방사능 공포 덮친 추석 차례상

기사승인 2019-09-12 0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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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부산입니다. 매번 명절에 친정 가면 회는 꼭 먹고 왔는데 이제는 좀 꺼려집니다. 아이들이 생선구이도 참 좋아하는데 이제는 마음 놓고 못 먹일 것 같아요”

#”추석 선물로 김과 명란을 함께 건조시킨 ‘명란김’이 들어왔어요. 명란이 러시아산이라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러시아 수입식품에서 세슘이 가장 많이 검출됐다고 하네요. 이제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 수입 해산물도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추석을 앞두고 해산물 소비에 대한 소비자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과 가풍에 따라 종류나 가짓수가 다르긴 하지만 명태, 조기, 문어, 동태전 등 해산물은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온다. 평소 수산물 섭취를 자제해왔던 소비자들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특히 걱정이 많은 이들은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20~40대 여성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공간 ‘맘카페’에는 “둘째는 5살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생선을 먹이지 않았다” “영향 불균형도 문제지만 방사능이 걱정돼서 수산물을 적게 먹인다”는 이야기가 잇따르고 있다.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젊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기성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이 걱정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학부모는 “명절이 무섭다. 시부모님들이 아이에게 각종 생선에 김에 미역에 잔뜩 줄 때마다 속이 터진다”고 토로했다. “방사능 피폭 위험 때문에 일본산 제품을 먹이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른들은 아이를 유난스럽게 키운다고만 생각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민 불안은 최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발생한 방사능 오염수 100만t을 바다에 방류하려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촉발됐다. 해양수산부는 일본 정부에 방사능 오염수 관련 정보 공개를 요구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한 상태다. 수산물 수입금지 일본 8개현에서 생산한 가공식품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됐다. 

원산지마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소비자들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국내산으로 둔갑한 일본산 해산물들이 잇따라 적발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거나 일본산을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사례는 연평균 70건에 달한다. “수산물 올려야 하나” 방사능 공포 덮친 추석 차례상

또한 일본산 수산물을 실은 활어차들이 국내에 들어온 뒤, 국내산으로 둔갑해 유통된다는 이슈가 논란이 됐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글은 지난달 25일 등록돼 20만명을 돌파했다. 일본 후쿠시마 인근 바닷물 128만톤이 한국 해역에 방류됐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추석을 5일여 앞둔 지난 6일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은 한산했다. 매대에 놓인 수산물에는 국내산, 러시아산, 중국산이 흔하게 눈에 들어왔지만 일본산은 드물었다. 상인들은 “일본 방사능 오염수 여파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고 말했다. 30년간 생선을 판매해왔다는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은 “보면 모르겠나. 손님들이 확실히 줄었다”면서 “방사능 오염수뿐 아니라 경기가 안좋고 차례상을 간소화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 요인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종사자는 “하도 불안해하니까 일본산 수산물 자체를 많이 들여오지 않는다”면서 “요즘에는 단속이 강화돼서 원산지 가지고 못 속인다”고 말했다.

이날 동태포를 구입했다는 영등포구 주민 이미영(33·여)씨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원산지를 믿는 수밖에 없다”며 “동태포도 원산지가 러시아라는 것을 확인하고 샀지만 불안한 것은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에게 되도록 수산물을 주고 싶지 않지만 멸치 같은 경우 성장에 필수적이라 고민”이라고 했다.

수협노량진수산 경영기획부 관계자는 “방사능 우려에 따른 여파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시에서 방사능 관련해서 수산물을 샘플로 가져가 전수조사하는 등 검사가 강화됐다”면서 “검사 결과 수산물보다는 오히려 차가버섯(러시아), 능이버섯(국내) 등 농산물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일본산 수입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강화했다. 또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은 수입수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행위에 대해 이전보다 강화된 특별 단속에 돌입했다. 경북도, 경기도, 서울시 등 지자체도 수산물 안전관리 강화에 나섰다.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활동가는 “활어차 논란에 대해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대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허술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원산지 관리를 철저히 하고 정보 공개가 제대로 이뤄져야지만 시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일본 방사능 문제에 대해 식품은 식약처, 해수 유출은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일본 공산품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여러 부처가 나눠서 대응하고 있는데 이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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