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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린 ‘배달의민족’ 아닙니다

우린 ‘배달의민족’ 아닙니다

한전진 기자입력 : 2019.12.25 04:00:00 | 수정 : 2019.12.25 12:12:36

“우린 신뢰와 정의 민족 아니던가.”

최근 ‘배달의민족’(배민) 매각에 대한 소상인들의 반응을 취재 중 들은 말이다. 기업의 국적마저 흐릿해진 시대라지만, 국내 배달앱 1위가 독일 기업에 넘어갔다는 소식에 상인들은 반기지 않았다. 그간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고 외치던 배민이기에 씁쓸함과 배신감이 더 컸던 것이다. 당시 누리꾼들도 “배달의민족이 아닌 게르만 민족”이라는 조소 등을 쏟아냈다. 

지난 13일 배민의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회사를 4조7500억원에 매각하는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인터넷기업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으로 기록되며 역사를 새로 썼다. 자본금 3000만원으로 시작해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한 김봉진 대표는 글로벌 기업의 주요 주주 겸 경영진으로 우뚝 서며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됐다.

대신 DH는 한국 배달앱 시장 전체를 손에 넣게 됐다. DH는 이미 국내에서 동종업계 2위인 ‘요기요’와 3위 ‘배달통’을 운영 중인 회사다. 이젠 1위인 배민까지 손에 쥐게 되면서, 점유율 90% 이상 장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이 독과점 우려다. 1위부터 3위가 모두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향후 담합은 물론, 수수료 인상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의 상인들은 “배달앱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향후 이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리게 되면,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라고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이에 배민은 “합병 뒤에도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간 경쟁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며 “수수료 인상은 있을 수 없다”라고 못 박기도 했다. 그간 이들은 점유율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점주와 소비자 유치를 위해 ‘쿠폰 전쟁’을 치렀고, 중개수수료 인하에도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이젠 손을 맞잡은 상황에서 이전 같은 경쟁을 벌일지는 물음표다.

그동안 배민은 국내 대표 스타트업으로 꼽혀왔고, 그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런 배민을 외국 자본에 넘긴 것 역시 큰 원성을 사고 있는 요인이다. 배민이 DH에 넘어가면서 한국의 ‘유니콘기업’ 수도 기존 11개에서 10개로 줄어들게 됐다. 글로벌 기업 도약을 고민해왔다는 김 대표의 주장에도 싸늘한 시선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브랜드만 독일로 넘어간 것이 아니다. 인수대금의 상당수도 중국 미국 싱가폴 등 기존의 투자처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만 서비스를 잘한다고 해도 기업 생존을 보장받기가 힘든 것이 지금의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미래를 두고 우아한형제들도 고민이 컸을 것이다. 다만, 배민의 빠른 성공은 30만 가맹점과 1000만 소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들 다수가 한국인의 정서와 B급 코드를 잘 버무린 ‘배민다움’에 공감했던 결과였다. 

이 같은 배경이 없었다면, 과연 배민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민족을 잃은, 배민의 앞날이 걱정되는 이유다. 현장에선 ‘脫배민’을 하겠다는 소비자와 점주들이 늘고 있다. 과연 현재 배민이 ‘민족’ 말고 내세울 것이 있는가. 공정위의 불허로 매각이 결렬되더라도, 배민이 다시 ‘우리 민족’으로 인정받긴 어려워 보인다. 배달만 남고 민족은 잃은 ‘배민’이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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