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모빌리티 갈등_①] 공유경제로 시작한 카풀, 남은 건 고급택시 서비스

기사승인 2019-11-1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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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와 관련, 불법 영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웅 쏘카 대표 등에 대한 첫 재판이 다음 달 2일 열린다. 이재웅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방북 남측 경제인 특별수행단 일원으로 참여해 백두산에도 함께 올랐고, 타다 운영사인 VCNC의 박재욱 대표는 대통령 북유럽 순방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국내 이동수단 시장에 혁신을 가져왔다 평가 받은 이들이 어쩌다 법정 앞에 서게 된 것일까.

‘카풀 논쟁’을 계기로 본격화된 국내 모빌리티 업계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공유경제를 앞세워 출시됐던 모빌리티 서비스는 현재 대부분 사라지거나 명맥만 유지 중이다.  지난 1년 사이엔 카풀에서 타다로, 그 대상만 바뀌었을 뿐 첨예한 신‧구 산업의 갈등으로 동일한 내용의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수년간의 갈등은 점차 ‘발전’되고 있는 것일까, 공회전을 돌고 있는 것일까. 국내 모빌리티 격변의 흐름을 다시 한 번 짚어본다. 

◆ ‘승차공유’ 원조격 우버와 ‘심야버스’ 콜버스 퇴출=카카오가 승차공유(카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카풀업체와 택시업계의 갈등이 대중적으로 표면화됐지만 사실 그 이전에 택시업계는 이미 ‘글로벌’ 카풀업체와 싸워 이겼던 전적이 있다.

2013년 승차공유 원조기업인 우버가 한국에 진출해 유료 카풀 서비스를 시작하자 택시업계는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반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3000여명이 우버의 불법 택시 영업을 처벌하는 법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검찰은 불법 여객운수 혐의로 우버를 기소했고, 이들은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았다. 국회는 유사택시의 운송사업 행위를 금지하는 ‘우버택시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우버는 “이용자를 연결하는 건 한국에서 합법일 뿐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고 입장을 내놓았지만 결국 두 달 후 서비스를 중단했다. 

국내 스타트업 중에도 카카오보다 먼저 택시업계와 부딪혔던 곳이 있다. 2016년 콜버스랩은 전세버스 공동임대 플랫폼 ‘콜버스’를 만들어 승차거부가 심한 심야시간대 전세버스를 콜택시처럼 호출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택시 4단체는 콜버스 운행 허용이 버스와 택시업계를 고사시킨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이 민원에 응해 콜버스가 법에 저촉되는지 국토교통부에 판단해달라 요청했고, 국토부는 버스‧택시 면허업자들에게만 허용했다. 콜버스랩은 “규제가 완화될 기미가 안보이고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된다”며 전세버스 대절 예약 서비스로 전환시켜버렸다. 

◆ ‘공유경제’ 앞세운 국내 카풀, ‘출퇴근 시간’으로 충돌=2016년 나란히 승차공유 서비스를 시작한 풀러스와 럭시는 모두 출퇴근 시간과 교통시장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앱에서 목적지를 입력한 후, 차량 호출하면 경로가 비슷한 운전자가 매칭돼 카풀하는 형태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에 따르면 자가용을 유상으로 운송하거나 임대, 알선해선 안된다. 다만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는 예외규정으로 정해놨다. 

풀러스는 “92%의 차량이 주차장에 있고, 나홀로 차량이 86%에 달하는 상황에서 카풀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자는 것이 목표”라며 서비스를 실시했다. 무난하게 운영 중이던 이 업체가 서비스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출퇴근 시간 예외 조항’을 활용한 것이 문제였다. 시범서비스 때 이용시간은 출근시간(오전5시~11시)와 퇴근시간(오후5시~오전2시)로 정해져있었는데, 사람마다 출퇴근시간이 다양하다는 조사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24시간 중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서울시는 “카풀을 24시간 운영하는 건 위법”이라며 고발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실제 고발하진 않았지만 풀러스 운전자들은 자신들이 범법자가 될 것을 우려해 모두 서비스를 떠났고 풀러스 김태호 대표가 사임, 직원 70%를 구조조정해야 했다. 

◆ 카카오 카풀, 생존 위기 느낀 택시업계와 정면충돌=택시업계와 승차공유업체들의 갈등이 대규모‧장기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국내 IT기업 카카오의 카풀사업 진출이다.  ‘이동’ 영역에서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2017년 8월 카카오모빌리티가 정식 출범 했다. 카카오는 평일 오전 8–9시 사이에 카카오 택시 호출이 23만 건인 데 비해 배차 가능 택시는 2만 6000대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이터를 공개하며 카풀사업의 필요성을 입증했다. 

카카오가 지난해 2월 카풀업체 럭시를 인수하고 카풀 서비스 시동을 걸었다. 택시 4단체는 대표자 회의를 열어 카풀 서비스 합법화를 저지하기 위한 비대위를 꾸리고 “카풀 합법화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거부하며 택시 생존권 사수를 위해 공동 투쟁한다”며 대응했다. 작은 스타트업이 아닌 국내 대표 IT기업이 카풀을 준비하자 택시단체들은 주최측 추산 약 6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 “카풀 박살내자”,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 등의 ‘생존권’ 사수를 벌였다.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은 택시업계의 표심을 얻기 위해 ‘카풀 절대 금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택시업계는 집회장에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으면 야유를 날리고, 나경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겐 환호를 보냈다. 일찌감치 카풀 반대 입장을 밝힌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택시기사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택시와 카풀 논란 가운데서도 풀러스는 서영우 대표 체제로 풀러스 2.0을 선언했고, 카카오 모빌리티는 2018년 12월 7일 카풀 베타테스트를 시작했다. 2km당 3000원으로 택시요금보다 50% 가량 저렴했다. 당시 카풀업체들의 주장은 일관됐다. 택시보다 저렴하게, 자신의 출퇴근 방향과 상관없이 돈 받고 사람을 이동시키는 ‘유상운송’과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카카오 카풀 시범서비스 발표 3일 후 택시기사가 카풀 반대 투쟁을 위해 분신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카카오 카풀은 서비스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 올해 3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 결론, 규제 ‘강화’로 마무리=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은 공유경제와 택시업계의 상생을 모색하는 ‘택시-카풀 TF'를 구성해 지난해 11월 첫 회의를 열고, 4개월만인 지난 3월 합의안을 냈다. 카풀 서비스는 출퇴근 시간인 오전 7~9시, 오후 6~8시 각 2시간씩만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승차거부가 심한 심야시간엔 이용할 수 없어 사업성이 유명무실해졌다. 오히려 풀러스의 시범 테스트 때 출퇴근 시간보다 규제가 더 강화된 셈이다. 

당시 서영우 풀러스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역사책으로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며 “시민들은 커다란 대체 이동수단을 잃었고 택시가 안 잡히는 시간대에 불편함은 여전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카풀 스타트업들은 ‘하루 출퇴근 2시간’으론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현재 명목상 유지될 뿐 카풀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반면 협상에 유일하게 참여했던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업체와 협력해 승차거부 없는 ‘웨이고블루’ 택시에 IT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해 사실상 카풀업체 중 카카오만 이득을 봤다. [韓 모빌리티 갈등_①] 공유경제로 시작한 카풀, 남은 건 고급택시 서비스

◆ 카풀 막아낸 택시업계 다음 표적은 ‘타다’, 예외규정 활용 합·불법 여부 촉각=모빌리티 전쟁은 카풀에서 ‘플랫폼 택시’라는 또 다른 전장으로 넘어간다. 타다 서비스는 카카오 카풀과 택시업계의 갈등이 절정인 지난해 10월 개시됐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11~15인승 승합차는 운전기사 소개가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을 근거로 사업을 시작했다. 승합차 '카니발'로 운행을 시작한 타다는 빠른 배차와 쾌적한 탑승 환경, 친절한 기사 서비스 등을 앞세워 1년 만에 운행차량을 1400대까지 늘리며 고속성장했다.

카풀 논란이 일단락 되면서 눈에 띄게 성장한 타다가 택시업계의 다음 표적이었다. 서울개인택시조합 전 이사장 등은 지난 2월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를 검찰에 고발했다. 타다는 카풀 논쟁 당시와 비슷하게 법의 예외조항을 활용했는데, 관광목적이 아니라면 적용이 될 수 없단 주장이다. 5월 15일 ‘타다 반대’ 대규모 시위 중에 또 한명의 택시기사가 분신사망했다. 이 대표는 “죽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죽음을 정치화 하고 죽음을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글을 썼다가 비판 받기도 했다.

◆ 타다 동의 안 한 ‘택시-플랫폼 상생안’ 후속 논의 불투명=플랫폼 택시 제도화 및 택시 업계상생 방안'=지난 7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택시·플랫폼 상생안'은 이미 시장 포화 상태인 택시 서비스 총량을 더 늘리지 않으면서 플랫폼 업계도 영업을 허용해 상생을 꾀한다는 게 골자다. 이에 전문가들은 택시 시장이 결국 ‘브랜드 택시 ’경쟁을 재편 될 것으로 전망한다. 택시 업계 내에서 모빌리티업계가 각각 브랜드 택시를 내놓고 서비스 품질 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예상이다. 

7월 상생안 발표 이후 택시업계가 잠잠해지는 듯 했으나 10월 타다 1주년 간담회를 계기로 갈등이 다시 촉발됐다. 타다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 1400대 수준인 운행차량을 내년까지 1만대로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국토부는 “그간 제도화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사회적 갈등을 재점화하는 부적절한 조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더 나아가 “(타다 서비스의 근거가 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예외적인 허용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영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손보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타다는 바로 증차 계획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를 괘씸하게 여긴 택시업계는 타다 아웃을 외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24일 플랫폼 택시 법제화 내용을 담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개정안에는 VCNC 타다 서비스를 원천차단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수세에 몰리던 타다에게 설상가상으로 검찰은 지난 2월 기소된 건에 대해 '불법'이라고 판단내렸다. 사실상 타다 금지법이 발의된 가운데 다음달 2일 열리는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의 첫 공판이 주목된다. 국내 모빌리티 흐름은 공유경제를 이용해 보다 저렴하게 사용자의 이동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의 시도였지만, 이제 기존 택시보다 높은 요금으로 ‘고급 서비스’ 경쟁을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안나 기자 la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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