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禍) 부르는 명절 술자리 ‘과음 주의’

명절에는 평소보다 스트레스 과중…술김에 감정 격해지기 쉬워

기사승인 2019-09-13 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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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禍) 부르는 명절 술자리 ‘과음 주의’

# 지난 추석, 경기도 부천에서 한 50대 가장이 가족과 함께 술을 마시며 식사를 하던 중 말다툼을 벌이다 아들의 머리를 둔기로 때리고 흉기로 복부를 찌른 뒤 이를 말리던 아내의 머리까지 둔기로 때려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을 홀대해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 설 연휴,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인 명절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술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새해 인사부터 결혼, 취업, 건강, 재산, 부모님 부양 문제 등 광범위한 주제를 넘나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음주로 시작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화를 부를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음주상태에서 발생한 단순폭력 범죄율이 61.5%인데 비해 가정폭력은 73.1%로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이외에도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음주와 가정폭력이 상관관계가 높다는 사실이 입증된 바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인화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들어 가정폭력 사건은 2016년 4만5619건에서 2017년 3만8583건으로 하락했지만 2018년 다시 증가해 4만1905건이 발생했다. 올해도 6월까지 2만1199건이 발생해 이미 작년 절반 수준을 넘어섰다.

특히 명절에는 만나기 힘든 친인척들까지 만나다 보니 갈등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등 모든 가사노동을 여전히 여자들이 전담하는 차별적 관행, 시댁 또는 처가댁의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친인척과 연관된 문제 등을 이야기 하다 과음을 하게 되면 폭력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명절 연휴동안 가정폭력은 평소보다 45% 가까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이무형 원장은 “명절에는 음식준비, 손님맞이, 장시간 운전, 늘어난 경제적 지출 등으로 인해 평소보다 스트레스가 과중된 상태”라며 “이때 술자리에서 서로의 근황을 묻는다는 핑계로 취업, 결혼, 임신 등 개인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문제를 언급하다보면 술김에 갈등으로 치닫기 쉬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한 기업에서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53.9%)이 설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명절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술을 마실 경우 부정적 감정에 빠지기 쉽다. 이무형 원장은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감정 조절과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을 억제한다”며 “이로 인해 충동성이 증가하고 공격성이 통제되지 않아 평소에는 참고 넘어갈 수 있던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느껴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적당한 술은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과음을 하게 되면 감정이 격해져 스트레스나 묵은 감정이 폭발할 수 있다. 특히 경기 침체와 취업난으로 각자의 어려움이 있는 시기인 만큼 걱정이나 충고라는 명목으로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배려가 필요하다”며 “심리적으로 가까운 가족일수록 다툼이 쉽게 일어나게 되는데 갈등이 심화되면 가족 간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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