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또 다른 오름의 여왕 따라비오름

기사승인 2019-12-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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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62)은 오름 높이 107m 둘레 2.6km의 아담한 오름이다. 오름 앞에 섰을 때 흰색 억새와 짙은 초록의 숲과 푸른 하늘의 어울림이 환상적이다. 따라비오름에 와서 볼 수 있는 억새 풍경의 첫 번째 백미다. 

퇴직 후의 제주도 생활은 느리다. 오늘은 어느 숲길을 걷고 내일은 어느 오름을 가보고 하는 정도의 대략적인 생활 계획은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침 일찍부터 눈 비비고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하고 바쁘게 집을 나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오름을 오르고 숲길을 걷다가도 처음 보는 풀이나 꽃을 만나면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살피고 스마트폰 검색을 하며 그 풀과 꽃에 관해 알아가는 시간을 즐긴다.

 

그러는 중에도 세상은 빠르다. 어느 날 시내에 나갔다가 햄버거 매장에 갔었다. 퇴직 전에 후배 직원과 가 본 적이 있는 곳이고 스마트폰에 할인 쿠폰 등이 저장된 앱도 가지고 있으니 나름 낯익은 곳이었다. 그런데 막상 기계 앞에 서서 주문을 하려니 참 어렵다. 스마트폰 앱을 보고 기계를 보고……. 결국 직원에게 주문을 하고 말았다.

오르기 전 잠시 안내 표지판을 읽으며 숨을 고른다. 낯설었던 단어 ‘따라비’가 눈과 귀에 익기 시작한다.

딸 아이 혼사가 있어 2주 동안 제주를 떠나 천안의 집에서 지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지내던 곳이 서울이고 아이 결혼식도 서울에서 있어 이런 저런 약속이 잡혀 여러 번 오르내렸다. 다행이 고속버스 승차권은 스마트폰으로 예매하기에 편리할 뿐 아니라 쉽기도 해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매표창구에서 표를 구입하는 것보다 편했다. 

 

차를 탈 때는 스마트폰 화면의 QR 코드를 인식시키면 되는 데 이날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 예약한 차는 틀림없는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사가 보더니 한 마디 한다. 서울에서 천안 오는 차표군요. 그날 약속시간에 30분 늦었다. 디지털의 함정은 언제 어디서나 긴장하지 않고 있는 퇴직생활자를 기다린다. 그 함정에 발을 딛는 순간 디지털 문맹 노인이 된다.    

      

따라비오름을 오르는 길 입구에서 방목된 가축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설치한 목책을 지나면 마치 오름 둘레길을 걷듯 왼쪽으로 숲 가장자리를 따라 간다. 작은 골짜기를 만나 위로 오르는데 참으로 넉넉하고 풍성한 숲을 가진 오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계단을 오르다 돌아서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는 한 없이 편안하다. 

내 20대는 비바람 몰아치는 숲속을 헤매는 듯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길을 더듬던 때였다. 그러다 30대가 되면서 비가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더니 평탄한 풀밭 길이 나타났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커가던 그 때는 그 평탄한 땅에서도 내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삼십대 내 삶의 중심엔 오직 아이들만 있었다. 그래도 내가 부모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조건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니 그것으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내 아이들도 나보다는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역시 공부였다. 학교 수업 외에도 예능, 보충수업, 선행학습 등 많은 학원이 있어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교 수업 후에는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따라비오름의 정상 능선이 눈앞인데 하늘은 더욱 파랗고 오름은 숲의 초록을 벗기 시작한다.

두 아이는 초등학교 재학 중 일주일에 3일 수업하는 원어민 영어 학원 딱 하나만 수강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놀게 해 주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 함께 다니고 싶어 했던 큰 아이는 한 때 서너 곳을 더 다니기도 했지만 힘들면 그만 두고 싶은 순서를 미리 정하게 했다. 몇 달 후엔 다시 원어민 영어 수업만 듣게 되었다. 

 

아이들과는 절대 결석하지 않기로 약속만 하고는 학원 수업이 효과가 있는지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들이 외국인을 만났을 때 피부색과 생김새로 인해 그들을 낯설어 하거나 피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두 아이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보다는  재미있게 놀기에 바빴다. 

 

오름 능선에 올라 보면 분화구는 한 눈에 그 모습을 다 볼 수 없고 멀리 북쪽에 그간 많은 오름이 병풍처럼 보인다.

가시리 사거리에서 따라비오름 주차장까지 3km가 채 되지 않는 길에 들어서면 제주의 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행여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만날세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전을 하게 된다. 그러다 앞이 탁 트이면 긴장을 풀며 주차장에 들어선다. 숲이 좋은 산이 따라비오름이다.

 

따라비오름 서쪽에선 한라산이 마치 어머니와 같은 넉넉한 품으로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다. 오름의 남쪽 인공조림지 외의 다른 방향에는 이렇다 할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고 아직 어린 소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따라비’는 ‘다랑쉬’만큼이나 낯선 이름이다. ‘따라비’에 관해 이 오름이 속한 가시리에서 1998년에 펴낸 가시리지(加時里誌)에 따르면 주변에 있는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의 가장이라 하여 `따애비`라 불리다가 ‘따래비’로 와전된 것이라고 풀이한다. 

 

따라비오름에서 볼 수 있는 억새 풍경의 두 번째 백미는 분화구 안에서 햇빛을 한껏 머금고 반짝이는 억새다.

민속학자인 김인호 박사의 풀이는 조금 다르다. 이 오름의 본래 이름은 고구려어에 어원을 둔 ‘다라비’인데 높다는 뜻을 가진 ‘다라’와 제주도에서 산 이름에 쓰이는 접미사 ‘미’와 같은 의미의 ‘비’가 합쳐진 말이다. ‘다라비’는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며 후에 경음화되어 ‘따라비’가 되었다는 해석이다.

 

능선을 따라 걷다가 문득 보니 분화구 셋이 가운데에서 이마를 맞대고 있는 형상이 영락없는 심장판막이다. 어디에서 보아도 햇빛에 반짝이는 억새는 아름답다.

따라비오름은 제주 동부 지역의 오름 군에서 남쪽으로 떨어져 있어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직선으로 불과 10km 거리에 있다. 오름에 오르면 수평선이 멀게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한라산 역시 지척이다. 따라비오름을 특징짓는 단어 중 하나는 세 개의 분화구이고 다른 하나는 억새다. 

 

따라비오름에 간 날이 11월 중순이었다. 꽃들의 화려함은 그 한 송이 한 송이가 따라비오름 자체의 아름다움과 견줄만했다. 섬잔대 꽃이 진한 보라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잔대를 볼 수 있는데 꽃과 잎 모양으로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겠지만 여전히 이 꽃을 섬잔대라 해야 할지 당잔대라 해야 할지 또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랑쉬오름은 크고 단정한 오름의 모양새와 그 안에 품고 있는 백록담보다 큰 분화구로 오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따라비오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아낌없이 ‘오름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양지바른 곳에 꽃향유가 풍성한 보라색 꽃으로 따라비오름을 장식하고 있다.

가을이면 억새가 오름 아래 남쪽 주변부를 넓게 장식하는데 억새의 부드러운 흰색과 오름 경사면 남쪽 인공조림 숲의 짙은 초록과 하늘의 파란색이 어우러져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따라비오름 앞에 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이 흰색과 초록과 푸른색이 어울린 아름다움은 제주에서도 맑은 가을날 이곳에서만 가슴에 품을 수 있다.  

 

특히 10월 중순쯤 이곳을 찾아오면 사람들은 주차장 주변에서 억새꽃의 물결 속에 들어 그 부드러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간혹 그 억새 가장자리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짙은 보라색 꽃은 잔대다. 억새와 그 속의 꽃을 바라보다 잠시 따라비오름을 잊는다.

 

더 이상은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고사리삼도 여전히 고대 왕관에 꽂혀 있던 깃 모양의  홀씨주머니를 들고 서 있었다.

억새의 부드러운 몸짓에 흡족해진 마음으로 초록의 숲을 향해 걷는다. 그 숲 입구에서 만나는 목책은 이 오름 역시 소와 말의 방목지임을 알려준다. 길은 숲으로 향하지 않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왼쪽으로 향하다 작은 골짜기를 만나 비로소 위로 향한다. 은근한 그늘 속에서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오르며 꽃과 풀을 살피다 문득 하늘이 환해지면 다시 억새가 보이며 그곳이 따라비오름의 능선임을 알려준다.

 

두해살이 풀인 자주쓴풀이다.

바쁜 걸음으로 올라 능선에 서서 보니 분화구 셋이 이마를 마주대고 있고 그 가장자리를 넓게 봉우리와 능선이 둘러싸고 있다. 분화구 안에서 나온 세 갈래의 길이 바깥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 걸려 있다. 분화구와 능선엔 온통 억새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물매화는 산지의 볕이 잘 드는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이라고 한다. 물 빠짐이 좋은 제주도의 오름에서 물매화를 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문득 심장 판막 중 대동맥판막이 생각났다. 심장이 힘껏 오므라들면 산소를 가득 머금은 피는 이마를 맞대고 꼭 닫혀 있던 판막을 열어젖히며 심장 밖으로 뿜어져 나간다. 피가 대동맥판막을 벗어나는 순간 세 판막은 다시 닫힌다. 피는 심장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나가던 힘으로 손가락 끝과 발끝까지, 뇌의 구석구석까지, 몸속 모든 장기의 끝까지 퍼져나가 그 산소를 나눠준다. 

 

따라비오름 분화구 능선을 노닐다 북쪽으로 내려와 둘레길을 걸었다. 여름이었으면 푸른 초지였을 공동방목장 가장자리를 따라와 남쪽에 서서 억새 바다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따라비오름을 눈에 새겼다.

따라비오름은 그 안의 분화구 셋이 생명 유지의 첫 관문인 심장의 대동맥판막을 닮았다. 능선을 따라 걸으며 사방의 경치를 즐기고 분화구 안으로 이어진 길 위에서 문득 펄떡이는 생명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분화구 안에 서서 햇빛을 가득 머금은 억새가 능선을 향해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문득 심장에서 산소를 머금은 생명수가 온 몸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능선에 다시 올라 바라보는 남쪽 바다는 따뜻하고, 제주의 모든 오름을 안고 있는 한라산의 품은 넓게 보인다. 화려한 가을 억새와 대동맥판막을 닮은 분화구로 따라비오름을 기억하며 둘레길을 걸었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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