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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1년…오름의 황제 거문오름 (2)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스물한 번째

기자입력 : 2019.12.07 00:00:00 | 수정 : 2019.12.06 11:40:27

11월 18일 월요일 아침 9시 탐방 예약을 하고 갔는데 비가 오락가락한다. 그래도 탐방객은 정원 50명을 거의 채웠다. 거문오름 탐방 계획이 있다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일찍 예약해야 할 듯하다.

숲길을 걷다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국화를 만났다. 문득 국화차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재배하지 않는 이상 육지에서는 어디에 가도 국화차를 만들만한 들국화꽃 만나기가 쉽지 않다. 깊은 산 속이 아니면 대부분 농약이 걱정되어 선뜻 손이 나가지 못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센터의 안마당을 벗어나 거문오름 능선을 바라보니 오름 주변에만 가을이 온 듯하다. 거문오름 능선에는 울창한 삼나무 숲이 여전히 푸르다.

이 길을 한 시간 가까이 걸었는데, 따라오는 사람도, 마주 오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으니 거의 버려진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이 외진 곳에 농약 칠 이유도 없으니 농약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량의 꽃을 땄다. 진딧물이 간혹 묻고 개미도 보이곤 했다.

거문오름 탐방로에 올라서고 보니 지난여름 비에 씻긴 탐방로를 보수하고 더 이상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야자 매트를 깔아두었다. 이 길은 오름을 깎아 새로 낸 길이 아니라 거문오름에 삼나무가 식재되기 전 해충을 없애고 목초지에 거름을 보충하기 위해 목초지를 태울 때 구간을 나누던 길이라 한다.

저녁 식사 후 꽃을 흐르는 물에 씻어 진딧물과 개미를 털어내고 찜기에 살짝 쪄냈다. 그리고 부서지지 않도록 살살 흔들어 물기를 털어낸 다름 깨끗하게 삶아 말린 행주로 싸서 물기를 제거하고 말렸다. 바람에 날려갈세라 바구니에 담아 행주로 덮어 두었더니 밤새 부는 산들바람에 예쁘게도 말랐다. 꽃잎을 접으니 국화꽃 한 송이가 팥알만큼 작아졌다. 제주의 서늘한 맑은 바람에 며칠 더 말릴까 생각하다가 마음이 조급해져 행주에 싼 채 헤어드라이어의 더운 바람으로 강제 건조했다.

탐방로를 걸으며 양쪽의 삼나무숲을 들여다보니 땅 위에 있던 적은 풀들이 잎을 떨구어 더욱 황폐하게 보인다. 삼나무잎이 떨어지며 그 안의 식물은 점점 사라져 간다.

남은 습기마저 바람에 날려 보내기 위해 며칠 더 두었다. 그리고 마주한 국화차는 훌륭했다. 찻잔에 몇 알 넣고, 끓여 살짝 식힌 물을 부으니 꽃이 다시 피어나면서 국화 향이 퍼졌다. 제주의 숲이 주는 행복을 몇 번은 더 만끽할 수 있으니 아껴 마시다가 다른 차를 궁리해 보려 한다.

거문오름 탐방 중에는 비가 와도 우산을 쓸 수 없고 비옷을 입어야 한다.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자 탐방객들이 비옷을 갖춰 입고 오름 길을 걷고 있다.

아버지의 손녀 손자 사랑은 특별했다. 아버지는 손녀와 손자의 행동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세심하게 바라보며 두 아이를 보살폈다. 어느 여름날엔 퇴근해 아이를 보러 갔더니 아이들이 속옷이 뒤집어 입은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무심결에 다시 입히려는데 아버지께서 그대로 두라고 하신다. 바로 입히면 바느질된 천의 솔기가 아이들의 피부에 자국을 남기는데 그것이 안쓰러워 뒤집어 입힌 것이다.

해발 456m의 거문오름 제1봉 전망대 근처의 숲은 인공조림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성된 활엽수 숲이다. 나무를 감은 각종 덩굴식물은 물론 비탈에도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함께 경쟁하며 자라고 있다.

둘째가 4살이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너희들 애에게 글 가르쳤냐?”
“아뇨.”
“얘가 글씨를 읽는다.”
“어느 글씨를 읽어요?”
“아이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보더니 거기에 있는 광고를 다 읽어.”
“아마 TV 광고를 여러 번 봐서 아는 대로 말했겠죠.”
“아니다. 집에 와서 책을 주니까 책도 다 읽어.”

거문오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분화구 안의 숲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 뒤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후 유치원에 들어가 시행한 지능검사에서 언어영역이 특히 뛰어나니 영재 교육 등 특별한 교육을 고려해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이를 특별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의 이러한 성향을 알고부터는 대학진학과 이후의 취업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를 진로 선택의 고려 사항 중 하나로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곤 했다.

분화구 안에서 본 새우란은 아직 잎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내년 봄에 꽃이 필 때 다시 오면 하늘하늘 춤추는 꽃잎에 넋을 잃을 듯하다.

따뜻한 보살핌 속에 자란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품을 떠나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부모 집에 와서도 말썽다운 말썽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잘 지냈다. 맞벌이 부부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나는 스스로 속옷을 뒤집어 입으며 그때 손자와 손녀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느낀다.

돌무더기에 이끼가 자라고 그 이끼에 안겨 나무들이 자라고 그 떨어진 나뭇잎에 안겨 덩굴과 온갖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해 숲이 되면 사람들은 곶자왈이라 부른다.

거문오름 탐방은 1구간을 지나 2구간까지만 해설사가 동행한다. 탐방객들은 사정에 따라 1시간 소요되는 1.8 킬로미터의 1구간만 보고 출구로 나갈 수도 있고 2시간이 소요되는 총 5.5 킬로미터의 2구간까지 보고 나갈 수도 있다. 3구간은 약 4.5 킬로미터인데 해설사 동행 없이 탐방로를 걷는다. 탐방객 대부분은 2구간에서 해설사와 함께 돌아가기 때문에 3구간의 탐방로 산책은 그 어느 때보다 호젓한 분위기를 속에서 즐길 수 있다.

거문오름 분화구 안에는 온도와 습도가 외부보다 높은 듯 콩짜개덩굴이 여전히 조금도 시들지 않고 있었다.

11월 중순 두 번째 방문길에 해설사가 거문오름 오르막 입구에서 오름 능선을 향해 나 있는 길에 관해 잠시 설명을 했다. 과거 제주도의 오름은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거나 아니면 소와 말을 방목하는 목초지로 이용되었는데 새로운 풀이 나기 전 풀에 불을 놓아 해충을 없애고 그 재를 거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불을 놓을 때의 이 길이 불태우는 구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제주도의 360여 오름 가운데 120 오름에서 일본군의 갱도 진지 등 군사시설이 발견되고 있다. 거문오름에만 10여 곳의 갱도가 확인되었다.

거문오름의 능선은 총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탐방로는 가장 높은 제1 봉으로 올라가 오름 전체를 조망하고, 말굽형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 일대를 두루 살피고 반대편 능선의 제9 봉에서 해설사 탐방을 마친다. 각 봉우리는 용(龍)으로 표현해 자유 탐방이 시작되는 제3구간에서는 봉우리마다 9룡에서 2룡까지 깃발이 꽂혀 있다.

연탄과 기름 등의 연료가 사용되기 이전의 연료는 나무였다. 특히 숯은 고급 연료여서 이를 공급하기 위한 숯가마 터가 제주도 내 깊은 숲속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간이 지나며 흔적만 남고 있다.

11월 중순에 접어들었음에도 제1구간의 능선 탐방로 주변엔 곳곳에 달래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고 10월까지만 해도 꽃을 달고 있었던 양하는 잎이 모두 스러진 상태였다. 제1 구간의 탐방로엔 내내 삼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삼나무가 지배적인 곳엔 다른 식물은 거의 모이지 않으며 새 소리 역시 들리지 않는다. 아마 거문오름의 일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삼나무 숲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과 삼나무의 식생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듯했다. 제1 탐방 구간이 끝나는 분화구에서 보니 10월에 만발했던 억새꽃은 이미 초라하게 지고 있었다.

분화구를 벗어나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하면서 각종 활엽수와 단풍나무의 잎이 화려하게 물들어 분화구 안의 초록색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계절 색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곳은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엄청난 양의 용암이 제주도 동쪽 해변으로 빠져나간 곳이다. 이 용암이 흘러내리며 표면이 식어 굳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여전히 굳지 않은 용암이 흘러나갔고 용암의 추가 공급이 멈추면서 각종 동굴이 형성되었다. 선흘수직동굴, 뱅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이 이에 속한다. 이중 만장굴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제주도라고는 하지만 11월 중순에 꽃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분화구를 벗어나 자유 탐방 구간에 접어들어 보라색 투구꽃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한라돌쩌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이 보라색 꽃이 홀로 거문오름의 가을 단풍을 맞아 그 아름다움을 겨루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거문오름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은 용천동굴이라 한다. 전봇대 세우는 공사를 하던 중 전봇대가 땅속으로 가라앉으며 우연히 발견된 용천동굴은 용암동굴이면서도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되는 종유석 등 각종 탄산염 생성물이 가득해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용암동굴이 만들어진 후 지표면에 조개껍데기 등으로 이루어진 바닷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와 쌓이고 비가 내려 이 모래의 석회 성분이 동굴로 스며들어 마치 석회암 동굴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설사는 설명하고 있다. 더구나 이 용천동굴 끝에는 맑고 잔잔한 거대 지하호수가 있고, 동굴 곳곳에서 토기 파편이 발견되어 고고학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이 용천동굴은 개방되지 않고 있으며 연구 목적으로만 출입이 허용된다고 한다. 이 동굴 관련 영상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관람할 수 있다.

능선은 분화구보다 기온 변화가 심한 듯했다. 새우란 잎이 나뭇잎 위에 누워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억새 군락지를 지나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거문오름 탐방의 핵심구간이다. 이 지역은 각종 활엽수가 자연스럽게 자라며 새들을 끌어들이고, 제주 곶자왈의 특성을 보이는 바위 지대 위의 숲이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화산탄, 동굴, 붕괴협곡 등 화산활동으로 생긴 각종 지형이 눈길을 끌며, 한때 사람이 살며 만든 잣성, 숯가마가 점차 흔적으로 변해가고,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군이 구축한 진지동굴 등이 곳곳에서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다.

대부분의 고사리삼은 포자낭이 스러진 지 오래인데 뒤늦게 자란 고사리삼은 12월이 2주 앞인데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드문드문 섞여 있는 단풍나무와 각종 활엽수의 나뭇잎이 물들며 떨어질 준비를 하는 동안 숲은 제법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다. 그 나무들 아래 햇빛이 간간이 비치는 곳 여기저기에 새우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10월까지만 해도 성성하게 세우고 있던 잎이 어느새 낙엽 위에 누워 있다. 이젠 내년 봄에 연녹색으로 꽃대를 감싸며 올라올 새잎이 설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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