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정유미 “‘82년생 김지영’은 희망 다룬 영화… 잘 전달됐으면 해요”

기사승인 2019-10-18 16: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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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걱정, 불안.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가만히 서 있기 힘든 영화다. 영화 속에선 김지영 씨와 가족들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영화 밖에선 작품의 상징적 의미를 두고 쉼 없이 흔든다. 그 중심에 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연기한 타이틀롤 김지영 역의 배우 정유미의 마음은 어땠을까.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정유미는 단단했다. 타이틀롤을 제안받은 순간부터 시사회를 마치고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허리와 목을 꼿꼿이 펴고 흔들림 없는 표정과 말투로 전했다. 영화 속 김지영씨와는 정반대의 태도로 정유미는 김지영 씨가 됐다. 정유미는 그 공을 배우 출신인 김도영 감독에게 돌렸다.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고 싶어 하시는지 듣고 ‘내가 읽은 것과 다르지 않구나’ 하고 느꼈어요.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고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씀이었죠.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아도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고, 감독님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엄청나게 생기더라고요. 연기할 때는 감정 표현에 있어선 감독님과 이미 얘기가 끝난 상태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없었어요. 대신 작은 기술적인 면에서 배우 선배님이자 연기 선생님이셨다는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제가 말할 때 눈썹을 왔다 갔다 움직일 때가 있나 보더라고요.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짚어주시는 정도였어요.”

정유미는 영화를 찍으면서 김지영에게 몰입해 슬픔이나 서러움을 느끼진 않았다고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자신의 감정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매 장면 집중해서 찍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82년생 김지영’은 정유미 스스로를 반성하게 했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특히 많이 했다고 한다.

“저 개인적으로 많이 반성한 영화예요. 제가 엄마를 얼마나 위로했나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러워요. 그래서 부모님께 이 영화를 보여드리기 미안한 마음도 커요. 이 역할을 내가 연기하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배우들이 다 경험하고 공감한 것만 연기하는 건 아닌데 싶기도 했죠. 엄마에게 이런 부분이 있었겠구나 생각하는 저를 보게 되는 순간도 있었어요. 무심한 딸이지만 멀리서나마 조금이라도 얘기를 건네드리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지금 당장 바뀌면 엄마가 이상하게 받아들이실 것 같아서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영화를 보시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해요.”

거꾸로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에서 어린아이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촬영을 위해 아이에게 모든 걸 맞춰야 했다. 역할 이름도 바꾸고, 아이의 낮잠 시간에 촬영을 맞추기도 했다.

[쿠키인터뷰] 정유미 “‘82년생 김지영’은 희망 다룬 영화… 잘 전달됐으면 해요”

“원작 소설에는 아이의 이름이 정지원이에요. 그런데 촬영 현장에서 ‘지원아’라고 부르면 보질 않아서 ‘아영’이라고 역할 이름을 바꿨어요. 실제 이름이 아영이거든요. 가족들이 같이 잠을 자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그것도 아이한테 맞춘 거예요. 촬영 스케줄표를 아이가 평소에 낮잠 자는 시간에 맞춰서 짰어요.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재우시고 촬영 세팅을 다 해놓으면 누워있는 아이 옆으로 저와 공유 씨가 조용히 들어가서 찍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면서도 그때 상황이 생각나서 재밌었어요.”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하던 정유미도 작품 외적인 이야기엔 조심스러워졌다. 김지영과 같은 상태의 남자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는 말과 우리 모두의 얘기라고 생각했다는 정도로 말을 아꼈다. 마지막으로 정유미는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전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를 찍을 때는 희망이 있으면 좋겠고, 그게 영화라는 매체가 해줘야 하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도 그런 일을 하는 수많은 영화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지금인 것 같아요. 관객분들이 오랜만에 영화관에 오셔서 쉬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담담하게 영화를 보시면서 다양한 감정들이 일어나면 일어나는대로 받아들이시면 어떨까 해요. 그렇게 내 주변도 보이고 나도 보이는 시간이 되길 바라요.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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