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명절이 싫어요"

기사승인 2020-01-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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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친구는 말합니다. “나는 정말 명절 없었으면 좋겠어. 시댁이나 친정이나 장 보고, 전 부치고, 상 차렸다가 치웠다가. 종일 해도 끝이 없어. 누구 좋아하라고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고. 난 차라리 네가 부럽다” 당직 순서가 하필 설 연휴에 걸렸고 그래서 일을 해야 한다는 쿡기자의 푸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쏟아진 대답입니다. 

설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그 많은 음식을 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립니다. 가족들 잔소리에 상처받고, 의견이 안 맞는 친척들과 싸우며 시댁과 친정 방문을 두고 갈등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많은 스트레스 요인을 감내하는 이유는 단순히 오늘이 설이기 때문입니다. 

많이 간소화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명절 음식 준비로 고생합니다. 못 먹던 시절도 아닌데 말입니다. 다듬고 부치고 끓이다 보면 허리 펴고 앉을 시간이 모자랍니다. 재료 장만에서부터 뒷정리까지 모두 여자들만 일한다는 집도 심심치 않게 보이죠. 음식 장만에서 끝나면 다행입니다. 차례상은 물론 손님 대접에 상을 차리고, 치우고. 굳이 글로 나열하지 않아도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일련의 과정들을 치를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옵니다.

몸이 힘든 건 양반입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과합니다. 덕담과 걱정이란 말로 포장하지만 ‘훅’ 들어오는 개인적인 질문에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공부는 잘하고 있니’ ‘대학은 어디 갈 거야’ ‘취업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애인은 있니?’ ‘결혼은 언제 해’ ‘아이를 낳아야지’ 등의 잔소리를 듣다 보면 결국 인생 내내 가족들 질문에 치여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이는 이 명절을 기다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같이 모두가 바쁜 시대에 가족이 모여 먹는 밥 한 끼의 의미는 너무나 값지기 때문입니다. 화상 전화나 휴대폰 메시지가 보편화 됐지만, 디지털이 죽었다 깨어나도 채우지 못하는 감성이 존재합니다. 직접 얼굴 보고 한 해 덕담을 건네며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사랑이 담긴 행동들 말이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 가치를 두고 설을 ‘학을 떼는 명절’로 치부하는 건 서글픈 일입니다. 이제는 정말 간소화할 때가 됐습니다.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여 기다려지는 명절을 만들어야 합니다. ‘너희들 세대부터’가 아니라 ‘지금 우리부터’ 말이죠.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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