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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어 양준일! 출국금지 양준일!”

양준일에 열광하는 '요즘 세대'

이은호 기자입력 : 2020.01.06 07:01:00 | 수정 : 2020.01.07 09:45:30

사진=박효상 기자

2020년 1월3일 오후 12시00분. 가수 양준일의 공식 팬카페 ‘판타자이’에선 ‘폼림픽’(네이버 폼과 올림픽의 합성어로 인터넷 양식을 이용한 선착순 모집)이 열렸다. 양준일이 4일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하게 되자, 방청권을 두고 팬들이 선착순 경쟁을 벌인 것이다. 60초 동안 80명 이상의 팬들이 몰렸다. 팬들은 아이돌 팬덤만 만든다는 응원 구호도 미리 정했다. “기다렸어 양준일! 어서 와요 양준일! (중략) 출구 없어 양준일! 출국금지 양준일!” 2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양준일을 위한 팬들의 선물이다.

양준일은 흔히 ‘시대를 앞서간 뮤지션’으로 불린다. 발라드가 대세였던 1991년 힙합 풍의 댄스곡 ‘리베카’를 들고 데뷔해서다. 혹자는 그를 보며 전설적인 팝스타 故 마이클 잭슨이나 故 프린스가 떠오른다고 한다. 당시 영미권에서 유행하던 음악을 양준일이 빠르게 흡수했다는 의미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양준일은 당시 가장 동시대적인, 그러나 한국에선 드물었던 음악을 한 뮤지션”이라고 봤다. 양준일의 음악은 2030 세대의 마음도 움직인다. 음원사이트 멜론에 따르면 4일 양준일의 ‘리베카’를 들은 이용자 중 20대의 비율은 27%로, 40대 비율(22%)보다 높다. “시대가 지나면 더 이상 듣지 않게 되는 음악이 있는데, 양준일의 음악은 시대를 거슬러서도 여전히 매력을 발산하는 힘이 있”(서정민갑 평론가)기 때문이다. 

사진=JTBC '슈가맨3' 방송화면

양준일의 이름은 또한 ‘희망’의 은유로도 읽힌다. 양준일은 1990년대 활동 당시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가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하면 어딘가에서 돌이 날아왔고.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며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고 한다.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낯선 노래를 부르는 그에게 고국은 폭력을 퍼부었다. 양준일은 ‘별난 사람’이라는 낙인을 피해 이름을 바꾸고 존재를 지우기까지 했지만, 결국 2001년 한국을 떠나 20년 가까이 돌아오지 못했다.

뉴트로 열풍 속에서 시작된 양준일 신드롬이 문화적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다. 바로 작년까지도 우리 사회 혐오의 폭력 안에서 어린 영혼들이 스러졌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배척되는 일이 더는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토대로 ‘양준일 신드롬’이 세워졌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양준일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보여준) 따뜻함을 기억한다. 내 머릿속에 쌓아둔 쓰레기를 많이 버리려고 노력하며 지냈는데, 사실 그 쓰레기 안에는 굉장히 소중한 보석이 있다. 그걸 찾아 간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3’에 출연하기 전까지 양준일은 미국 플로리다의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해왔다. 미국으로 가기 전엔 영어 선생님으로도 일했다. 생계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생계’라는 단어가 머금은 고단함이나 퍽퍽함을 양준일은 비껴간다. 그는 오히려 팬들이 자신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통과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다독인다. “인생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는 걸 깨달은 자의 여유일까. 양준일은 “팬들을 향한 고마움으로 대한민국을 감싸고 싶다”고 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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