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으로 걸려온 전화가 사기?…진화하는 보이스피싱

기사승인 2019-09-09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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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A씨는 얼마전부터 스팸‧광고성 전화가 수시로 걸려오자 ‘스팸차단’ 앱을 설치했다. ‘070’으로 걸려오는 전화 중 의심스러운 번호들은 앱을 통해 광고성이거나 스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저장되지 않은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자 의심없이 전화를 받고선 깜짝 놀랐다. 자신을 검사라고 사칭하며 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다고 말한 것. 보이스피싱이라는 걸 알아채고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 찾아보니 ‘02-112’로 걸려온 전화에 당연히 경찰청인줄 알고 받았다가 피해를 입었다는 글을 발견했다. 

과거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어눌한 말투를 쓰는 게 특징이라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보이스피싱 방법도 지능화되어 ‘스팸 차단 앱’으로도 걸러지지 않는 방법이 확산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명절 안부 인사나 택배 배송확인, 선물 교환권을 가장하는 일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이용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전화는 웬만해선 받지 않는 문화가 확산되자 발신번호를 ‘010-’이나 ‘02-’로 변작시켜 수신자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보이스피싱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전화 뿐 아니라 택배 배송 확인 등을 사칭해 문자 속 인터넷주소(URL) 클릭을 유도하는 스미싱도 발신번호 변작이 성행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약 4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김종표 스팸정책팀장은 “발신번호 변작 비중은 음성전화가 60~70%, 인터넷발송문자가 20~30%로 아직까지 전화가 훨씬 많다”며 “최근엔 은행직원을 사칭해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송금을 유도하는 등 보이스피싱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규제 사각지대인 '별정통신사' 이용해 발신번호 변경…단속 강화해야한다는 지적도 

물론 발신번호를 변경하는 행위가 무조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공공기관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나 업무를 수행하거나, 특수번호(112‧119 등)에 연결된 전화의 발신번호를 표시하는 경우 등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예를 들어 OO홈쇼핑 콜센터 직원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 때 고객은 그 콜센터 직원의 내선번호가 뜨지 않고 OO홈쇼핑 대표번호인 ‘1588-XXXX' 식으로 뜨게 된다. 

그렇다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어떻게 허용되지 않은 방식으로 발신번호를 변경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일까. 이들은 주로 규제 사각지대인 ‘별정통신사’를 노린다. 별정통신사는 알뜰폰 포함 회선설비를 직접 보유하고 있지 않아 기간통신사에 회선을 빌려쓰는 업체들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기간통신사(SKT 등 회선설비 보유한 업체)에서 시내 전화번호를 수백 개 개통한다. ‘착신전용 서비스’ 전화번호일 경우 갯수 제한 없이 발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이후 발신번호를 대표번호 등으로 변경신청한 후 바뀐 번호로 별정통신사에게 가서 오토콜 전화발신시스템에 발신번호를 입력한다. 이후 기간통신사의 개통된 전화회선을 해지한다. 결과적으로 해지된 전화번호가 발신번호 변경이 되어 전화‧메시지를 발송하는 것이다.

김종표 팀장은 “연간 200여개 전기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나가 살펴보니 몇 년 전처럼 별정통신사들이 맘먹고 보이스피싱 조직원들과 손을 잡는 경우는 없었지만, 일부 별정통신사에서 통신서비스 이용증명원의 유효성을 확인하지 않고 명의가 동일하다거나 하는 간단한 확인만 거치고 발신번호를 변경해준다”고 설명했다. ‘010’으로 걸려온 전화가 사기?…진화하는 보이스피싱

현재도 불법으로 발신번호를 변작하거나 변직 서비스를 제공한 사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이처럼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번호가 국내 번호로 변작되면서 현재 검찰 등 공공기관의 전화번호로 조작하는 경우 미리 기간통신사업자 시스템에 등록해 변작을 사전 차단하는 기술을 적용했다. 하지만 사전 차단이 어렵지만 규제가 느슨한 별정통신사를 더 엄격하게 단속·제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KISA 역시 연간 전기통신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실시하며 변작 예방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이행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경우 발신번호 변작이 의심되는 전화‧문자를 수신할 경우 보호나라 ‘발신번호 거짓표시’ 페이지에 접수하면 신고접수를 받아 원 발신지 확인 및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개인 전화번호가 도용되지 않도록 이통사 부가서비스를 통해 차단 서비스를 가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KISA 관계자는 “변작예방을 위해서는 KISA힘만으로는 부족해, 경찰·금감원과 협력해 예방활동 강화해나갈 예정”이라며 “현재 KISA가 그동안 수집한 DB를 바탕으로 타 기관과 협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안나 기자 la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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