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 부리며 4200억원 챙겨… 9·11 영웅들의 추락

기사승인 2014-01-09 0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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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지구촌] 2001년 9·11 테러 후유증을 핑계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수년간 불법으로 사회보장연금을 타낸 뉴욕 전직 경찰·소방관 등 106명이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고 뉴욕타임스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연방검찰 맨해튼지부 사이러스 반스 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연금사기 총책임자인 레이몬드 라발리(83) 변호사 등 4명과 이들에게 연금 부당수령을 의뢰한 뉴욕 전직 경찰·소방관 102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반스 검사에 따르면 라발리 일당은 1988년부터 최소 20년간 미 전직 경찰·소방관을 대상으로 연금사기 행각을 벌여 왔으며 부당 수령액이 총 4억 달러(약 42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신문은 액수나 검거인원 면에서 미 역사상 최악의 사회보장연금 사기 사건이라고 전했다. 특히 9·11 테러 당시 ‘영웅’으로 떠오르기까지 했던 뉴욕 경찰과 소방관들이 이 같은 연금사기에 연루된 데 시민들이 경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발리 일당이 계획한 사기 수법은 간단했다. 사회보장연금 신청을 대리해주고, 의사를 포섭해 허위 진단서를 꾸민 뒤 당국 심사를 통과할 수 있게 의뢰인에게 면접 요령을 지도했다. 이들은 건당 2만~5만 달러를 받아 챙겼다. 특히 9·11 테러는 호재였다. 테러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불안증세 등을 명목으로 사회보장연금 내 장애급여를 받아내기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의뢰인에게 면접 요령으로 ‘말을 시작하기 전 우물거리기’ ‘면접관의 눈을 정면으로 보지 말기’ ‘침울한 표정 짓기’ 등을 귀띔해줬다. 이렇게 면접 심사를 통과한 뉴욕 전직 경찰·소방관은 연간 3만~5만 달러의 장애급여를 타 갔다. 이번에 적발된 이들 중 절반이 9·11 테러 후유증 명목으로 연금을 받아 갔다.

연방 수사 당국은 2008년쯤 라발리 일당의 연금사기를 의심했고, 허위 진단서의 동일한 내용과 글씨체를 근거로 관련자를 추적해 왔다. 반스 검사는 “부당 연금을 받은 전직 경찰·소방관은 실제 너무 멀쩡했다”며 “헬리콥터 비행을 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블랙잭 게임을 하는 등 9·11 테러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고 전했다. 윌리엄 브래튼 뉴욕 경찰청장은 “9·11 테러 당시 구조작업을 벌이다 숨진 이들과 이후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이들에게 불명예를 안겼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기사모아보기