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은 시민을 사람으로 안 본다”

[김양균의 현장보고] 도전받는 ‘원 차이나’… 브로큰시티③

기사승인 2019-11-13 0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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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태가 급변하고 있다. 

대학은 임시 휴교령에 돌입했고, 지하철역은 폐쇄되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 피해자는 중태에 빠졌다.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시위자가 추락사하는 끔찍한 사고도 있었다. 지난 3월부터 범죄인의 중국 송환 반대(반송중) 운동은 현재 경찰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권력의 잔혹한 폭력에 홍콩 전역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를 ‘바퀴벌레’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이런 행태는 과거 르완다 학살에서도 발견된 것이죠.” 

홍콩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민간인권전선(The Civic Human Rights Front, 民間人權陣線) 얀 호 라이 부의장의 말이다. 11일 방한한 그는 경찰이 곤봉, 최루탄, 고무탄, 실탄 등으로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선 발언에 대해 얀 호 라이 부의장은 “시위대를 적으로 간주해 복수하고 있으며 시위 군중을 ‘비인간화’해 증오를 발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성폭력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홍콩 북쪽 등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감옥에 수감됐던 이들을 중심으로 성폭력 피해 증언이 나오고 있다. 관련해 16세 소녀가 집단성폭력을 당해 낙태를 했다는 소문이나 남성도 성적 침해를 당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얀 호 라이 부의장은 “경찰은 시위여성을 향해 ‘창녀’라고 협박해 겁에 질린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는 홍콩 공권력의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홍콩 정부는 경찰에게 무제한적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홍콩 기본법에 따르면 3명 이상만 모여도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불법 집회로 간주, 연행 및 구금이 가능하다. 복면금지법 등 긴급법에 대한 불만도 많다. “정작 경찰은 복면을 쓰고 경찰 번호를 떼버리고 있어요. 성폭력 등 경찰에 의한 폭력에 대해 독립조사위원회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죠.” 

민간인권전선은 유엔을 비롯해 미국, 영국 등지에서 경찰 폭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지를 촉구하고 있다. 유엔은 사태를 엄중하고 보고 있지만, 영미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사안을 경찰권의 문제로 간주할 뿐, 홍콩 민주화와 결부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권력의 폭력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지 한국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겁니다. 홍콩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경찰 폭력 반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 강경진압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이중 3개 사항이 경찰 폭력과 관련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홍콩인들이 경찰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 현재까지의 홍콩 사태

홍콩인은 현 저항을 ‘역권운동’, 즉 권력을 거스르는 운동으로 부른다. 이는 우리나라의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닮았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인의 첫 저항은 2003년 국가안전법 제정 시도였다. 법안에는 국가 전복 시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반환 당시 중국 정부는 홍콩 기본법 안에 이런 법 제정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포함시켰고, 이것이 실제가 될 상황이 되자 홍콩인 5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민심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친중파 의원들마저 부담을 느껴 입법 취소에 동의했다. 홍콩인들이 이처럼 반발한 이유는 국가안전법이 표현, 종교,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컸기 때문이었다. 반대운동에는 노동조합, 변호사, 언론계, 종교계(주로 가톨릭)도 가세했다. 이때의 경험은 홍콩 시민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당시 상황에 대해 얀 호 라이 부의장은 “다수 시민 참여가 정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현재 시위 참여자 중에는 이때의 집회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 국가안전법 반대 투쟁에 앞장 선 단체가 바로 민간인권전선이다. 이 단체는 단일 시민사회단체가 아닌, 홍콩내 48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연합회다. 홍콩 시민사회의 응집된 결속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거의 처음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홍콩 시민운동은 2002년과 2003년 전후로 나뉜다. 홍콩인들은 투쟁의 방법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그것을 차용,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 홍콩에서 벌어진 우리 농민들의 투쟁이다.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반대코자 홍콩에 간 농민들은 삼보일배 등 처절한 저항을 몸으로 보여줬다. 이는 홍콩 시민사회에 작지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이를 차용해 홍콩인들은 2010년 베이징-홍콩간 고속철도 건설시 홍콩 북쪽 마을 철거 반대 운동 과정에서 삼보일배 및 입법회(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 포위 등을 폈다. 

2012년 우산혁명부터 청년들이 시민운동 전면에 나섰다. 특히 학생들의 참여가 높았는데, 조슈아 웡도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앞서 조슈아 웡은 ‘국민교육’이란 이름의 중국식 민족교육 반대 투쟁을 이끌며 주목을 받은 인물이었다. 야당 의원들을 비롯해 홍콩 행정수반 직선제 요구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79일 동안 주요도로를 점거하는 투쟁이 이어졌고, 의료진 등이 자발적으로 시위대 부상을 치료하는 등 자발적인 봉사활동도 늘었다. 그러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아댄 것도 이때부터다.  아울러 중국 정부는 홍콩 젊은이들이 베이징의 이념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우산혁명은 미완에 그친 시민운동으로 기록된다. 베이징이 홍콩의 선거에 손을 대려던 시도는 좌절시켰지만, 시위대 내부 갈등 등은 투쟁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후 올 초까지 시민운동은 활력을 잃고 만다. 얀 호 라이 부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때를 틈타 정부는 야당 의원 자격박탈, 정당 해산, 시민운동 지도자의 수감, 외신 보도 방해 등을 일삼았습니다.”

“홍콩 경찰은 시민을 사람으로 안 본다”

중국과 홍콩은 범죄인 인도협력을 맺고 있지 않다. 중국은 의견 표명만으로도 수감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민주주의를 경험한 홍콩인으로선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송중 조례에 대한 홍콩인의 우려는 우선 홍콩 사법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중국에서 과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아울러 홍콩내 활동 중인 중국인권운동가의 중국 인도는 여러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2월 정부가 조례 통과를 추진하자 민간인권전선은 저지 운동을 폈다. 1차 시위에는 1만 명이, 2차에는 13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4월25일 법원이 우산혁명을 이끈 지도자 3명을 수감 결정은 “복종하면 체포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홍콩인 사이에서 각인된 순간이었다. 

입법회의 조례 통과를 저지코자 5월과 6월초까지 저항이 계속됐다. 그리고 운명의 6월9일  100만여 명이 거리로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가 조례 통과를 밀어붙일 기세를 보이자, 시위의 방향도 바뀐다. 평화시위 대신 수업거부, 파업, 의회 포위 등을 시도한 것이다. 경찰의 진압도 이때를 기점으로 폭력적인 방식으로 변했다.

“지금 우리가 멈추면 경찰 폭력을 인정하는 것이죠. 홍콩인은 과거 경찰이 질서를 지키고 시민을 때리지 않던, 자유와 법치가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기도회, 종이학 접기 등 집회 방식도 다양해졌다. 과거 우산혁명의 뼈아픈 경험을 반복하지 않고자 집회 참여자간의 단결도 더욱 공고해졌다. 때문에 일부만 콕짚어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분열을 꾀한 정부의 시도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집회에 중국 이민자들의 참여율이 높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얀 호 라이 부의장은 “중국 제도의 어두운 면을 경험한 이들은 홍콩마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며 “충돌은 중국인 여행자에 국한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기간 민주화 투쟁의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강조했다. “우린 한국인이 집회에 참여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주길 바랍니다.” 얀 호 라이 부의장은 우리 언론을 향한 당부도 건넸다. “한국 언론은 집회 과정에서의 폭력(시위대와 경찰의)보다 이번 운동의 진정한 원인이나 함의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한국사회에 제대로 알려주길 바랍니다.”

홍콩인의 바람과 우리사회가 지지 연대하기 위한 언론의 책무. 그의 마지막 말에서 기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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