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화공의 절규, 내년에도 몽환일까

기사승인 2019-11-0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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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제화공의 절규, 내년에도 몽환일까“내년에는 제발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지난 9월5일 국회에서는 한 제화공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제화공으로 산 40년 세월 동안 가족과 따뜻한 밥 한 끼 먹기 어려웠다던 정모씨. 구두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살림살이에 보태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개수임금제로 1분1초를 아쉽게 살아온 정씨와 서울 성수동 일대 제화공들. 이들은 최근 손에서 구두를 놓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40년 구두 장인의 일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지난 23일 방문한 한 제화공장 제화공들은 합판에 본드를 덕지덕지 발라 만든 간이 의자에 몸을 구겨 넣어 작업 중이었다. 이들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4시간. 점심시간은 사치다. 부랴부랴 점심을 해치우고 커피믹스 한 잔 하는 20분이 휴식의 전부다. 주 52시간 근무라는 제도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제화공도 법원이 인정한 근로자 아닌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지난해 대법원은 제화공을 근로자로 인정했지만, 대다수의 제화공은 소사장으로 등록돼 있다. 원청과 하청업체는 업계 관행이라는 이유로 소사장 등록을 강요했다. 이같은 수법으로 원청과 하청업체는 제화공들의 4대 보험 부담을 덜었다. 소사장 등록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화공의 일거리가 줄어들 결과는 물 보듯 뻔하다. 제화공에게 ‘8시간 근무’ ‘퇴직금’ 등의 단어는 생경할 지경이다.

노동계는 유통수수료에서 대안을 찾았다. 홈쇼핑·백화점에서 떼 가는 38%의 유통수수료를 3%만 낮추자는 것. 유통수수료를 인하해 제화 노동자 4대 보험 지원 등에 지원하자는 의견이다. 다만 백화점, 홈쇼핑 등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시장경제에서 백화점, 홈쇼핑 사에게 배려만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제화업계 상생을 위해 다함께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 지난 9월 ‘불공정 유통 수수료 문제 해결과 제화업계의 상생발전을 위한 토론회’(토론회)에서 김남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은 “다단계 유통구조 상 대형유통점, 원청, 하청, 제화 노동자 등 4주체가 모여 합의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돼야 한다”며 “유통수수료 인하로 상생기금을 마련해 제화공의 노동환경 개선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통로를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같은 말을 남겼다. 그간 40여년간 고됨으로 흘린 제화공의 눈물은 아직도 마를 날이 없다. “우리가 안 하면 또 누가 한데?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일 안하려고 해”(송달호·58세·제화공 42년 경력) 힘든 상황에서도 국내 제화업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1등이다. 내년에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들. 2019년도 앞으로 두달여 남았다. 이들의 바람은 이뤄질까.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신민경 기자 smk503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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